입센 13

서로박: 입센의 로스머 농장

노르웨이의 문호 헨릭 입센 (1828 - 1906)의 4막 극작품 「로스머 농장」은 1887년 1월 17일에 베르겐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극적 진행 과정 그리고 작품의 기본적 골격은 입센의 이전 작품, 「유령」 (1881)과 흡사합니다. 노르웨이의 왕궁은 가족의 퇴폐적인 생활로 인하여 몰락 직전에 있습니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외부적 사건이 노르웨이 왕궁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입센의 극작품은 사회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보수적 귀족적 생활방식이 결국에 이르러 얼마나 강한 정신착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스머 농장에서 보모, 레베카 베스트가 많은 일을 담당합니다. 그미는 죽은 영혼과 대화를 다룰 줄 아는, 약간의 신통력을 지닌 기..

39 북구문헌 2023.08.10

서로박: 입센의 "인형의 집"

3막으로 이루어진 입센의 극작품, 『인형의 집』은 1879년 12월 21일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에서는 “노라”라는 제목으로 널리 일려졌지요. 이미 잘 알려졌듯이 여주인공, 노라의 삶은 당시에 잘 알려진 소설가, 라우라 킬러 (Laura Kieler, 1849 - 1932)의 불행한 결혼 생활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밖에 입센은 노르웨이 여류 작가, 카밀라 콜레트 (Camilla Collett, 1813 - 1895)이 주창한 여성 해방에 관한 논쟁서를 적극적으로 참조했다고 합니다. 성의 평등에 관한 요구사항은 1879년 무렵에 이탈리아에서 제기된 바 있는데, 스칸디나비아의 남성 중심의 문화 단체들은 이를 거절한 바 있었습니다. 3막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토르발트 헬머..

39 북구문헌 2022.11.20

블로흐: 베르그송과 물질 (1)

베르그송은 사고의 과정 속에서 어떤 새롭고도 생기 넘치는 특징을 발견하려고 했습니다. 가령 그는 시간적 흐름이 마치 맥박과 같이 진행된다고 설파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는 단순히 어떠한 병렬적인 것도 자리하지 않으며, 어떤 시간적 유형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여러 개로 분리되는 공간의 서투른 모방만 자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간은 제각기 서로 다른 곳에서 동일한 특징으로서 수많은 순간들로써 어떤 차례 내지 서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다시 말해 “아무런 중개 없는”) 주어진 상태는 한마디로 “흐르는 지속성”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지속성 속에는 이전의 순간과 이후의 순간이 순서에 의해 구분된 채 채워져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상호적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순수한 지속성은 인간 의식의 ..

23 철학 이론 2022.05.28

서로박: 옐리네크의 '노라가 남편을 떠 난 뒤에...'

오늘은 2004년 노벨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 (Elfriede Jelinek, 1946 - )의 극작품 한 편을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노라가 그의 남편을 떠난 뒤에 무슨 일이 생겼는가? (Was geschah, nachdem Nora ihren Mann verlassen hatte?)」인데, 1977년 그라츠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브레히트가 시도한 바 있는 실험극으로서 50년대 그리고 60년대의 팝 문화라는 문학적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요. 이 작품의 틀로서 작용하는 것은 당연히 입센의 작품 「인형의 집」(1879), 「사회의 버팀목」(1877)입니다. 미리 말하자면 옐리네크는 마르크스주의를 신봉하는 페미니스트로서, 입센의 태도를 비아냥거리고 있습니다. 옐리네..

44 20후독문헌 2022.02.19

서로박: 입센의 유령 (2)

(6) 주사위가 던져지면, 이대로 끝인가? 혹은 이혼은 불가능한가?: 결혼한 다음 헬레네 알빙은 남편을 알게 됩니다. 남편은 지독한 난봉꾼이었습니다. 가령 식모를 건드리는가 하면, 아내의 사촌 누이에게도 집적거리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제야 비로소 주인공은 알빙과 결혼한 것을 후회합니다. 답답함을 떨칠 수 없어서 헬레네는 목사인 옛 애인을 찾아가 재결합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만더스는 사적인 감정 대신 목사로서의 의무감을 중시합니다. 그는 왕년에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냅니다. 만더스는 이렇게 행동한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고 나중에 털어놓습니다. 헬레네가 어리석게 행동했듯이, 만더스 역시 어리석게 사고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는 “사랑하면, 뺏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실천에 옮기지 ..

39 북구문헌 2021.08.10

서로박: 입센의 유령 (1)

(1) 입센, 병든 사회의 신랄한 비판가: 친애하는 K, 다시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작품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병든 유럽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파한 극작가로서 우리는 입센을 들 수 있습니다. 또한 가부장적 남성 사회를 “인형의 집”으로 규정하고, 이에 저항하는 여성상, 노라를 창조한 자는 입센입니다. 이성 그리고 감성의 극렬한 균열로 인하여 세계 곳곳을 방황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페르 귄트를 묘사한 자 역시 입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잘 모릅니다. 즉 강제적 성윤리에 바탕을 둔 시민주의 가정의 질서를 철저히 고수하다가 몰락을 맞이하는 여성상을 창조한 작가 역시 입센이라는 사항 말입니다. 이를테면 극작품 “유령 (Gengange..

39 북구문헌 2021.08.10

헨릭 입센, 방랑의 작가

헨릭 입센 (1828 - 1906)은 노르웨이에서 가장 부유하다고 소문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텔레마크 지역의 상인이었으며, 그의 아래에는 세 명의 남동생과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입센이 8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크리스티아니아 근교의 그림스다드에 있는 농장으로 이사했습니다. 입센은 내향적이고 우울증에 사로잡혔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인하여 술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1844년 입센은 16세의 나이에 약사 라이만의 집에서 약사 업무를 배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나중에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서 잠시 일하기 시작한 셈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틈틈이 셰익스피어 등의 문학 작품을 탐독하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클라라라는 이름의 처녀를 사..

39 북구문헌 2021.05.17

서로박: 입센의 들오리 (2)

(6) 들오리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동물들 가운데에는 이제 더 이상 날지 못하는 들오리 한 마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들오리는 헤드비히의 소유였지요. 아버지를 마치 신처럼 모시는 터라,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떠날 때, 들오리를 잠깐 빌려주곤 하였습니다. 헤드비히의 성스러운 세계에서는 들오리는 한 마리의 거친 날짐승에 불과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에크달은 들오리의 부자연스러운 생활방식을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그것과 비교하곤 했지요. “놈은 뚱뚱해졌어. 이제 과거에 새로서 느꼈던 거칠고 황량한 삶을 잊어버렸어. 그게 문제란 말이야.” 이 모든 것은 주인공, 그레거스의 눈에 투영됩니다. 처마에서 살아가는 환상적인 삶, 바닷가에서 피 흘리도록 자신을 물어뜯는 들오리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지요. 들오리는 사..

39 북구문헌 2021.04.10

서로박: 입센의 들오리 (1)

(1) 병든 사회의 공허함: 친애하는 Y, 다시금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작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입센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은 매우 안타깝습니다. 입센이 살았던 시대는 험난하기만 했습니다. 19세기 말에는 자본주의적 이윤추구가 극에 달해 있었으며, 이러한 현상은 유럽 전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가령 사람들은 더 이상 비더마이어의 문화적 풍토에 빠져 있지 않았습니다. 유럽 어디든 간에 태평양, 동양 등을 동경하는 이국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고, 이는 실내 장식 영역에서도 그대로 반영된 바 있습니다. 입센은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후기 시민사회의 병리현상에 실망하고 이국적인 ..

39 북구문헌 2021.04.10

서로박: 입센의 존 가브리엘 보크만

헨릭 입센 (Henrik Ibsen, 1828 - 1906)의 「존 가브리엘 보크만」은 4막으로 이루어진 극작품인데 1897년 1월 10일 헬싱키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입센이 집필한 말년의 작품으로서, 거짓과 위기의식으로 가득 찬 세기 말의 전형적인 시민주의 인간형을 예리하게 해부하고 있습니다. 나는 입센의 전반적인 문학적 경향을 다른 글에서 언급한 바 있으므로, 오늘은 바로 작품에 관해서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대의 배경은 대도시 크리스티아니아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은 농장입니다. 그것은 렌트하임의 가문에 속하는 것인데, 왕년에 은행가로 일하던 존 가브리엘 보크만과 그의 아내, 군힐트가 살고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두 사람은 대화 없이 고독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제각기 자청해서 ..

39 북구문헌 2020.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