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9. 마지막으로 흙의 권리에 관한 네 가지 사항을 지적하려 합니다. 첫 번째 사항은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입니다. 부식질은 토양 유기체의 작용으로 식물을 탄생시키고, 자라게 하며 사멸하게 합니다. 생명의 기운은 봄이면 지상으로 솟구치고, 가을이면 지하로 내려갑니다. 가령 그리스 신화는 하데스의 페르제포네 납치라는 비유로 탄생과 사멸의 순환 과정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식물의 기운은 겨울에는 지하에, 여름에는 지상에 머뭅니다. 생명체의 삶이 슬프고 애틋한 의미를 부여하는 까닭은 그 자체 유한하기 때문입니다. 무기물 그리고 생명의 종(種)은 무한으로 이어지지만, 생명체는 사멸을 전제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흙의 권리에 관한 두 번째 사항은 자식을 탄생시키는 여성성의 우선권입니다. 처녀생식, 다시 말해 단성 생식은 생물학에 의하면 곤충이나 어류에서 확인되는 사항이며,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에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최소한 여성의 성이 남성의 성보다 앞서 출현했다는 가설은 생물학의 역사에서 정당성을 획득하기에 충분합니다. 모든 생명체는 약 2억 년 전에 남성이 배제된 단성 생식에 의해서 종을 이어갔습니다. 예컨대 동물에게 남성의 성기가 출현한 때는 약 2억 년 전인 파충류 시대부터였습니다. 바로 이때부터 동물은 남성과 여성의 짝짓기에 의해 후손을 출산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이전의 시기에는 남성의 도움이 없이 종을 이어갔다는 말인데, 이러한 번식을 가능하게 한 것이 다름 아니라 단성 생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처녀생식에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여 여성 공동체를 서술한 작가는 놀랍게도 샬롯 퍼킨스 길먼이었습니다. 길먼의 소설 『여자들만의 나라Herland』 (1915)에는 모든 자식은 처녀생식의 방식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함으로써 여성 공동체는 인구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다음의 가설을 에코페미니즘의 단초로 채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태초에는 모든 생물이 여성으로 창조되었으리라는 가설을 생각해 보세요. 여성성이 생명의 근원이라는 주장은 모니카 스주와 바바라 모어의 책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Sjoo Monica and Mor Barbara (1975): The Great Cosmic Mother, San Francisco. 1975, P. 11).
10. 흙의 권리에 관한 세 번째 사항은 물질의 중요성입니다. 생태계 파괴 현상은 근본적으로 자연과 세계를 타자로 구분하고, 객체로 치부한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나와 타자는 시각의 관점에서 나누어지고 분할되었습니다. 여성은 남성에 의해, 흑인은 백인에 의해, 노예는 정복자에 의해 양적으로 계량화 되었을 뿐입니다. 인간은 자연과 세계를 유기물과 무기물로 나누고, 이를 종속 관계로, 수직 구도의 계층으로 설정했습니다. 이로 인해 나타난 것이 바로 물구나무 선 먹이 피라미드입니다. 인간 동물은 80억 이상으로 늘어난 반면, 플랑크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지구의 검은 피 (석유)가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촉진하였습니다.
문제는 주로 백인 남성들이 흙, 지구 그리고 무기물을 활용가치를 지닌 객체로 취급해 왔다는 사실입니다. 지구는 광물을 은폐한 자궁이었고, 갱도는 지구의 질(膣)이었습니다. 야금술이란 기껏해야 금속을 인공 자궁으로 탄생시키는 수단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캐롤린 머천트: 자연의 죽음: 전우경, 이윤숙 외 역, 미토 2006, 27쪽). 문제는 이러한 구분과 분할 그리고 해체 작업에 있습니다. 21세기에 태동한 신유물론은 생명체와 무기 물질의 구분을 철폐하고 동등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거대한 “가이아로서의 지구” (러브록)는 구분과 차별 그리고 선입견 없이 고찰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신유물론의 사고는 나를 비롯한 무지렁이들의 각성과 깨달음을 전제로 하는 게 분명합니다.
11. 네 번째 사항으로서 흙의 권리는 죽음의 소중한 가치 또한 일깨워줍니다. 흙은 생명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흙은 주지하다시피 “부식질humus” 그리고 “퇴폐물detritus”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인간과 생명체가 죽어서 흙이 된다는 점에서 흙은 죽음의 본원적 의미를 알려줍니다. 무기질은 영원히 죽어 있지만, 생명체는 흙과 대지 속에서 탄생과 사멸을 반복합니다. 흙의 권리는 죽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왜냐면 누구든 죽음의 숙명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모든 약육강식이 일회적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강자, 성공한 자, 부자 그리고 가해자 등의 자만심은 죽음 앞에서 사라지고, 약자, 패배자, 거지 그리고 피해자 등의 심리적 위축감은 –만약 그들이 특정 종교의 신자라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혹은 자손들의 노력으로 충분히 보상받을 수도 있습니다.
(4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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