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15

박설호: (2) 에른스트 블로흐 읽기 (III)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제 3부에 실린 글은 얼핏 보기에는 블로흐 연구와 무관하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연구 대상은 다를지 몰라도, 독자들은 논의의 전개 및 방법론에 있어서 에른스트 블로흐를 유추할 수 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첫 번째 글 「이반 일리히의 젠더 이론 비판」은 미발표의 논문으로서 일리히의 저작물 『젠더』를 비판적으로 구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서 필자는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일리히의 과거 지향적 관점이 퇴행의 반동적 세계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젠더에 대한 일리치의 시각이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추상적이고 전근대적이라는 점입니다. 「원시 사회는 암반위에 있고, 문명사회는 절벽을 기어오르는가?」는 김유동 교수의 『충적세 문..

27 Bloch 저술 2023.04.22

서로박: 브레히트의 '갈릴레이의 삶' (2)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천체 물리학 연구의 위험성: 그런데 문제는 다음의 사실에 있었습니다. 이성에 대한 신념 내지 대단한 학문적 열정은 역설적으로 주인공의 정치적 감각을 무디게 만든다는 사실 말입니다. 갈릴레이는 보다 많은 수입 때문에 베네치아 공화국을 떠나, 피렌체로 거주지를 옮깁니다. 갈릴레이는 수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수학의 원리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고 학문에 몰두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래서 그는 응용학문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것은 천체물리학으로의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가끔 물 펌프를 생산하고 망원경을 제조하여, 그게 자신의 발명이라고 공언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갈릴레이는 천체 물리학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체제의 전복을 낳게 되는 뜨거운 감자라는 사실을 사전에 간파하지 못..

46 Brecht 2023.02.20

서로박: (5) 돈 앞에서 공정과 정의는 없다

(앞에서 계속됩니다.) 13. 통치에 유리하게 활용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의 개념: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정의의 개념은 처음부터 가부장주의의 사고로부터 한 치도 벗어나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인민이 아니라 지배자, 다시 말해서 통치 기관에 유리하도록 설정되어 있습니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개인으로서의 정당성 내지 개개인들의 사적 관계로서의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떤 (마치 관대한 자선이라든가 고결한 마음씨와 같은) 정서 내지 지조와 관계되는 미덕이 아니라, 처음부터 오로지 외부적으로 드러난 행동으로 국한되어 있을 뿐입니다. 자고로 개인은 스스로 공명정대한 자세를 취하면서 얼마든지 불법적 행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의라든가 불의를 허용하거나 허용하지 않..

2 나의 글 2022.12.05

블로흐: 파르메니데스와 피타고라스의 물질 이론

그런데 과거 사람들은 운동보다도 멈춤에 관해서 강력하고 집요하게 추적하였다. 그리하여 멈춤은 쉽사리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과장되었다. 멈추어 있는 존재는 이루어진 무엇으로 나타난 게 아니라, 본원적 실체로 이해되었다. 다시 말해 실체는 생동하지 않으며, 어떠한 날씨의 변화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엘레아 학파들은 다만 스스로 생명으로 치장해 있는, 어떤 죽음 충동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사고는 비밀스러운 광채에 의해서 번득였다. 엘레아 철학자들은 늙은 다음에 찾아오는 죽음의 상에 대해 반대했다. 그들은 “가득 찬 무엇 πλέον”을 몹시 애호하며, 공허함을 거부하고 혐오한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항상 허무주의가 자리하고 있었다. 엘레아 학파는 무엇보다도 완전한..

23 철학 이론 2022.11.05

서로박: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예술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B.C. 384 - B.C. 322)의 "시 예술에 관하여 (Peri poietikes)" (일명 "시학")는 기원전 335년경에 집필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은 중세에 사라졌다가, 1481년 베니스에서 발췌 본으로 처음 간행되었다. 누군가 아라비아어의 원전을 발췌하여 부분만 라틴어로 번역했다. 1498년 베니스에서 라틴어로 다시 출간되었으며, 1508년에 그리스 원어로 간행되었다. 독일어판은 1753년 하노버에서 간행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은 대중을 위해 집필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비로운 철학 서적으로 간주된다. 제 1권은 미완성으로 남아 있고, 희극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 2권은 안타깝게도 유실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문학 작품을 “미메시스 (모방)”라고 명명한..

25 문학 이론 2022.03.12

(명시 소개) (2) 풍요와 불모 사이. 장석의 시, 「두루미에게」

(앞에서 이어집니다.) 너: 그렇다면 시인은 어떠한 이유에서 땅과 두루미의 만남을 묘사하고 있나요? 이 질문은 시적 주제와 관련되는 것 같습니다만...... 나: 작품의 주제는 미리 말씀드리건대 첫째로 전기적 측면에서, 둘째로 사회적 측면에서 그리고 셋째로 생태적 측면에서 도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로 시인은 두루미와 땅의 만남을 통해서 두 가지 사항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상부지향의 성공에 대한 욕망을 떨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끝내는 일입니다. 너: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시지요? 나: 그러지요. 물론 우리는 장석 시인이 작품 「두루미에게」를 언제 완성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선 시인은 더 이상 다른 사람을 노동을 활용하여 부를 ..

19 한국 문학 2021.09.09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3)

에른스트 블로흐는 아직 완결되지 않은 존재로서의 존재를 “아직 아닌 존재 (das Noch-Nicht- Sein)”로 규정하였다. “아직 아닌 존재”는 “아직 아닌 의식” 내지 “의식되지 않은 무엇”과 연합 전전을 구축하고 있는데, 블로흐 이전의 형이상학에서는 학문적으로 명명된 바 없다. 이전의 형이상학에서는 존재는 처음부터 완결되어 있는 무엇으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블로흐의 경우는 이를 배격한다. 때문에 블로흐의 철학은 새로운 형이상학이라고 명명될 수 있다. 그렇지만 블로흐가 과거의 형이상학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블로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다음과 같은 핵심적 사고를 차용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본질은 개별적으로 실존하고 있는 무엇과의 일치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아..

29 Bloch 번역 2021.08.24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2)

1961년 블로흐는 자신의 튀빙겐 첫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희망은 환멸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가?” - “분명히 그렇다. 굉장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환멸은 희망이라는 남자 곁에 동행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대답은 블로흐의 실제 삶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블로흐는 제 1차, 제 2차 세계대전을 체험했다. 1933년 3월 6일 그는 1917년의 망명 국가였던 스위스로 재차 망명해야 했다. 1934년 그는 빈으로 가서 자신의 세 번째 부인 카롤라와 결혼했다. 1935년부터 두 사람은 파리에서 살았고, 1936년부터 1938년까지 프라하에서 생활했다. 1938년 그들은 배를 타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1948년 블로흐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교수 초빙에 응했다. 자신의 명확한 자의식은 라이프치..

29 Bloch 번역 2021.08.24

호르스터: 블로흐의 사상 (1)

블로흐의 주저 『희망의 원리』는 1938년부터 1947년 사이에 미국 망명 시에 집필되었으며, 제 1권은 구동독에서 1953년에 간행된 바 있다. 이 책은 여러 가지 대상을 다루면서 어떤 더 나은 삶에 대한 갈망이 인간을 추동하는 결정적인 모티브라는 사실을 피력하고 있다. 블로흐는 회화, 건축, 음악 그리고 문학 등의 제반 예술 장르를 하나씩 분석하고, 동화, 영화, 여행, 유행, 진열장, 춤, 무언극, 낮꿈과 밤꿈, 종교 그리고 신화 등을 차례로 거론하면서, 이들 속에 담긴 유토피아의 요소들을 해명해 나간다. 나아가 그는 통속 문학, 영화관, 일 년 시장, 축제 등의 영역을 긍정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어떤 소외되지 않은 사회적 정치적 현실 상태에 대한 희망의 가장 다양한 표현 형태들을 ..

29 Bloch 번역 2021.08.24

키케로의 국가론 (2)

6. 개괄적 요약,『국가론』 제 1권: 처음에 대화참여자들은 기이한 자연 현상에 관해서 이야기하다가, 핵심적인 테마인 국가의 법에 관해서 차례대로 의견을 개진합니다. 과연 어떠한 법이 최상의 국가가 견지해야 할 법인가? 하는 게 논제가 된 것입니다. 제 1권에서 사람들은 국가가 형성되는 이유를 거론합니다. 흔히 말하기를 국가가 형성되는 까닭은 인간의 “나약함imbecillitas”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키케로에 의하면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사회적 특성을 지니는데, 이는 서로 아우르며 “무리를 형성하려는 욕구congregatio”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뒤이어 대화참여자들은 국가 내지 공동체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공개적 사안res publica”이 지..

38 중세 문헌 2021.0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