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2) 알피에리의 '미라Mirra' (1787)

필자 (匹子) 2024. 11. 5. 11:24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제3막에서 미라는 부모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미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면서, 가문과 나라의 앞날을 위해 결혼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대신에 결혼식을 올린 다음에 사이프러스 섬을 떠나 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왕과 왕비는 이를 허락하면서 성대한 결혼식을 기대하면서 즐거워합니다. 제4막에서 미라는 유리클레아와 독대합니다. 그미는 지금까지 자신을 보살펴준 보모에게 감사를 표하면서, 결혼식이 거행된 다음에 섬에 남으라고 권고합니다. 말하자면 미라는 유리클레아에게 이별을 선언한 셈이었습니다.

 

뒤이어 페리오가 찾아와서, 결혼식을 마친 다음에 자신의 왕궁에 가서 행복하게 살자고 제안합니다. 미라가 이에 동의하지만, 그미의 얼굴에는 슬픈 기색이 가시지 않습니다. 며칠 후에 드디어 결혼식이 거행됩니다. 찬가가 울려 퍼질 때 미라는 순식간에 정신 착란을 일으킵니다. 복수의 여신 에라니엔이 뱀 한 마리를 채찍으로 삼아 자신을 내리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미라는 신부복을 찢으면서 쓰러진 채 발작을 일으킵니다. 미라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헛소리를 뇌까립니다. 신랑 페리오는 너무나 놀란 나머지 거의 절망적인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그는 연미복을 벗어던진 채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7. 알피에리의 작품에는 아름다운 소네트 한 편이 삽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페리오가 사랑하는 미라에게 전하는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가끔 우리의 침묵이 부끄러워요, 부인 그건/ 나에게 당신이 안겨주는 이름이지요./ 어쩌면 내가 마냥 침묵하는 게/ 차라리 그들에게는 훨씬 나은 일이겠지요.(Vergognando talor che ancor si taccia,/ donna, per me l’almo tuo nome in fronte/ di queste ormai giá troppe, e a te ben conte/ tragedie, ond’io di folle avrommi taccia;) // 당신을 볼품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게/ 무엇인지 혼자만 알고 싶어요, 설령 그게/ 모든 (불행의) 근원이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or vo’ qual d’esse meno a te dispiaccia/ di te fregiar: benché di tutte il fonte/ tu sola fossi; e il viver mio non conte,/ se non dal dí che al viver tuo si allaccia.) //

 

당신과 함께하는 시간 외에는 나의 삶은/ 전혀 소중하지 않아요. 죄없는/ 끔찍한 사랑, 키니라스의 불행한 딸 (Della figlia di Ciniro infelice/ l’orrendo a un tempo ed innocente amore,/ sempre da’ tuoi begli occhi il pianto elìce:)// 그대의 아름다운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만/ 당신의 마음에는 그대를 조종하는 의혹의 지배자가/ 어떠한 고통을 담는지 느낄 수 있어요 (prova emmi questa, che al mio dubbio core/ tacitamente imperìosa dice;/ ch’io di Mirra consacri a te il dolore.)” 다시 언급하겠지만, 소네트는 훗날에 「고결한 부인 루이자 스톨베르크 폰 알바니엔에게 Alla nobil donna la signora contessa LUISA STOLBERG D'ALBANIA.」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바 있습니다. (Bowring: 74).

 

 

8. 다시 작품의 줄거리로 돌아가겠습니다. 키니라스는 놀러운 해프닝을 접하면서 침울해집니다. 한편으로는 딸의 몸 상태가 걱정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결혼식을 망쳐버린 딸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미라는 어머니, 켄크레이스에게 울분을 퍼붓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게 불행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라는 정신을 차리면서 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도의에 어긋나게 행동해서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켄크레이스는 딸의 변덕스러운 태도에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제5막이 열리자마자 왕궁에 하나의 끔찍한 사건이 전해집니다. 페리오가 신이 자신이 애호하던 여인에게 내린 저주를 감내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라에게 페리오의 자살 소식을 전합니다. 키니라스는 장차 사위가 될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장본인이 딸, 미라라고 여기고, 미라를 추궁합니다. 비극은 미라가 다른 사내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빚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라는 마침내 자신이 사랑하는 임은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키니라스가 경악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를 때 미라는 절망적으로 장검을 꺼내 자결합니다.

 

9. 미라의 비극적 소재는 신화에 비롯된 것이지만, 가까이는 알피에리가 겪어야 했던 사랑의 삶에서 유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알피에리는 1774년에 문학에 뜻을 두고 활동하던 1774년 토스카나 지방에서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나게 됩니다. 알피에리의 연인은 독일 출신의 루이제 폰 스톨베르크-게더런 (Luise von Stolberg-Gedern, 1752 – 1824)이었습니다. 그미의 남편은 당시의 권력자인 알바니 백작, 즉 찰스 에드워드 스튜어트 (Charles Edward Stuart, 1720 - 1788)였습니다. 말하자면 루이제는 1771년 불과 19세의 나이에 51세의 늙은 귀족과 정략적으로 결혼해야 했습니다. 28세의 알피에리는 살롱에서 영리하고 아름다운 루이제와 만나, 문학과 예술에 관해 대화를 나누곤 합니다. 이때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귀족 유부녀에게 사랑을 고백합니다. 루이제는 혈기 넘치는 작가를 애호했지만, 인습과 도덕을 생각하면서 혼란스러움에 갈피를 잡지 못합니다.

 

10. 청년 예술가와 귀족 부인 사이의 염문은 세상에 퍼져나갑니다. 사람들은 알피에리와 루이제 사이의 불륜을 질타합니다. 알바니 백작의 동생인 요크 추기경은 알피에리를 로마에서 추방합니다. 그리하여 알피에리는 프랑스의 알자스 지역으로 도피하였습니다. 1784년 남편이 사망하자, 루이제는 자유의 몸이 되어 알피에리에게 향합니다. 그러나 그미는 끝내 그와의 결혼을 거부하였습니다. 불륜, 주위의 냉대 그리고 자신을 마치 딸처럼 보살펴준 알바니 백작의 유언 등이 결국 백년가약을 맺지 못하게 음으로 양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알피에리는 루이제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미의 마음을 부자유로 동여매고 있는 갈등을 감지하게 됩니다. 루이제는 자신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사랑이 마치 아버지처럼 나이 많은 남편을 배신하는 느낌이 들어서 항상 좌불안석의 심정으로 살았습니다. 말하자면 알피에리는 루이제의 혼란스러움 그리고 심리적 갈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셈입니다. (장지연: 147).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