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로에스 8

박설호: (2)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에 실린 글은 얼핏 보기에는 블로흐 연구와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독자들은 논의의 전개 및 방법론에 있어서 에른스트 블로흐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첫 번째 글 「이반 일리히의 젠더 이론 비판」은 미발표의 논문으로서 일리히의 저작물 『젠더』를 비판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일리히의 과거 지향적 관점이 퇴행의 반동적 세계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젠더에 대한 일리치의 시각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추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입니다. 「원시 사회는 암반위에 있고, 문명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는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

27 Bloch 저술 2023.04.22

서로박: (2) 브레히트의 이단자의 외투

(앞에서 계속됩니다.) 7. 비극적으로 화형당하다: 1600년 2월 8일에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이단과 마법의 혐의로 화형당해 죽습니다. 그의 모든 책은 출판 판매 금지당하는 조처에 처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브루노가 쓴 모든 문헌은 이른바 분서갱유의 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처형의 선고가 내려질 때 브루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합니다. “너희는 나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며 이를 받아들일 것을 선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Maiori forsan cum timore sententiam in me fertis quam ego accipiam“. 거의 8년에 걸친 오랜 법적인 공방 끝에 심신이 그야말로 초췌해진 브루노는 52세의 나이에 캄포 데 피오리에서 화형대에서 불에 타서 죽게 됩니다..

46 Brecht 2023.03.11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사회의 이슈 그리고 문제점을 예리하게 통찰하여 이를 언급하는 작가 - 그는 바로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1929 - )입니다. 그의 삶은 전형적인 지식인이자 비판적인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말년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독일 철학자 하버마스는 그의 시대적 감각을 높이 평가한 것은 사실입니다. "Er hat die Nase im Wind." (Habermas) 그렇지만 엔첸스베르거의 발언이 모조리 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서양의 작가 가운데에서 1929년 생은 참 많습니다. 철학자 하버마스, 엔첸스베르거, 하이너 뮐러, 크리스타 볼프, 밀란 쿤데라, 귄터 쿠네르트 등이 1929년생입니다. 시인,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는 1929년 남쪽 독일의 소..

9 문학 이야기 2022.09.01

서로박: 중세 소설 장미 이야기

-“오늘 아침 이룬 기쁨이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머문다면 사랑은 진리처럼 언제나 내 가까이 머물고 영원히 떠나 있으리라”- (Hildegart von Bingen) (1) 얼짱 (혹은 몸짱) 그리고 장미: 친애하는 N, 독일의 시인, 릴케 (R. M. Rilke)는 장미를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모든 사람들의 눈앞에서 잠들지 않을 기쁨이여.” 그래, 장미는 꽃 중의 꽃이며,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그밖에 장미는 천국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가령 단테 Dante Aligiri는 신곡에서 천국의 장미를 천국의 완전성으로 비유했습니다. 이 경우 장미는 “신과 인간 사이의 중개물 mediator Dei et hominum”이지요. 그렇지만 모든 꽃들이 그 자체 아름다움..

38 중세 문헌 2020.06.30

서양의 건축 예술

서양의 문화는 건축의 영역에서 강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어학연수를 끝낸 K양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이델베르크에는 너무 멋진 건물이 많아요."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람의 경우는 다르지요. 대부분 한국인들이 진국이에요." ㅋㅋ 서양의 문화에서는 밝은 빛, 외형 등이 중시하는 반면에, 동양의 문화에서는 내면의 에너지, 기 등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태양을 존재의 근원으로 여기는 반면에, 동양 사람들은 태양 외에도 무 (無), 공 (空), 도 (道), 기 (氣)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제 건축 양식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동양의 건축물은 목재로 만들어졌지만, 서양의 건축물들은 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견고하고 오래 버티는 것들이 많습니다. 맨 처음..

11 조형 예술 2020.06.07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1463 - 1494)는 불과 31세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은 천재를 사랑하여 불과 30년의 삶을 살게 하고, 당신에게 데리고 가셨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에게 의지의 자유를 확고하게 심어준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베로에스였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에서 태어났습니다. 4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가 그를 키웠는데, 14살 때 철학과 고전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볼로냐 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다가 그만 어머니마저 여의고 맙니다. 1479년 그의 나이 17세 때 페라라에서 인문학 studia humanitatis 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듬해 148년에 파도바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

23 철학 이론 2019.02.08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 (1225 - 1274)는 나폴리, 쾰른, 파리, 로마, 볼로냐 등지에서 강의했다. 그의 대표적 저작물은 『신학대전 (Summa theologiae)』 그리고 『이교도에 대항하는 가톨릭 신앙의 진리에 관하여 (De veritate fidei catholocae contra gentiles)』가 있다. 사람들은 후자의 책을 『반 이교도 대전 (Summa contra gentiles)』으로 인용하곤 한다. 토마스의 철학은 알베르투스의 그것과 근친하다. 다만 토마스 아퀴나스는 철학적 내용을 스승에 비해 보다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당시에는 두 명의 위대한 예술가가 살았는데, 토마스 역시 사실에 있어서 공감을 품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니라 조토 (Giotto)와 단테 (Dante)였다. 조토..

38 중세 문헌 2018.11.23

블로흐: 아리스토텔레스 좌파 (2)

(앞에서 계속됩니다.) 뒤이어 물질에 대한 관심사를 강하게 드러낸 학자는 알렉산드로스 아프로디시아스였습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문헌 해석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는데, 이 영향은 중세까지 이어졌습니다. 그의 연구는 아비켄나, 아비케브론 그리고 아베로에스의 연구를 낳게 됩니다. 우리는 중세의 철학 강의에서 이를 다시 다루게 될 것입니다. 일단 우리는 소재와 형태 사이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를 기억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이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좌파 사상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 사항을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아비켄나Avicenna는 타지키스탄, 혹은 페르시아 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위대한 철학자인데,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 않지만, 아라비아인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부호로 지역에서 활동한 아비..

29 Bloch 번역 2017.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