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입센의 로스머 농장

필자 (匹子) 2023. 8. 10. 11:12

노르웨이의 문호 헨릭 입센 (1828 - 1906)의 4막 극작품 「로스머 농장」은 1887년 1월 17일에 베르겐에서 처음으로 공연되었습니다. 극적 진행 과정 그리고 작품의 기본적 골격은 입센의 이전 작품, 「유령」 (1881)과 흡사합니다. 노르웨이의 왕궁은 가족의 퇴폐적인 생활로 인하여 몰락 직전에 있습니다.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외부적 사건이 노르웨이 왕궁에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미리 말하자면 입센의 극작품은 사회와 동떨어진 채 살아가는 보수적 귀족적 생활방식이 결국에 이르러 얼마나 강한 정신착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스머 농장에서 보모, 레베카 베스트가 많은 일을 담당합니다. 그미는 죽은 영혼과 대화를 다룰 줄 아는, 약간의 신통력을 지닌 기이한 여자였습니다. 주인공, 요한네스 로스머는 레베카의 모든 행동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지만, 함부로 그미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 주인공은 이전에 목사로 일한 적이 있고, 로스머 집안의 마지막 후예입니다. 로스머는 어릴 적에 절대로 고함을 질러서는 안 되고, 어른이 되어 절대로 웃어서는 안 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귀족이란 소리 질러도 안 되고, 경망스럽게 웃어서도 안 된다는 게 가훈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고가 발생합니다. 동네의 방앗간 개울 위에 난간이 있는데, 로스머의 아내가 건너다가 난간이 찢겨져 목숨을 잃습니다. 그 이후로 주인공은 더 이상 그곳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일전에 레베카 베스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로스메르스홀름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곳의 삶은 모조리 죽음에 의해서 조종된다고 합니. 그러나 하녀 헬제트는 레베카 베스트의 견해를 반박합니다. 오히려 죽은 사람들이 로스메르스홀름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증명으로 그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즉 가끔 하얀 말 (馬)이 나타나, 살아있는 자들을 죽음 자들에게서 데리고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요한네스 로스머는 가급적이면 사회의 모든 강요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말하자면 완전한 개인적 자유를 추구함으로써 “귀한 종족”으로서의 고유한 자아를 찾으려는 게 자신의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레베카 베스트로부터 어떤 영적인 도움을 갈구합니다. 그가 레베카를 만나는 것은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깥의 세상은 그에게 여러 가지 소식으로써 어떤 영향을 끼칩니다. 우연히 로스머는 자유에 대한 새로운 의식 내지 자유주의를 접하게 됩니다. 이러한 접근은 주인공의 보수적인 속물근성과 부딪쳐서 엄청난 갈등을 야기합니다.

 

 

그의 처남, 크롤은 자유주의자로서 주인공을 심하게 비난합니다. 로스머의 태도에서 도덕적 부패의 특성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또한 편집자 모르텐스가르는 주인공을 교묘하게 이용하려 합니다. 그는 “깜빡이는 불”이라는, 자유주의 신문을 간행하는 언론인이었는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하여 로스머를 필요로 했습니다. 크롤과 모르텐스가르는 어떻게 해서든지 주인공 로스머에게 자유주의의 지조를 불어넣으려고 애씁니다. 가령 정신병에 시달리다 죽은 로스머 부인의 발언 그리고 그미의 편지 등이 바로 주인공을 협박하고 공갈하는 수단입니다. 편지 속에서 로스머 부인은 남편이 올바른 믿음을 상실하지 않았으며, 남편이 레베카와 염문을 뿌렸다는 것은 오로지 거짓이라고 기술하고 있었습니다. 나아가 그미는 자신이 죽은 뒤에 하얀 말이 나타나리라고 편지 속에서 예언합니다.

 

 

그렇지만 로스머는 자신의 귀족적 개인주의를 옹호합니다. 특히 주인공이 왕년의 은사이자, 재능 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한 인간, 브렌델을 만나고 난 뒤부터 자신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더욱더 확신합니다. 그러나 브렌델은 유감스럽게도 나중에 주인공, 로스머에게 향한 정치적인 술수에 휘말리게 됩니다. 로스머는 이 문제에 관해서 오랫동안 레베카와 대화를 나눕니다. 이때 그는 “고결한 종족”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분명히 하고, 사회로부터 단절된 채 살리라고 결심합니다. 이는 바로 “자유 창출의 원칙”으로서 극작품 속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지요. 나아가 주인공은 지나간 이야기를 돌이켜보면서, 문제점을 극복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다음의 사실이 순식간에 백일하에 드러납니다. 즉 레베카는 의도적으로 로스머의 부인을 난간으로 유혹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즉 로스머 부인이 남편과 레베카 사이에 묘한 애정 관계가 도사리고 있다고 느끼게 되자, 레베카는 부인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것입니다. 이로써 레베카는 로스메르스홀름의 여주인이 되려고 했습니다.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로스머의 삶에 대한 입장은 자신을 귀족으로 만들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의 행복에 해를 가한 셈이다.” 대화 속에서는 하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레베카는 모든 것을 털어놓고, 로스머 농장을 떠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도 “하얀 말의 상을 직접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실제로는 아무 관계도 맺은 적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대화를 통해서 상호 에로스와는 무관하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이제 두 사람은 사회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데이트를 즐깁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방앗간 개울의 난간으로 걸어갑니다. 하녀 헬제트는 위험을 감지했으나, 두 사람을 멍하니 지켜볼 뿐 속수무책입니다. 그미는 “하얀 말이 거기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폭포 아래로 떨어지는 두 사람을 그냥 바라봅니다. 나중에 그미는 수사반장에게 “성스러운 무엇이 그들을 데리고 갔어요.”하고 말합니다.

 

 

1886년 입센은 뮌헨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이때 그는 알레고리를 사용함으로써 상징주의의 길에 접어든 셈입니다. 사람들은 작가의 놀라울 정도로 강력한 자유주의의 지조에 찬사를 보내기도 했고, 또한 이를 공격하였습니다. 실제로 작품은 일종의 “분석 극”이지만, 몽상적 내용을 해명하기 위하여 온갖 기술적 요소를 모조리 동원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계급 갈등과 같은 사회적 요소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막스 에른스트라든가 프리드리히 엥겔스 등은 극작가의 추상적 태도에 대해서 혹평을 가했습니다.

 

 

그렇지만 입센의 다른 작품도 그러하지만, 「로스메르스홀름」 역시 현대인들의 심층 심리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도 거론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로스머의 “귀한 종족”에 대한 확신은 어쩌면 “성 불능”일지 모르는 주인공의 상태에 대한 보상 심리로서 나온 것입니다. 또한 레베카의 과거 경험은 어쩌면 근친상간의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하얀 말은 궁극적으로 “구체화된 죽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T. S. 엘리엇 역시 「동방박사들의 여행 (The journey of magi)」에서 하얀 말을 끌어낸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