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철학 이론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필자 (匹子) 2019. 2. 8. 20:23

지오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 (1463 - 1494)는 불과 31세의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은 천재를 사랑하여 불과 30년의 삶을 살게 하고, 당신에게 데리고 가셨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에게 의지의 자유를 확고하게 심어준 철학자였습니다. 그의 사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아베로에스였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이탈리아의 에밀리아-로마냐에서 태어났습니다. 4살 때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가 그를 키웠는데, 14살 때 철학과 고전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볼로냐 대학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다가 그만 어머니마저 여의고 맙니다. 1479년 그의 나이 17세 때 페라라에서 인문학 studia humanitatis 에 전력을 기울입니다. 이듬해 148년에 파도바에서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합니다. 파도바 대학은 이탈리아에서 아베로에스 사상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대학이었습니다. 그곳에서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아비켄나, 아비케브론 그리고 아베로에스를 공부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1483년 피렌체로 가서 메디치 서클에 가담합니다.

 

1485년에서 1486년 사이에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잠시 파리에 체류하였는데, 그곳에서 자신이 아베로에스주의자라는 것을 재확인하게 됩니다. 어쩌면 아베로에스야 말로 르네상스 철학의 출발점으로 작용한 철학자였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급히 이탈리아로 돌아와서 아라비아어, 히브리어 그리고 아르메니아어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1486년 카발라 신비주의를 공부한 다음에 그는 플라비우스 미트리다테스의 부탁으로 카발라 문헌을 라틴어로 번역하였습니다. 말하자면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유대인이 아니면서 카발라 학문을 연구하는 첫 번째 기독교 출신의 학자였습니다. 그는 900개의 철학적 신학적 명제 conclusiones nongentae 정립하였는데, 이것으로써 세상의 모든 학자들과 얼마든지 학문적 논쟁을 벌여 그들을 꺾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1488년 로마로 향하는 길에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어느 유부녀를 사랑하게 됩니다. 그는 그미의 유혹으로 인하여 며칠 동안 정을 통하게 되는데, 유부녀의 남편이 이를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바람난 아내를 되찾았지만, 통정한 젊은 사내를 잡기 위하여 모든 가솔들을 풀었습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메디치의 보호로 화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메디치 가문 학자들을 위하여 물심 양면으로 지원하였습니다. 15세기 이탈리아가 부흥할 수 있었던 것도 메디치와 같은 사람들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학자와 예술가를 헌신적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후에 그의 문헌은 이단의 혐의를 받고 고생하게 됩니다.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31세의 나이에 열병으로 즉사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비서에 의해서 독살당했다고 합니다. 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를 사주했는지 하는 물음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