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13 5

박설호: (4)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12. 상기한 사항을 고려할 때 흙이란 물과 마찬가지로 가장 낮은 도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기본적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의 에피소드를 첨부하려고 합니다. 언젠가 공자의 제자. 자공(子貢)은 도에 관하여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도(道)란 타자와 자연을 깔보지 않고 섬기고 마치 주인처럼 모시는 자세와 관계되는 것 같습니다. 남의 아래에 처하는 도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를 깨달을 수 있을까요?”  이때 공자는 좋은 질문이라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아래에 처하는 도리를 흙에서 발견해야 하네. 흙이란 파고 들어가면, 좋은 샘을 얻을 수 있고, 여기에 오곡을 심을 수 있네, 흙은 초목을 자라게 하고, 온갖 동물에 해당하는 조수어별(鳥獣魚鼈)을 기르게 해주네..

2 나의 잡글 2024.06.13

박설호: (3)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9. 마지막으로 흙의 권리에 관한 네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합니다. 첫 번째 사항은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입니다. 부식질은 토양 유기체의 작용으로 식물을 탄생시키고, 자라게 하며 사멸하게 합니다. 생명의 기운은 봄이면 지상으로 솟구치고, 가을이면 지하로 내려갑니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하데스의 페르제포네 납치라는 비유로 탄생과 사멸의 순환 과정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식물의 기운은 겨울에는 지하에, 여름에는 지상에 머뭅니다. 생명체의 삶이 슬프고 애틋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 자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무기물 그리고 생명의 종(種)은 무한으로 이어지지만, 생명체는 사멸을 전제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흙의 권리에 관한 두 번째 사항은 자식을 탄생시키는 여성성의 우선권입니다. 처녀..

2 나의 잡글 2024.06.13

박설호: (2)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두 번째는 유교적 남성주의의 폭력이라는 비합리성입니다. 조선 시대에 나타난 양반과 상놈 사이의 수직 구도는 오늘날 상당 부분 사라졌지만, 개별적 인간은 여전히 등급으로 차별화되어 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인간 존재 자체가 자본주의의 경제적 조건에 의해 수직적 계층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인간 가치는 돈에 의해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남성 중심주의의 여러 유형의 폭력은 특히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핍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는 세대를 넘어서 폐쇄적 가족 구도 속에서 대물림되어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족, 학교, 교회, 회사, 여러 단체는 폐쇄적인 수직 구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인 물이 썩듯이, 외부로부터 차단된 사회적 공간에서는 폐쇄적인 섹트주의 내지는 당동벌이라는 의식이..

2 나의 잡글 2024.06.13

박설호: (1)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흙의 권리는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으로, 여성성의 우선권으로, 물질의 중요성으로, 죽음의 소중한 가치로 설명된다.” (필자) 1. 친애하는 M,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미지의 독자,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상처를 내밀하게 전하는 데에는 서간체가 가장 좋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청년이었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Бедные люди』 (1844/45)을 읽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상대방을 깊이 애호하는 마카르 제브시킨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돈 많은 다른 사내를 선택해야 하는 바바라 도브로요브스카 사이의 이별은 참으로 애절한 것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석영중 역, 열린책들 2010.) 그래, 편지는 때로는 ..

2 나의 잡글 2024.06.13

아라두파이: 소수에 대한 두려움

아르준 아파두라이: 소수에 대한 두려움,장희권 역에코 리브르 2011 간행     지구는 하나이되 여러 조각이다. 지구가 하나라는 논리를 따르면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는 인적·물적 교류는 조화와 융합을 꾀한다. 그러나 더 깊은 속을 들여다보면 융합의 방향은 일방적이다. 크고 힘센 국가(다수)가 작고 약한 국가(소수)를 억압하는 식이다. 인류는 지구화(세계화)를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인종·민족·종교 등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분쟁·테러·갈등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다수와 소수의 관계를 통해 지구화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봤다.

1 알림 (명저) 2024.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