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 1805 – 1875)은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 오리새끼」 그리고 「나이팅게일」 등의 동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덴마크 작가입니다. 그러나 안데르센이 시와 소설을 주로 발표했다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가 남긴 다섯 편의 주옥같은 장편 소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소개할까 합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오로지 바이올린 연주자 Kun en spillemand』(1837)입니다. 소설은 그의 나이 32세 때 코펜하겐에서 발표되었습니다. (참고로 안데르센의 동화에 관한 좋은 논문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성훈: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에 나타난 콤플렉스 문제, in: 독어 교육, 60권, 2014, 163 - 180.)
사실 안데르센은 가난한 부모 슬하에서 자라서,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구두 수선공이었는데, 일찍 사망하여 알코올 중독의 청소부였던 어머니와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14세 무렵에 그는 가출하여 코펜하겐의 극장에서 배우가 되려고 하다가, 창작에 임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초년고생에 시달린 작가가 안데르센이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습니다. 깡마르고 186센티의 장대한 키, 길쭉한 얼굴 - 이러한 추남을 애호하는 미녀는 없었습니다. 어느 연구가는 안데르센에게서 동성연애의 성향이 발견된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안데르센은 생전에 우울증으로 병원에 들락거렸으며, 범신론적 세계관을 지닌 몽상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2. 문학은 고달픈 삶과 반대되는 안온한 만화경의 상일까요? 어쨌든 안데르센은 불행하게 살았지만, 그의 문학은 독자들의 마음을 황홀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가 남긴 동화는 오늘날까지 수많은 청소년에게 찬란한 꿈을 안겨주는 보물 보따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로지 바이올린 연주자』는 어느 젊은 음악가의 불행한 이야기를 섬세한 문장으로 들려줍니다. 대부분 동화와 소설이 그러하듯이 이 작품에도 자전적 체험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자신의 체험을 직접 인용하지 않고, 가상의 세계로 이전시켰습니다.
이 작품에는 첫 번째 소설,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사내Improvisatoren』 (1835)와는 달리 낭만적이고 신화적인 분위기는 거의 생략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작품이 꿈의 영역과 삶의 영역이 교차하는 이중적 세계가 묘사되고 있다면, 이번의 작품, 『오로지 바이올린 연주자』는 실제의 세계와 가상의 세계를 병렬적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독자는 처음부터 비현실적 몽환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와 가상이라는 두 세계는 두 명의 등장인물이 처하고 있는 서로 다른 정황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3. 작품은 세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두 명의 주인공은 크리스티안과 나오미를 가리킵니다. 크리스티안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나오미는 부유한 유대인 상인의 딸로서 성장하였습니다. 이들의 서로 다른 환경이 말해주듯이, 이들의 갈망 역시 제각기 이질적입니다. 공통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이들이 내적인 기질에 있어서 극단으로 치닫는다는 사실입니다. 두 사람 모두 사회성이 결핍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놀라운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으나, 주위 여건은 이를 드러내지 못하게 합니다.
외부의 장애물이 너무 많습니다. 가는 곳마다 크리스티안은 부당한 현실과 마주치게 되고, 좌절하곤 합니다. 가령 자신의 고향에는 홍등가가 즐비합니다. 주인공은 그곳에서 창녀, 슈테펜-카레가 자살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세계는 추악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환상의 세계에 빠지는 일밖에 없습니다. 나오미는 크리스티안에 비하면 활기 넘치게 생활합니다. 그미는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고, 모든 일을 자기 의지로 관철하려고 합니다. 이로써 나오미는 사회적 인습과 같은 현실의 장애물을 과감하게 뛰어넘으려 합니다. 소심한 크리스티안이 자신의 위축된 심성으로 인하여 패배를 거듭하지만, 나오미는 제어할 수 없는 과감함 때문에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지요.
4. 크리스티안과 나오미는 각자 극단으로 치닫는 정반대의 영혼입니다. 크리스티안이 북유럽의 냉혹한 기질을 지닌 우울한 사내라면, 나오미는 남쪽의 따뜻한 분위를 안고 있는 다혈질 여성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두 개의 이질적인 특징을 조화롭게 중화하거나, 개인적 기질과 사회의 통념 사이를 이어지게 하는 가교를 설정하지도 않습니다. 크리스티안과 나오미 사이에는 처음부터 지배 그리고 복종의 구조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크리스티안은 어린 시절에 이웃집 정원에서 뛰어놀다가 판자 울타리 구멍을 벗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그는 나오미와 사귀게 됩니다. 나오미는 물건 판매 놀이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이때 크리스티안의 눈 그리고 입은 그미에게 저당물이 됩니다. 말하자면 첫 번째 만남에서 이미 두 사람은 심리적으로 서로 엉키게 된 셈입니다. 어떤 현실적 한계를 벗어났기 때문에 크리스티안은 어느 여성적 존재에 종속되어, 그미의 궤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크리스티안은 나오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자신의 심리적 상황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나오미의 찬란한 천국 속으로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됩니다. 크리스티안 자신이 거침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나오미의 유희 도구로 활용당하는 데 대해서 거부감을 느꼈습니다.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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