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1) 체자레 파베세의 두 편의 소설

필자 (匹子) 2024. 12. 16. 10:40

 

1.사랑은 미친 짓이다: 이탈리아의 작가, 체자레 파베세 (Cesare Pavese, 1908 – 1950)는 “사랑은 혐오를 남기는 위기다.L'amore è una crisi che lascia antipatie”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 현대인 가운데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왜냐면 대부분 사람은 무엇보다도 사랑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행복을 갈구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은 파베세에 의하면 당사자에게 어떤 위기를 안겨준다고 합니다. 왜냐면 사랑하는 순간 인간은 크고 작은 괴로움에 휩싸이고, 자신의 임에 의해 종속되거나 지배당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견해를 무조건 옳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성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부담감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는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인간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임을 위해서 자신의 고유한 의지를 일부 포기해야 합니다. 혹자는 이를 “사랑의 희생”이라고 말하고, 혹자는 “세뇌”, “지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체자레 파베세는 이를 체험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몹시 야윈, 내성적인 남자였는데, 평생 고독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시와 산문을 집필했으며, 간간이 시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습니다. 잠깐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했는데, 이러한 사랑은 그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다고 합니다. 그가 남긴 일기장에는 자신의 성적 불능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자학이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은 한 인간의 안온한 사랑의 감정을 망치게 하였고, 여성들을 멀리하게 했으며, 급기야는 여성 혐오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2. 고독을 자청하는 인간 혐오자: 체자레 파베세는 북부 이탈리아의 산토 스테파노 벨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그것은 남쪽의 지중해가 보이는 마을이었는데, 꿈을 키워온 지역이었습니다. 파베세는 바다 멀리 위치한 미국을 동경했습니다. 자신의 데뷔작품 『농부들 틈에서』에서 자신의 고향은 “혼란스러운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의 몸”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향, 즉 여성적 존재는 자신이 함부로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차단된 비너스의 산과 같았습니다. 파베세는 젊은 시절에 파시즘 정당에 가입했는데, 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파지금 정당은 나중에 군복무 없이도 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다고 선전했던 것입니다.

 

파베세는 저항 운동에 참여하는 여자의 비밀 편지를 전해주었다는 혐의로 이탈리아 남부의 칼라브리아 지방으로 추방당하기도 했습니다. 그곳에서 이탈로 칼비노 (Italo Calvino, 1923 – 1985)를 사귀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탈로 칼비노는 파베세야 말로 자신의 선생이며, 가장 친밀한 독자였음을 실토하였습니다. 그는 마흔두 살 때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한마디로 체자레 파베세는 여성과의 염문을 퍼뜨리는, 바이에른 출신의 낙천주의자, 베르톨트 브레히트와는 정반대 성격의 소유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신뢰할 수 없는 여성은 괴롭힘 당해야 마땅합니다." (체자레 파베세)

 

3. 버림받음 그리고 추방: 오늘 우리는 체자레 파베세의 책, 『그가 연설할 때 닭이 울었다Prima che il gallo canti』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1948년에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간행되었는데, 여기에는 두 편의 장편 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그 하나는 『유배 Il carcere』이며, 다른 하나는 『언덕 위의 집』입니다. 첫 번째 작품, 『유배』는 1938년 유럽에 파시즘이 득세할 무렵에 집필되었는데, “망명”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듯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해안의 고적한 마을입니다. 작가는 1935년에 당국으로부터 추방당한 적이 있는데, 이러한 체험이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스테파노는 정치적 이유로 인하여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최근에 출소한 젊은이인데, 낯선 곳에서 마치 추방자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위의 현실은 적대적 감정을 부추기게 합니다. 스테파노는 이탈리아 남부의 이웃과 만남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4. 두 여성, 엘레나와 콘치아: 스테파노는 여관에 머물고 있는데, 여관집 주인에게는 딸. 엘레나가 있습니다. 엘레나는 돌싱녀로 주인공 스테파노에게 접근합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싹틉니다. 스테파노는 한편으로는 사랑의 안온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엘레나가 마치 어머니처럼 자신을 보살피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고 그미에게서 벗어나 혼자 살까 하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여관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식당에는 콘치아라는 여성이 일하고 있는데, 스테파노는 그미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콘치아는 자유분방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것 같습니다. 스테파노는 자신의 속마음을 전할 수 있는 친구, 지아니노를 사귀게 됩니다. 주인공은 오로지 지아니노에게 두 여인에 대한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털어놓곤 합니다. 지아니노는 소극적이고 수치심으로 가득한 주인공에게 핀잔을 가하면서, 일단 두 여성과 동침하라고 조언합니다. 애인을 선택하는 것은 이후의 문제라는 것이었습니다. 스테파노의 눈에는 친구가 무책임하고 신뢰할 수 없는 돈지오반니로 비칩니다.

 

5. 머묾과 떠남, 고독과 사회적 만남: 어느 날 지아니노는 자신의 문란한 성생활로 인하여 이웃 여자에게 고소당한 다음에 유치장에 갇힙니다. 이때 스테파노는 자신이 고독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지막 장애물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절감합니다. 차라리 사람들과의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혼자 살아가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스테파노는 북부의 고대 도시에서 누군가가 추방당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자는 스테파노에게 편지를 보내어, 바로 자신과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때 스테파노는 만남 대신에 고립을 선택하는 게 낫다고 다짐합니다. 자기 자신과 주위 환경 사이에는 더욱 커다란 간격이 벌어지는 것을 피부로 절감합니다. 스테파노의 눈에는 세상 전체가 마치 감옥과 같이 비칩니다. 인간 존재는 여러 가지 수많은, 그렇지만 진실로 정당한 이유로 인하여 고립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잠시 자그마한 위안을 발견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날 자신에게 가해진 추방령이 풀리게 되고, 스테파노는 낯설고 버림받은 지역을 떠날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렇지만 어디로 떠날지 주인공은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6. 바다는 네 개의 벽이고, 북부 도시는 천국의 교도소이다. 파베세는 작품 『유배 Il carcere』에서 “환상적인 관계 rapporti fantastici”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의식의 흐름 기법과 판타지가 동원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작품은 주인공 스테파노의 의식에 반영되는 이야기 그리고 그가 실체 현실에서 관찰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외부적인 사건은 몹시 빈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스테파노의 마음은 두 개의 내적인 동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첫 번째는 콘치아라는 처녀와 결부된 것입니다. 콘치아는 근원적인 열정과 거친 야생의 성적 욕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그미의 집은 붉은 제라늄 꽃으로 뒤덮여 있으며, 언덕에는 크고 작은 염소들이 풀을 뜯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의식에는 제라늄으로 뒤덮여 있는 창문 그리고 농염한 처녀의 모습이 끝없이 스쳐 지나갑니다. 두 번째는 제목과 관련되는 고립의 모티프입니다. 가령 감옥은 고독의 상징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자연은 이에 대한 객관적 상관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바다는 스테파노가 머물고 있는 (감옥의) 네 개의 벽이며, 북부의 고대 도시, 나폴리는 마치 천국의 교도소처엄 의식되고 있습니다. 이로써 스테파노는 주위 사람들과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