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6.
하이너 뮐러 그리고 동시대 지식인 사이의 의견 대립은 극작가 페터 학스 Peter Hacks와의 논쟁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학스는 -볼프 비어만의 표현을 빌면- “낡아빠진 고대 소재를 숙련된 솜씨로 잘 짜 맞추는 기술자”에 불과했습니다. 학스가 극예술 창작에서 필요한 모든 기준을 독일 고전주의에서 이미 발견했던 반면에, 뮐러는 고전적 작품을 하나의 모범으로 삼으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뮐러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움의 미학이었지요. 뮐러는 60년대부터 항상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예술은 오로지 새로움에 의해서 합법화될 수 있다. 만약 그게 과거 문학 내지 예술적 조류를 반복한다면, 예술 작품은 기생물이나 다름이 없다.”
뮐러의 견해에 의하면 과거의 훌륭한 무엇을 추종하고 모방하는 작업은 무가치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창조자이며, 결코 대가 (大家)의 원래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그들의 창조물에 빌붙어 사는 기생충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뮐러의 눈에는 무조건 독일 고전주의를 찬양하는 페터 학스가 원전 숭배주의자로 보였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K씨, 원전 숭배주의자들은 지금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활개를 펴며 살아왔습니까? 그들은 한결같이 “훌륭한 모범서가 있으니, 우리는 그 책을 계속 읽고 주석을 달면 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비근한 예로 클라라 제트킨 C. Zetkin이 “여성 운동은 마르크스의 저서에 모조리 기록되어 있으니, 재론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작가들은 그저 괴테의 작품들을 모방하면 되고, 자유에 관한 실러의 이념을 충실하게 따르면 된다.”고 공언하는 경우를 고려해 보십시오. 이러한 슬로건들은 비록 구동독에서 나온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볼 때 지극히 시민주의적인 어떤 과거 지향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럽 문예 운동의 기초적 토대가 되는 ‘미메시스 μιμησις’의 개념도 따지고 보면 “기존했던 완전한 상”을 반복해 보려는 과거 지향적 발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수준 작이 여기 있으니 그냥 모방하라.”라는 권위주의적인 전언은 오랜 기간동안 작가를 얽어매는 이데올로기적 당연 성으로 작용하였지요.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모방이란 ‘오래된 좋은 것’에 대한 재 기억입니다. 모방이란 ‘이미 본 것 déja vu’, ‘모범적 원형’ 그리고 찬란한 과거에 대한 “재 기억 ανάμνήσις)”이지요. 이러한 개념들은 새로움과 혁신적 사고 내지는 어떤 또 다른 새로운 이상을 발견하려는 진정한 문학 행위를 방해하고 차단해 왔습니다.
어쨌든 페터 학스와 하이너 뮐러 사이의 의견 대립은 프리드리히 볼프 (Fr. Wolf)와 브레히트 사이의 대립을 방불케 하는 것으로서 지금까지 사회주의 문예 이론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제기된 문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쨌든 학스는 시종일관 독일 고전주의를 추종함으로써, 당 지도부의 비판적 시선을 피할 수 있었으며, 뮐러는 고대 그리스의 소재를 문학적으로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실험을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7.
기실 문학 이론과 문학 작품의 상관관계는 오래 전부터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냈습니다. 입장이 결여된 나열 위주의 미시적인 연구 방식도 문제이지만, 세부적 사항을 알지 못하면서 특정한 견해만을 고수하는 거시적인 연구 방식도 문제일 것입니다. 전자의 경우가 마치 미로의 쥐처럼 방향성을 망각하는 맹신적 경험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다면, 후자의 경우는 자신의 견해만을 정당화시키려고 증거를 찾아 헤매는 학문적 신비주의의 함정에 빠져 있습니다. 언젠가 도정일 교수는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에서 전자를 여우의 습성으로, 후자를 고슴도치의 습성으로 비유한 바 있지요. 그런데 K씨, (지엽적인 사항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독일과 한국의 대학생들의 공부 방식을 비교하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한국 대학생들은 입장이 결여된 나열 위주의 연구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에, 대체로 독일의 대학생들은 세부적 사항을 등한시하면서 특정한 자기주장만을 고수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친애하는 K씨, 하이너 뮐러의 문학을 연구할 때, 우리는 반드시 바로 이러한 차이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이너 뮐러는 자신의 작품이 하나의 유일한 리얼리즘 문학의 원칙 속에 편입되기를 몹시 꺼렸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다양한 현대적 기법을 과감히 사용하였습니다. 기실 구동독에서는 ‘모더니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공론화 되어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단어 자체가 처음부터 “체제 파괴적 subversiv” 의미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었지요. 또한 구동독에서는 마르크스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의 문학마저도 수정주의적이라고 비난당했습니다.
그러니까 견원지간 (犬猿之間)에는 하나의 원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원칙 (猿則)과 이에 위배되는 견칙 (犬則)이 있지요. 또한 심한 갈등이 온존하고 있는 현실의 바둑판 위에는 회색 바둑알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결코 실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구동독의 문화적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한다면, 하이너 뮐러의 문학 작품에 겉으로 드러난 특성이 어째서 비극적이고 참담한가를 유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구 동독의 연구자들은 마치 고슴도치처럼 원칙에서 일탈된, 뮐러 문학의 자유분방하고 체제 파괴적인 특성을 오랫동안 비난하였지요. 그렇다고 해서 어찌 우리가 마치 여우처럼 하이너 뮐러의 문학적 표현에 집착하여, 문명 비관주의 내지는 반 유토피아적 회의주의만을 발견해야만 하겠습니까? 우리는 나무와 숲을 동시에 보아야 하며, 땅속의 뿌리 (주어진 사회 현실) 그리고 바깥의 잎 (작가의 작품)과 둥치 (작가의 의도) 등을 예리하게 구분해야 할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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