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잡글

서로박: 파시즘과 야합하는 언론

필자 (匹子) 2025. 1. 26. 10:45

 

1. 정치적 우경화 현상: 근자에 계엄령 선포와 내란의 진압 그리고 법원 난동 사건 등이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빙산의 일각으로서 사회 곳곳에 극우 파시즘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사실 남쪽의 정치적 지형도는 주지하다시피 우측으로 편향되어 있습니다. 이에 대한 이유로 친일파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 남북 분단 그리고 625 전쟁, 수십 년간 이어진 이승만 박정희의 독재 체제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금기 내지는 매카시즘은 좋든 싫든 간에 극우 세력에게 크고 작은 자양을 공급해 왔습니다.

 

2. 대부분 언론사는 눈을 아래로 깐다.: 필자는 극우 파시즘 세력이 제거되지 않은 이유를 무엇보다도 언론 이데올로기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신문과 방송은 항상 지배자의 감시를 받아온 게 사실입니다. 걸핏하면 압수수색 당하고 세무조사 당하는 언론사는 지배 세력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비판의 과녁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비민주적인 검열 속에서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 하나는 사보타주의 방식으로 진실을 보도하는 일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권력의 개가 되어, 어용의 역할을 행하는 일이었습니다.

 

3. 보수 언론은 편하고, 진보 언론은 활동하기 힘들다.: 가령 손기정의 일장기 말소 사건 이후로 언론사가 살아남으려면 싫든 좋든 간에 체제 옹호의 태도를 고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신문 방송이 약자인 인민의 편에서 체제 비판적 입장을 표방하기란 참으로 힘이 듭니다. 어쩌면 신문이라는 속성이 처음부터 체제 옹호를 전제로 간행되는지 모릅니다. 1950년대 이후로 살아남은 언론사는 조중동 할 것 없이 현 정권을 옹호하는 성향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4. 체제 비판적 언론 기관은 크든 작든 간에 핍박당한다.: 한국 사회는 우경화의 성향을 보여줍니다. 이는 후기 파시즘이 암약할 터전을 마련해줍니다. 대부분 신문사와 방송사들은 권력 친화적인 자세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이르러 레거시 미디어가 서서히 영향을 상실하고, 개인과 그룹의 유튜브 방송이 득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가운데에는 극우 유튜브 채널이 대다수이며, 구독자 수는 100만 명이 넘기도 합니다. 당국은 이들에 대해 어떠한 제재를 가하지 않고, 김어준과 같은 이른바 좌파라는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만 집중적으로 압수수색 그리고 세무조사를 일삼습니다.

 

5. 양비론은 없다.: 신문은 오로지 사실만을 보도하는가요? 그런데 이보다는 사실에 대한 보도의 배후에 어떠한 입장과 견해가 도사리고 있는가? 하는 물음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신문과 방송은 두 가지 정치적 견해에 수미일관 양비론으로 일관해도 좋은가요? 흔히 양측의 대립하는 정치적 견해에  중립을 취하는 게 온건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도대체 가치 중립성이란 무엇인가요? 한 가지 구체적 사안을 파고들면 거기에는 옳고 그른 사실만이 존재할 뿐, 양비론에 입각한 이원론적 가치 판단은 실제 현실에서 성립될 수 없습니다. 주어진 현실의 특정 사안을 전제로 할 때 몇몇 예외사항을 제외한다면, 옳고 그름의 판단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6. 가짜 뉴스가 속출하는 이유: 그러나 신문과 방송은 5W 1H의 원칙에 의해서 사실을 보도하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냐면 기자들은 제삼자로부터 엿들은 사실, 잘못된 통계 등을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베껴 쓰기 때문입니다. 바로 여기서 가짜 뉴스와 왜곡 뉴스가 속출하게 됩니다. 가짜뉴스가 거짓 뉴스라면, 왜곡 뉴스는 사실을 보도하되, 사실의 저의나 배후를 왜곡하여 보도하는 뉴스를 가리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사항은 “모든 것을 의심하라De omnibus dubitandum”라는 마르크스의 전언일 것입니다. 여기서 설득력을 얻게 되는 말은 막스 프리쉬Max Frisch의 “진실은 자신이 직접 바라본 것이지, 타인에 의해 전해 들은 사실일 수는 없다.”는 발언일 것입니다.

 

7. 왜곡 뉴스가 더 끔찍하다.: 가짜뉴스는 대중들의 견해를 이리저리 조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거짓된 뉴스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이 기만당할 수 있습니다. 가령 대권 후보였던 굥석열은 조중동 언론의 농간으로 인해 본 모습이 가려져 있었으며, 이로써 대통령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가짜 뉴스의 폐해는 너무나 끔찍합니다. 레거시 미디어 그리고 유튜브 방송은 공통적으로 이러한 문제와 관련됩니다. 그런데 필자는 가짜 뉴스보다 왜곡 뉴스를 더 끔찍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가짜 뉴스는 언젠가는 가짜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지만, 왜곡 뉴스는 백일하에 밝혀지는 일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8. 언론은 우리를 세뇌할 수 있다.: 기자는 뉴스를 교묘하게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 보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뉴스는 얼마든지 편파적 판단을 은근히 강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보도를 통해서 구독자는 기자의 입맛에 따라 세뇌되고 “가스 라이팅” 당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러한 왜곡 뉴스가 나중에 들통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원래 인간은 수많은 사실을 일차적으로 접한 다음에 자신의 견해를 확립하곤 합니다. 그런데 왜곡된 뉴스에 익숙하게 된 독자는 일차적으로 정치적 판단을 서둘러 내리며, 자신의 아집을 공고히 하게 됩니다. 이로써 특정 신문사 구독자는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원숭이”로 전락하게 됩니다.

 

9. 언론은 우리의 의식을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수 있다.: 이렇듯 언론의 기능 가운데에는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습니다. 신문과 방송은 공개적으로 그리고 비밀리에 여론을 조작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봅시다. 북한의 로동신문은 당국에 대한 인민의 불만 사항 그리고 비판적 견해를 보도하지 않고, 지엽적인 사실만을 보도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문과 방송은 때로는 중요한 사항을 보도하지 않고, 그야말로 대수롭지 않은 사건들을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일반 사람들의 관심사를 얼마든지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할 수 있습니다.

 

10. 지성인은 행과 행 사이를 읽는다: 그렇다면 수용자인 우리는 신문과 방송을 아예 무시해야 할까요? 그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떠한 입장을 택하는 게 바람직할까요? 그것은 자기반성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매체를 수시로 접하는 일입니다. 사건의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건의 내용을 전하는 자의 올바른 (혹은 음험한) 의도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앞에서 거론한 언론의 교활한 속성을 일차적으로 감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행과 행 사이를 읽어나가야 (inter + lectere)” 할 것입니다. 그게 권력 그리고 언론에 속아넘어가지 않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11. 진정한 의미에서 언론의 자유는 무엇인가?: 언론 기관은 정치적으로 100 퍼센트의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 그리고 세무조사 등은 법으로 금지해야 합니다. 언론사 내부의 구성원들 역시 자유를 보장받아서 수직적 구도의 상명하달의 비민주적인 행태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언론 기관은 기사에 대한 모든 판단은 독자의 몫이되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선언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가 언론의 자유를 실천하는 데 필수적 사항일 것입니다. 그 밖에 언론사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사전에 차단될 필요가 있습니다. 조선일보는 지금까지 가장 많은 액수의 정부지원금을 수령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