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4) 신화와 유토피아, 일치성과 불일치성

필자 (匹子) 2024. 10. 9. 09:19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신화 수용 역사에 관한 비교 연구: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예외적 사례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신화 연구 자체가 아닌, 이후의 시대에 나타난 신화 수용사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예외사항입니다. 우리는 신화 수용의 역사 연구에서 그 수용 시점의 시대정신과 결부된 신화의 수용에 나타나는 차이점을 “통시적으로diachronisch”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시대에 왜 특정한 신화가 유독 활발하게 수용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면, 우리는 신화가 특정한 시대에 끼친 영향 그리고 신화와 주어진 현실 사이의 상호관계를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Jørgensen: 301). 이를테면 왜 유독 괴테의 시대에 프로메테우스의 신화가 활발히 수용되었으며 헤라클레스 신화는 어떠한 이유로 구 동독에서 자주 문학적 소재로 등장했는가? 하는 물음을 생각해 보세요.

 

이러한 물음들에는 특정한 시대에 발생했던 문제점과 더불어 그 시대의 시대정신이 결부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예컨대 플루타르코스의 『리쿠르고스의 삶』과 같은 문헌을 유토피아 연구의 문헌으로 직접 활용할 수 없습니다. 비록 그것이 스파르타의 찬란한 국가 체제를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더라도, 리쿠르고스라는 등장인물이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를 우리가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플루타르코스가 과연 어떠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리쿠르고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지 우리는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리쿠르고스의 삶』이 엄밀한 의미에서는 문학 유토피아가 아닌, 더 나은 국가에 관한 갈망의 범례 내지 판타지로 분류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17. 요약: (1): 이 장에서 우리는 유토피아와 신화의 기능적 차이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유토피아는 “지금, 여기”의 비참한 삶을 의식하면서, 어떤 찬란한, 혹은 끔찍한 가능성의 현실상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장래에 반드시 실현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특정한 때와 기회를 통해서라면 실현될 수도 있는 갈망의 상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역동성, 개방성 그리고 어떤 미래지향적 특성을 표방합니다.

 

이에 반해 신화 속에는 특정한 역사와는 무관한 인간의 오욕칠정, 갈망 그리고 해원(解冤)의 정서가 초시대적으로 거의 빠짐없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대체로 찬란한 과거를 수동적으로 동경하려는 욕구 내지 의향에 근거합니다. 즉 신화는 그 자체 초시대적으로 작동되는 우화 내지 알레고리로 기능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화를 알레고리의 틀 속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신화 자체만으로는 신화를 의식하고 창안한 사람들이 처했던 구체적인 현실을 학문적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8. 요약 (2): 필자는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예외적 사례가 있음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것은 신화가 비록 초시대적으로 작동되는 우화라 하더라도, 신화 수용의 역사를 통해 특정 시대에 특정 신화가 수용된 배경과 기능을 통시적으로, 즉 시대적 차이를 드러내는 특징들과 서로 비교할 수는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 시대 이후 여러 신화들이 어떻게 활발하게 수용되어 왔는가? 하는 문제를 구명하면서, 신화 수용의 역사를 학문적으로 추적해볼 수 있습니다.

 

앞선 예와 다른 한 가지 예를 더 언급해보자면 르네상스 시대와 나폴레옹 시대에 프로메테우스 신화가 유독 활발히 수용된 것을 들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거대한 권능을 지닌 신에 대한 인간 내지 반신의 저항을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신의 권능에 맞서거나 대적할 수 있는 인간 본위적인 위대함 – 이러한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적 기개는 유독 르네상스 시대에 찬란한 빛으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Blumenberg: 546). 이는 르네상스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은 인간 주체이며, 그 능력과 가능성은 신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 의해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개척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특정한 시대에서 강조되고 있는 특정한 유형의 신화를 재발견함으로써, 신화 수용에서 나타난 그 특정한 시대의 중요한 문제의식이라든가 시대정신의 특수성 등을 명징하게 이해할 수 는 것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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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드 신화집 (1993), 변신이야기, 김명복 역, 솔.

- 유석호 (2015): 라블레 소설의 모델들 (III), 실린 곳: 프랑스 고전문학 연구, 제 18집, 91 – 123페이지.

- 진정염 (1993): 진정염 외,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 이성규 역, 지식산업사.

- Blumenberg, Hans (1984): Arbeit am Mythos, 3. Aufl. Frankfurt a. M..

- Erren, Manfred (1970): Aratos: Phainomena, Sternbilder und Wetterzeichen, München.

- Hesiod (1974): Sämtliche Theogonie, Werke und Tage u.a. Wiesbaden.

- Jens, Walter (hrsg.)(2001): Kindlers Literaturlexikon, 20 Bde. München.

- Jørgensen, S. A (1984).: Mythos und Utopie, Über die Vereinbarkeit des Unvereinbaren, in: Orbis Litterarum, 39, S. 291 – 307.

- Kerényi, Karl (1964): Ursinn der Utopie, in: Eranosjahrbuch, 1963, Zürich.

- Krüger, Kersten (2004): Die Idealstadt in der frühen Neuzeit, in: Frank Braun (hrsg.), Städtesystem und Urbanisierung im Ostseeraum in der Frühen Neuzeit, Münster.

- Plutarch (1954): Große Griechen und Römer, Bd. 1, Zürich, S. 125 – 167.

- Thomson, George D. (1985): Aischylos und Athen, Eine Untersuchung der gesellschaftlichen Ursprünge des Dramas, Ber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