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박설호: (1)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필자 (匹子) 2024. 6. 13. 11:07

 

“흙의 권리는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으로, 여성성의 우선권으로, 물질의 중요성으로, 죽음의 소중한 가치로 설명된다.” (필자)

 

1. 친애하는 M,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미지의 독자,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상처를 내밀하게 전하는 데에는 서간체가 가장 좋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청년이었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Бедные люди』 (1844/45)을 읽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상대방을 깊이 애호하는 마카르 제브시킨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돈 많은 다른 사내를 선택해야 하는 바바라 도브로요브스카 사이의 이별은 참으로 애절한 것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가난한 사람들, 석영중 역, 열린책들 2010.) 그래, 편지는 때로는 학술 논문보다 더 큰 영향력을 지닙니다. 일반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다가가려면, 서한집이 효과적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바쁜 세상에 누구나 짤막한 글 정도는 읽을 테니까요.

 

2.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은 말 그대로 편지 모음집입니다. 여시아독(如是我読)의 고백록이라고나 할까요? 가령 필자는 어떤 특정한 주제를 미리 설정한 다음에 이를 집중적으로 구명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뒤엉켜 있기 때문입니다. “오르플리트Orplid”는 통상적으로는 독일 시인, 에두아르트 뫼리케Eduard Mörike가 갈구한 이상적인 섬을 가리킵니다. 필자는 서한집에서 오르플리트를 약간 다른 의미로 설정하려고 합니다. 오르플리트는 우리가 현재 머무는 “지금 여기”의 공간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평화로운 생태공동체의 공간일 수 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한스 파이힝거Hans Vaihinger는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해서는 “주어진 세계”와 “가상적인 세계” 사이를 저울질해야 한다고 피력하였습니다. [Alfred Schilken (hrsg.): Hans Vaihinger: Philosophie des Als Ob,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2014] 만약 우리의 꿈이 터무니없고 무기력한 게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 어떤 가능성을 촉진하는 수단이라면, 우리는 “쓸모 있는 허구nützliche Fiktion”로서의 가능성을 마냥 저버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르플리트는 에른스트 블로흐가 말한 “습득한 희망docta spes”으로서의 구체적 제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오르플리트로 향하는 꿈은 결코 “욕망 기계의 착상” (들뢰즈)으로 사라지는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보다 낫게 변화시킬 가능성 내지는 촉매제로 작용합니다. 요약하건대 오르플리트는 변화된 실제 현실을 선취한 상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습니다.

 

3. 현대인은 생명 중심의 사고를 새롭게 견지하기는커녕 여전히 사회적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재”는 마르크스가 언급한 바 있듯이 “의식”을 앞섭니다. 인간의 견해는 주어진 사회적 정황에서 서서히 형성되는 무엇이지요. 마치 우리의 인성이 부모의 그것과 주어진 환경에 의해 후천적으로 생성되듯이, 우리의 의식 구조 역시 역사적 조건과 주어진 현실적 조건으로부터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의 아비투스는 역사적 사건 그리고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 등에 의해 나중에, 그것도 인위적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현존하는 아비투스 그리고 시대정신은 어떻게 포괄적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요? 이에 관한 논의는 난해하고도 힘든 과업이므로, 지금까지 수없이 개진되었습니다. 그런데 등하불명이라고, 우리는 어쩌면 나라의 밖에서 이것들을 더욱 명료하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시대의 상처는 우리 앞에서는 현저하게 눈에 띄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우리의 오르플리트에 안개를 자욱하게 드리우게 하고, 우리의 내면에 연속적으로 상처를 가해 왔을까요?

 

4. 첫 번째는 분단과 불신이라는 폭력의 비합리성입니다. 불과 70년 전에 한반도에서 끔찍한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그 후로 우리 전의식의 배후에는 어떤 폭력의 명료한 현재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남북한의 긴장 관계 그리고 분단이라는 힘든 고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입니다. 고통과 상처의 아픔은 정치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관계의 심리 구조 속에서 두려움과 갈등을 조장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남북한은 물론이고, 사람들끼리 서로 신뢰하지 못하게 작용합니다. 이로 인하여 남한의 반공주의는 우리의 정치적 견해를 공정하게 수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북한의 전체주의 시스템은 개개인의 자유를 옥죄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과 불신의 고리를 끊어내는 일이야말로 근본적으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 채택해야 하는 전제 조건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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