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미하엘 빈터의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10. 31. 10:50

미하엘 빈터는 1978 유토피아 개관 Compendium Utopiarum의 발표했는데,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즉 서구 산업 국가가 유토피아로부터 등을 돌린 것은 유토피아의 사고가 대폭 실현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유토피아의 땅은 오늘날 스위스로부터 하와이를 거쳐서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진다고 한다. 현대 사회는 의학을 발달로 인간의 수명을 늘려놓았으며, 프랜시스 베이컨이 추구하던 식량 공급의 이상을 실현하였다고 한다. 신용카드는 영원한 풍요로움을 보장해주고, 여행 산업은 지속적으로 붐을 맞이하고 있다.

 

맹수는 지구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인간은 법령에 의해서 어느 정도 제한을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연의 위험은 현대의 간접 자본의 시설로 인해서 사전에 차단되고, 국지전을 제외하면 거대한 전쟁은 군비 증강과 국제적 외교관계로 인하여 거의 출현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국가의 폭력은 민주적인 기본법으로 제한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현대의 산업 국가에 근거하는 복지 사회에서는 유토피아의 꿈은 그저 광고의 슬로건으로 나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빈터는 이러한 논의를 통해서 꿈의 종말을 거론하고 있다. 지속적인 행복에 관한 유토피아의 꿈은 이상적인 국가를 통해서 자연을 완전히 정복하게 하였다. 그것은 서구의 국가에서 실현되었다고 인지되는 순간 실패로 끝나게 된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는 유토피아주의자들의 꿈은 빈터에 의하면 끝내 피와 살육을 불러일으켰다.

 

토머 뮌처, 로베스피에르, 레닌, 마오쩌둥 그리고 폴 포트 등이 이에 대한 참담한 예라고 한다.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정복은 1972 로마클럽 보고서에 언급된 현상을 낳게 하였다. 빈터는 유토피아의 사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낸다. 유토피아는 바람직한 사회의 모델로 자극을 가해서 인권을 신장시키고 민주적인 기관을 형성하게 하였다. 비록 유토피아의 사고로 인하여 테러 정부가 등장하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또한 빈터는 라메트리 La Mettrie의 인조인간에 관한 유토피아를 언급하면서, 인간 존재가 자신의 광적인 수행 능력을 상실하게 될 경우에도 얼마든지 변신을 통해서 살아남으리라고 믿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인간은 인간중심적 사고로 인하여 커다란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빈터는 주장한다. 이로 인하여 지구는 거대한 파국을 맞이하고, 생태계의 평형을 상실하게 되리라고 한다. 그렇지만 유토피아의 사고에 대한 빈터의 모호한 태도는 그저 겉으로 드러난 특징일 뿐이다.

 

유토피아는 유럽 문명의 불행도 행복도 아니다.”라는 자신의 견해를 부인한다. 유토피아의 의도 내지 의향은 빈터의 생각에 의하면 좋지만, 사악하고 나쁜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한다. 빈터의 책을 읽으면, 우리는 항상 다음의 사항을 접하게 된다. 즉 자유의 나무는 단두대를 낳고, 인간에 대한 사랑은 인민 학살을 낳으며, 정의의 의미는 언제나 피해망상을 불러일으키고, 질서를 추구하는 일은 테러리즘을 낳는다는 사항 말이다.

 

이로써 빈터는 선과 악의 기준이 되는 이성을 더 이상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은근히 암시한다. 이러한 사고는 그가 1998년에 발표한 인간의 감정. 완전성의 제반 유토피아, 혹은 무책임. 사이버 공간 속에서의 사회성의 종말에서 다시 한 번 언급되고 있다. “모든 사회적 산업적 혁명은 우리를 천국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이상적 공동체 내에서의 이상적인 인간의 유토피아 그리고 자연을 지배하여 무제한적인 성장을 이룩하려는 유토피아는 20세기 말에 이르러 실패한 것으로 판명 나고 말았다. 놀고먹는 사회에 관한 우리의 희망은 완전히 사장되고만 것이다. 그런데 정치, 학문 그리고 기술의 영역에 대한 신뢰감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흔들림의 결과 가운데 하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어진 현실을 떠나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세상은 사이버 영역밖에 없다.” (Winter 1998, 601).

 

요약하건대 빈터는 정치적 유토피아 자체를 추적하는 게 아니라, 유토피아가 역사에서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문제만을 추적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로서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사항을 들 수 있다. 첫째로 빈터는 토머스 모어와 캄파넬라의 유토피아 공간의 기하학적 토대에서 프랑스혁명의 테러 그리고 20세기의 전체주의의 폭력이 태동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빈터는 다음의 사항을 도외시하고 있다.  16세기 17세기의 현실적 토대는 19세기의 서구 산업 국가의 현실적 토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 말이다.

 

모어와 캄파넬라의 시대에는 최소한의 물질적 욕구 충족을 마련하기 위해서 개개인의 외적인 자유가 구속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서구 사회는 토머스 모어가 궁리하던 경제적 사회적 문제를 이미 해결해 놓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토머스 모어가 전혀 일지 못했던 에너지 그리고 환경 등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이를 고려한다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속에 담긴 사회적 구상이 16세기와 17세기의 현실을 무시한 채 현대의 현실과 직접적으로 대입되는 것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

 

둘째로 빈터는 공간 유토피아와 시간 유토피아의 유형적 구분을 거부하고 있다. 만약 공간 유토피아와 시간 유토피아가 서로 구분된다면, 이는 빈터에 의하면 유토피아와 혁명을 서로 구분하는 처사라고 한다. 유토피아는 모어의 고전적 형태 속에서 미래의 실현을 촉구하는 비전이라고 빈터는 주장한다. “만약 사유재산제도가 파기되면, 어떤 정의로운 질서 내지 인간의 행복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핵심에 있어서 유토피아의 혁명적 목적론이 도사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어쩌면 결과론으로 과거의 역사를 평가하는 자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세속화된 진보의 사고가 18세기 중엽 이후의 유토피아에서 진지한 토론으로 다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그밖에 모어는 만약 그러하다면, 그러할 것이다.”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 토머스 모어는 어떤 공개적인 가설을 다룬 게 아니라, 미래의 가능한 상태를 서술했을 뿐이다. 유토피아는 미래에 대한 추측 내지 진단이 아니라, 추악한 현재 현실에 대한 빈대급부로 태동한 하나의 가상적인 상이다.

 

셋째로 빈터는 유토피아의 사고를 자신의 시대에 병들게 된 절망적인 정서를 극복하기 위한 폭력적인 판타지라고 규정한다. (Winter 93: 224). 물론 우리는 유토피아가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특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자연을 하나의 도구 내지 사용 수단으로 여기는 관점, 반개인주의의 제도를 중시하는 태도, 사회 발전에 대한 전체적 계획 등이 그러한 부정적 특성일 것이다. 그렇지만 토머스 모어와 캄파넬라의 고전적 유토피아를 유토피아의 보편적 사고로 확장시켜 두 가지를 동일하게 간주하는 것은 그 자체 잘못된 판단이 아닐 수 없다.

 

유토피아는 주어진 참담한 (혹은 찬란한)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로 태동한 가상적 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라블레의 문학 유토피아는 16세기의 현실적 토대와 비교되어야 하고, 푸아니, 디드로의 문학 유토피아는 그들이 처한 17세기 18세기의 유럽 현실적 맥락을 고려하여 연구되고 분석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러한 문학 유토피아들을 결코 오늘날의 시각에서 결과론적으로, 찬반 내지 옳고 그름으로 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참고 문헌

- Saage, Richard: Utopieforschung, Bd. 1.An den Bruchstellen der Epochenwende 1989, Berlin

2008.

- Winter, Michael: Compendium Utopiarum. Typologie und Bibliographie literarischer Utopien. Von

der Antike bis zur deutschen Frühaufklärung, Stuttgart 1978.

- Winter, Michael: Ende eines Traums. Blick zurück auf das utopische Zeitalter Europas, Stuttgart

1993.

- Winter, Michael: Empfindung des Menschen. Utopien der Vollkommenheit oder der Verant-

worttungslosigkeit. Das Ende des Sozialen im Cyberspace, in: Dülmen, Richard von, Empfindung

des Menschen Schöpfungsträume und Körperbilder, Wien 1998, 597 – 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