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7. 비극적으로 화형당하다: 1600년 2월 8일에 지오르다노 브루노는 이단과 마법의 혐의로 화형당해 죽습니다. 그의 모든 책은 출판 판매 금지당하는 조처에 처해집니다. 다시 말해서 브루노가 쓴 모든 문헌은 이른바 분서갱유의 처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처형의 선고가 내려질 때 브루노는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합니다. “너희는 나에게 죽음의 선고를 내리며 이를 받아들일 것을 선언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구나. Maiori forsan cum timore sententiam in me fertis quam ego accipiam“.
거의 8년에 걸친 오랜 법적인 공방 끝에 심신이 그야말로 초췌해진 브루노는 52세의 나이에 캄포 데 피오리에서 화형대에서 불에 타서 죽게 됩니다. 망나니는 처형 전에 브루노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그가 인민에게 어떠한 말도 발설하지 않으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권력 집단이 한 명의 힘없는 학자에게 저지른 끔찍한 폭력으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8. 브루노의 범신론 (1): 그렇다면 브루노는 그렇게 끔찍한 무신론을 표방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브루노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신과 일치되는 자연은 물질과 어두움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브루노는 신과 세계를 구분하면서, 어떤 범신론의 사상을 추구하였습니다. 브루노에 의하면 현실은 어떤 상상 속에서 출현한 무엇으로서 이러한 믿음 속에 내재하는 존재가 신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는 라이프니츠 그리고 스피노자의 사상을 선취하는 범신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브루노는 천동설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인간과 세계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세계 실체의 어떤 우연한 사고로 출현한 무엇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브루노는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따르고 있습니다. 구분되지 않은 요소로서의 단자가 세계를 축조하는 무엇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브루노는 우주에는 수많은 정신적 특성이 존재한다고 확신합니다.
9. 브루노의 범신론 (2): 기독교 교회는 오랫동안 범신론과 무신론을 같은 차원에서 이해해 왔습니다. 브루노는 이른바 유물론으로 규정되는 물질 이론의 세계관을 전적으로 맹신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그의 세계관은 신플라톤주의의의 관념론 그리고 신비주의 사상의 전통 속에서 이해됩니다. 브루노가 아비켄나, 아베로에스와 같은 아라비아 철학자 그리고 신비주의 철학자 쿠자누스 등에게서 자신의 사상을 도출해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물론 브루노가 이른 시기에 현대의 자연과학의 놀라운 지식을 활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가령 천체에 관한 그의 자연 철학적 사고는 마치 갈릴레이가 그러했듯이 물리학적 분석의 시도를 통해서 제기된 것입니다. 브루노의 범신론적 사상 속에 도사린 신성(神性)은 아직 자연 속으로 완전히 이전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브루노는 인식 주체와는 전혀 무관한 객체로서의 자연을 연구 대상으로 삼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히려 인식하는 주체는 우주의 부분에 해당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 브루노의 사회적 위치: 이제 브레히트의 작품에 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브루노는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당시에 혁명적 발견으로 수용되던 지동설 주창자입니다. 아울러 혁명적 투사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브루노는 교회의 권력에 대항해서 싸우며, 계몽된 미래의 길을 개척한 사람으로 묘사됩니다. 흔히 사람들은 교회와 싸우면서, 지동설을 주장하는 브루노의 행위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사실 실제의 브루노는 집요할 정도로 학문적인 첨예함을 추구하는 학자였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며, 주위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브레히트가 묘사한 브루노는 놀랍게도 실존하던 브루노와는 다릅니다. 작품 속의 브루노는 범신론자가 아니라, 겸손한 무신론자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브루노를 “위대한 인물”로 묘사합니다. 사상적 탁월함 그리고 외투와 관련되는 행동이 그를 위대한 인물임음 증명해준다는 것입니다. 작품에서 브루노는 준토 부인에게 외투 값을 돌려 주려고 노력합니다. 준토 부인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공손하고 정직합니다. 문제는 외투를 찾으려는 브루노의 관점이 지극히 사회적 경제적인 시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니고”라고 불리는 어느 도시의 귀족은 브루노를 종교 재판소에 고발합니다. 브루노는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교회의 수사들이 멍청이라서 백성들을 우둔하게 만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성서의 말씀과는 달리 태양은 하나가 아니라, 무수히 많다고 말했다는 것이었습니다.
10. 재단사 준토 부인: 재단사는 자신의 청구서를 들고 모세니고의 집으로 향했는데, 그곳에서 브루노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그는 이미 체포되었기 때문입니다. 모세니고의 하인은 재단사 준토를 강하게 위협합니다. 이단자와 교우하든가 관계 맺으면 화형당할지 모른다는 게 그의 협박이었습니다. 당시 종교 재판소 그리고 이단자 등의 단어가 산천초목을 부들부들 떨게 할 정도로 무시무시했습니다.
그래서 재단사는 브루노에게 외투값을 받기를 포기해버립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힘들게 잠을 청합니다. 그렇지만 재단사의 부인은 외상값 받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처벌은 처벌이고, 빚은 빚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3개월 후 준토 부인은 계산서를 정리하다가 브루노가 외투값을 지불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미는 브루노가 수감된 유치장으로 가기로 작심합니다.
11. 브루노의 태도: 브루노는 재단사 부인을 만날 때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가요? 그는 그미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태도는 정중하였으며, 그미를 품위 있게 대했습니다. 처음에 브루노는 자신이 지닌 물품 가운데 돈이 될 만한 것이 있는지, 간수에게 물어봅니다. 이에 비하면 그미는 표면상으로 고찰할 때 소심하고, 돈에 대한 욕심을 지니고 있으며, 뻔뻔스럽기까지 합니다. 어쩌면 그미는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그미에게 충고합니다. 브루노는 목숨 걸린 문제로 재판에 회부되어 있으니, “몇 푼 돈 때문에” 그를 괴롭히지 말하라는 것이 충고의 내용이었습니다.
브루노는 다시 찾아온 노파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자신의 책을 간행했는데, 그 사람에게서 받을 돈이 있다는 것입니다, 조만간 편지를 써서 돈을 요구할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노파에게 사정합니다. 화가 난 노파는 집으로 돌아와서 남편에게 다음과 같이 일갈합니다. “종교 재판소에서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누가 아직도 돈을 보내주겠어요?“
12. 재단사의 삶과 브루노의 삶: 준토 부인이 몇 푼 돈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집요하게 행동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준토 부인의 노력과 브루노의 학문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성이 없을까요? 실제로 브루노는 자신을 둘러싼 거대한 재판 문제 그리고 사소한 외투 문제의 목표를 서로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열정적으로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브루노는 종교 재판관의 질문에 대해서도 그러했듯이, 재단사 부인이 던진 모든 질문들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이에 대해 세심하게 답변했습니다.
브루노에 의하면 한 인간의 권리는 결코 남에게 빼앗길 수 없습니다. 브루노에게는 자유가 가장 소중하듯이, 재단사 부인에게는 외투 값이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재단사의 하루 벌이는 목숨 연명하기도 힘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단사 부인은 거칠게 말하고, 악독할 정도로 돈을 밝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만 그미가 거짓말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고 초지일관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가 외상을 갚기 전에 범죄자를 구금하는 것은 창피스러운 일이다.” 라든가 “화형대 위에서는 외투가 필요 없을 텐데.”라는 그미의 발언은 일견 잔인하게 들립니다.
(뒤이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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