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북구문헌

서로박: (2) 안데르센의 '오로지 바이올린 연주자'

필자 (匹子) 2024. 11. 25. 06:44

(앞에서 계속됩니다.)

 

5. 나오미가 부유한 백작 가정의 온실 속에서 보호를 받으면서 생활하는 반면에, 크리스티안은 추위와 굶주림에 떨면서 자랐습니다. 방랑벽이 도진 아버지는 머나먼 타향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가족을 방치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 집에서 가난하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구두 수선공이었던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는 다른 사내와 재혼하게 되었는데, 의붓아버지는 크리스티안에게서 바이올린과 악보를 빼앗았습니다. 가수 그리고 음악 연주가로 생활하는 것은 먹고 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안은 가출하여 외삼촌 집에 기거하게 되었습니다.

 

외삼촌은 주인공을 부담스러운 존재로 취급하게 되고, 결국에는 선박에 태워서 코펜하겐의 항구로 보내버립니다. 크리스티안은 춥고 고적한 섬, “외레준트”에서 힘들게 생활하다가, 나오미의 의부인 백작을 만나게 됩니다. 백작은 젊은 크리스티안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보면서 그를 격려하지만, 아무런 물질적 도움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음악가로 성공을 거두려면, 자신을 밀어주는 후원가를 찾아야 합니다. 크리스티안이 이를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하지만, 아무런 성공을 거두지 못합니다. 이때 크리스티안의 삼촌은 조카를 “오센세”라는 지역으로 보냅니다. 그것에 거주하는 음악가 한 사람이 제자 한 명을 물색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다른 뾰족한 방도가 없어서 그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6. 크리스티안이 오덴세에 머물고 있을 때, 나오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미는 남장(男装) 차림으로 폴란드 출신의 말 타는 광대, 라디슬라우스와 서커스의 순회공연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크리스티안과 나오미는 각자 상대방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꼈지만, 이러한 열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맙니다. 크리스티안과 나오미는 잠깐 방랑의 삶을 영위합니다. 그렇지만 낯선 지역을 함께 배회할수록, 두 사람은 상대방을 죽일 듯이 증오합니다. 나오미는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크리스티안과 결별한 다음에, 혈혈단신 이탈리아로 여행합니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그미는 라디슬라우스의 소개로 알게 된 프랑스 출신의 귀족과 결혼식을 거행합니다. 그렇지만 결혼 생활은 몹시 불행했습니다. 왜냐면 프랑스 귀족에게는 의처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내가 과거에 방탕하게 살았다는 사실을 연속적으로 질타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질타가 자신의 주색잡기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작가는 나오미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주로 서술하면서, 크리스티안의 소식을 드물게 전합니다. 크리스티안은 덴마크의 어느 마을에 머물면서, 찬란한 예술가로 성공하는 꿈을 꾸지만, 이는 실현되지 않습니다. 그는 고향의 마을 음악가로 체념하면서 생활하다가, 쓸쓸히 사망합니다. 장례의 행렬이 거행되는 바로 그 길에서 나오미와 그의 남편의 마차는 그 곁을 지나칩니다. 그들은 덴마크의 별장에서 여름 휴가를 보내려고 이곳에 당도한 것이었습니다. 옛친구가 죽었는데도 나오미는 이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휴가를 즐기려 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이 납니다.

 

 

7. 안데르센은 쓸쓸한 음악가의 삶을 다룬 이 작품으로써 소설가로서의 명성을 서서히 얻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 크리스티안의 삶의 궤적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부정적이고 삭막한 경험 속에서 단 한 번도 순응하거나, 삶의 목표를 수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인공의 삶은 하나의 알레고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즉 주인공이 지나친 역정은 안데르센에 의하면 어떤 포괄적인 우주적 삶의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이상적 일원성이 두 명의 주인공의 삶으로 분할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는 하나의 상징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철새, 두루미의 생활 관습입니다. 언젠가 크리스티안은 다리가 부러진 두루미를 정성스럽게 고수련해줍니다. 두루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외로운 영혼인 것 같았습니다.

 

두루미의 삶은 서로 이질적인 인간이 공생할 수 있는 범례를 보여줍니다. 두루미는 추운 지역과 더운 지역을 찾아서 날아다니는 날짐승입니다. 나오미가 지닌 생명력 넘치는 육체성이 크리스티안이 지닌 음악적인 두뇌의 정신성과 융화하려면, 각자 상대방의 특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사랑의 삶은 각자 상대방 내면적 의향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사회적 여건이 이들의 특징을 용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패를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날개 없는 두루미 한 마리였습니다. 그는 단 한 번도 남쪽 나라로 비행하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수동적으로 행복의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면서 칩거했으므로, 따뜻한 사랑의 열기를 체험할 수 없었습니다.

 

8. 안데르센의 작품을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 가운데에는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가 있습니다. 키르케고르는 자신의 첫 번째 작품 『어떤 생존하는 자의 기록물에서 Af en endnu levendes Papirer』 (1838)에서 안데르센의 소설을 심하게 혹평했습니다. 안데르센의 작품은 어떤 성찰의 깊이를 담고 있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탁월한 재능을 지닌 인간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어야 하는데, 『오로지 바이올린 연주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했습니다. 소설 내용의 상당 부분에 리얼리티가 없다고 하더라도 등장인물들은 유감스럽게도 상태방의 사고와 행동에 어떠한 자극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삶에서 어떤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는 자극은 원래 많이 주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키르케고르의 비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키르케고르는 종교적 의미에서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실제 현실의 사랑을 포기한 철학자입니다. 그는 레기네 올젠Regine Olsen과의 결혼을 거부하고, 독신주의를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사상적, 종교적 목표에 도달하려고 했습니다. 이로써 키르케고르는 철학적 차원에서 그리스도와의 공존이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지만, (일기장에 기술된 바 있듯이) 사랑하는 여인과의 이별로 인해 고통스럽고 우울한 삶을 보냈습니다. ㄱ렇다면 철학자의 행적이 바로 크리스티안의 쓸쓸하고, 위안 없는 삶과 무엇이 다를까요? 소설 속의 주인공인 크리스티안의 위축되고 용기 없는 행동과 키르케고르의 소극적이고 우직한 삶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요?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