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서로박: (6)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필자 (匹子) 2024. 7. 1. 10:48

(앞에서 계속됩니다.)

 

페냐 포브레의 커다란 언덕에서/ 세상을 등지고 버림받고/ 즐거움을 버리고 고행하는/ 내 가엾은 인생을 흉내 내고 있는 그대.// 두 눈에서 흘러넘치는/ 짜디짠 눈물로 목을 축이고/ 은, 주석, 구리 식기 하나 없이/ 땅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그대.// 적어도, 금발의 아폴론이 하늘 높이/ 말을 재촉하여 달려가는 동안에는/ 필경 영생을 얻으리라.// 그대의 용맹스러운 이름은 널리 퍼질 것이고/ 그대의 조국은 모든 나라 가운데 최고가 될 것이며/ 그대의 해박한 작가, 이 세상에 독보적 존재가 되리라.

- 「소네트-아마디스 데 가울라가 돈키호테 데 라만차에게」

 

친애하는 C, 세르반테스는 처음에 제 2권을 통하여 기사의 권능 그리고 환상으로 가득 찬 세계를 모조리 파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중에 발표된 작품은 이러한 의도 이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세르반테스는 당시에 문학계를 주름잡던 악한 소설, 목자 소설, 특히 기사 소설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추적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제 2권은 제 1권의 이어지는 작품으로 평가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 1권이 발표된 지 10년 후에 제 2권이 연속적으로 간행되었지만 말입니다. 기사 소설은 당시에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취급받았지만, 그럼에도 이것들을 읽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았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스스로 가치 없다고 여기면서도 기사소설의 특징을 완전히 파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신에 기사 소설의 특징 외에도 고대 에스파냐의 연애시라든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서사시의 문헌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작품 속에는 마테오 마리아 보이아르도 (Boiardo, 1441 – 1494), 『격노하는 롤랑』으로 유명한 시인, 루도비코 아리오스토 (Ariosto, 1474 – 1533), 루이기 풀치 (1432 – 1484), 테오필로 폴렌고 (Polengo, 1491 – 1544)의 문학적 영향이 그대로 용해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작품은 1542년에 에스파냐에 소개된 폴렌고의 『발두스』에 나타나는 모험적인 이야기라든가, 16세기 말에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던 에스파냐의 단편적인 극예술의 내용을 작품 속에 도입하고 있습니다.

 

『돈키호테』는 패러디 문학의 최고봉의 작품입니다. 작품에 반영된 기사 소설의 패러디는 -언젠가 헤겔 역시 언급한 바 있지만- 두 가지 의미에서의 지양의 개념으로 파악되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세르반테스는 기사 소설의 종말을 드러내려고 하였습니다. 기사 소설에는 언제나 신화 속에 나타나는 신비적인 영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만약 중세 기사들의 모험을 묘사하게 되면, 영웅은 신학적 구원의 집행관의 임무를 다하는 사람으로 이해될 것입니다. 돈키호테는 현실에서 수없이 패배하고 좌절을 거듭하는데, 이는 다음과 같은 엄청난 시대착오적 현상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즉 돈키호테는 기사 문학에 묘사된 바 있는 대로 세계의 구원을 위해서 마치 신의 사명을 실천하는 사도처럼 노력하지만, 동시대인들은 이를 가상으로 치부하면서, 돈키호테의 행위에 웃음을 터뜨리며, 주인공의 행위를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립니다.

 

둘째로 돈키호테는 –헤겔의 『미학』에서 언급되는 사항이지만- 중세로부터 신시대로 변화할 때 남아 있는 중세 사고의 흔적을 필연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시대는 변했지만, 인간의 의식은 여전히 과거의 잔재로 남아 있는 경우는 의외로 많습니다. 돈키호테의 시대착오적 세계관은 비록 기사 소설을 탐독한 때문에 나타난 것이지만, 인간의 의식이 시대의 변화보다 앞서지 못합니다. 친애하는 C, 헤겔이 『돈키호테』에서 파기와 지양의 개념을 발견했다면, 우리는 작품에서 과연 무엇을 도출해내어야 할까요? 지금까지 사람들이 돈키호테의 인간형 그리고 작품의 주제에 관해서 많은 사항을 언급해 왔습니다. 이에 관한 사항은 박홍규 교수의 『돈키호테처럼 미쳐?』(돋을새김 2007)를 참고하기 바랍니다.

 

 

그렇지만 나는 세르반테스의 작품과 관련하여 한 가지 사항을 지적할까 합니다. 그것은 한 인간의 의도가 얼마나 다른 사람들에게 왜곡된 채 잘못 전달되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는 오늘날 작가, 지식인의 “제한된” 영향력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작가, 지식인의 “왜곡된 채 전해지는” 영향력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곡해하곤 합니다. 진의를 간파할 여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 인간의 행동에 대해 지레짐작합니다. 바로 이러한 왜곡된 수용 내지 지레짐작으로 인하여 수많은 비극이 출현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해줍니다. 돈키호테는 세계를 구원하려는 일념에서 편력기사로 활동하려고 했지만, 동시대인들은 그를 바보, 멍청이, 얼간이 내지 정신병자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래 소설의 주제는 이러한 몰이해 “내부”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해 보세요.

 

세계의 구원을 이룩하려고 한 인간신, 그리스도는 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유명을 달리 하였습니다. 로마의 병정들은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명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팔과 다리에 못을 박고는 피 흘리면서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그리스도에게 “INRI”라고 명명하였습니다. “INRI”는 “유대인의 왕, 나사렛 출신의 예수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의 약자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세상에 출현한 인간신을 서서히 죽이면서 “저 인간을 보라 Ecce homo.”하고 말하면서 낄낄거렸습니다. 로마의 병정들은 마치 길가의 개구리를 죽이면서 키득거리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처럼 그렇게 어리석고도 참혹하게 행동했던 것입니다. 친애하는 C, 어쩌면 나 역시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모자라고 어리석으며 잘못 판단하는지 스스로 깨닫지 못하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끼지 못하는지 모릅니다.

 

돈키호테는 결코 바보, 멍청이, 얼간이 내지 정신병자가 아니었습니다. 세르반테스는 어쩌면 역설적으로 말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정의로운 인간, 현명한 사내 시대의 영웅을 작품 속에 반영하려 하였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나는 당신을 위해서 한 가지 사건을 언급할까 합니다. 1566년 7월 18일 에스파냐의 수도 마드리드에서는 거대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자 인디언의 인권 수호자로 평생을 헌신하던 바르톨로메 드 라스카사스 (1474 – 1566)가 92세의 나이로 사망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세상을 하직하는 위인의 죽음을 슬퍼하였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23세의 젊은이 한 사람이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미구엘 세르반테스였습니다.

 

세르반테스는 라스카사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세부적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라스카사스는 신대륙에서 자행되던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인디언 살육의 사건들을 전하기 위하여 수없이 본토로 건너와서 황제에게 알리려고 하였습니다. 에스파냐 총독과 신대륙에서 이득을 챙기던 에스파냐 사람들은 그의 노력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였습니다. 신대륙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수도사 한 사람과 적대적으로 싸우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라스카사스는 마치 가축이나 다름이 없는 원주민의 인권을 위하여 에스파냐와 에스파냐 사람들에게 창을 겨누는 미치광이처럼 비쳤습니다.

 

친애하는 C,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작품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풍차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스파냐 사람들은 신대륙의 인디언들의 힘이 없고, 걸핏 하면 저항하는 꼴을 보지 못하여, 마침내 아프리카의 흑인 노예를 활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황금 해안에서 흑인을 생포하여 노예선에 태워 신대륙으로 보냈습니다. 흑인들은 처음에는 사탕수수밭에서 일하다가 나중에는 이를 가공하는 방앗간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흑인노예들은 온갖 고초를 겪은 뒤에 살아남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방앗간에 배속되어 하루 16시간 이상 힘든 노동을 계속해야 했습니다. 우리는 방앗간과 풍차를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풍차가 낯선 외국인 노동자의 고혈로 움직이는 공간이라면, 우리는 돈키호테의 풍차 공격을 과연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해석에 동의할지 말아야 할지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