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알프레트 도렌의 유토피아론

필자 (匹子) 2024. 4. 19. 11:36

알프레트 도렌은 1927년에 「갈망의 장소 그리고 갈망의 시간 Wunschträume und Wunschzeiten」이라는 논문을 집필하였다. 원래 그는 1920년대에 출현한 한스 기어스베르거 Hans Girsberger 그리고 헤르만 온켄 Hermann Oncken의 저작물을 접하고 유토피아의 지형도를 분명하게 설정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 도렌은 유토피아 그리고 천년왕국설을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시켜서 독립적으로 해명하는 처사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유토피아와 천년왕국설은 그 자체 갈망의 장소 내지 갈망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도렌은 유토피아의 문헌으로서 모어의 『유토피아』를 거론하지만, 천년왕국설의 문헌으로서 『오버라인 지역의 혁명가 Der oberrheinische Revolutionär』를 예로 들고 있다. 천년왕국설을 신봉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재림의) 필연성의 발전을 믿고 있는 반면에 유토피아주의자는 자신의 이상을 먼 지역의 섬과 같은 장소로 환치시킨다는 것이다. 도렌은 유토피아를 인정하면서도 천년왕국설을 부분적으로 비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천년왕국설을 실천하기 위해서 나타난 모든 물리적 폭력을 하나의 죄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물론 천년왕국설을 표방하는 자들은 합리성의 능력을 더 이상 믿지 않으며, 지상을 뛰어넘는 밝은 개벽을 애타게 기대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들이 자의가 아니라 아무런 의지를 지니지 않은 채 신의 도구로써 자신의 광기를 행동으로 옮긴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도렌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갈망의 시간, 다시 말해서 행동 이전에 천년왕국설을 표방하는 자들의 기대감을 부분적으로 인정하였을 뿐이다. 왜냐하면 천년왕국설이 행동으로 이전되면, 그것은 하나의 끔찍한 폭력을 낳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렌은 블로흐의 『토마스 뮌처』를 놀라운 저작이라고 인정하면서도, 거친 판타지의 사변이론이라고 규정하였다. 블로흐는 뮌처에게서 드러나는 천년왕국설의 특징을 본질적 기본 형태로 파악하지만, 허사를 동원하여 이를 범람시켰다는 것이다. 블로흐는 유토피아 사고의 일부를 천년왕국설로 무장한 독일 농민혁명이라는 정치적 행위에서 발견하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고 한다.

 

프리드리히 클라인베히터 Friedrich Kleinwächter의 『국가소설들 Die Staatsromane』(1891)은 도렌에 의하면 비난당할만한 팸플릿에 불과하고, 아르투르 폰 키르히하임 Arthur von Kirchheim의 『놀고먹는 정치 국가 Schlaraffia Politica』(1892)는 학문적 차원에서 다룰 수 없는 문헌이라고 했다. 안드레아스 보이크트 Andres Voigt의 논문 「사회유토피아들 Die sozialen Utopien」(1906)은 도렌에 의하면 사실 내용에 있어서만 쓸모 있을 뿐이라고 했다.

 

도렌은 갈망의 장소 그리고 갈망의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고대와 신시대의 유토피아 내지 천년왕국설의 사고를 재구성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어떤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도렌은 천년왕국설의 의심스러운 특징을 지적하기 위해서 『오버라인 지역의 혁명가』외에도 토마소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를 예로 들고 있다. 이를테면 캄파넬라야 말로 기적을 행하는 새로운 메시아로 파악될 수 있다는 점에서 토머스 모어의 정반대되는 인물로 이해된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천년왕국설을 표방하는 채굴당의 윈스탠리의 사상에서도 발견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렌은 천년왕국설의 실천이 결국 칸트, 헤겔, 마르크스, 바이틀링 뿐 아니라, 카베, 벨러미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웰스까지 연결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