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린 키부스는 1942년 베를린에서 태어나다. 베를린 자유 대학에서 신문방송학, 독문학 그리고 정치학을 공부한 그미는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등지에서 편집자로 일하다. 1976년 시집 『현재의 양면에 관하여 (Von beiden Seiten der Gegenwart)』를 간행하다. 그미의 시는 주로 일상을 주관적으로 표현하는데, 냉정하고 명징한 표현을 선호한다.
작가들에게
카린 키부스
세상은 잠들어 있다
너희의 탄생 시간에
오로지 낮꿈에 의해
너희는 세상을 깨운다
거친, 달콤한, 투박한
모험을 행하라고
현실의 부분 오랫동안
유희 속에서 정복될 수 없다
An die Dichter von Karin Kiwus: Die Welt ist eingeschlafen/ in der Stunde eurer Geburt// allein mit den Tagträumen/ erweckt ihr sie wieder// roh und süß und wild/ auf ein Abenteuer// eine Partie Wirklichkeit lang/ unbesiegbar im Spiel
(질문)
1. 어떠한 이유에서 작가들은 “세상이 잠들어” 있을 때 태어나는 것일까요?
2. 맨 마지막 연의 의미를 작가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해명해 보세요.
(해설)
인용 시는 현대에 살고 있는 작가들의 기능 및 역할을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시인들은 잠든 세상을 깨우려고 합니다. 그 까닭은 작가들은 주어진 정체된 세계 (Status quo)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의 서구 사회의 체제는 세련되게 보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마냥 무미건조하게 보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게 질서 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의 다원 사회는 변화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도 체제 옹호적이고 정치와 사회에 둔감한 인간형을 양산시킵니다. 맨 마지막 연에서 나타난 체념적 어조는 시인의 비판적 입장으로 이해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현실의 부분 오랫동안/ 유희 속에서 정복될 수 없다”. 현대의 작가들은 키부스의 견해에 의하면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된 현실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는 작가들의 영향력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세상이 작가들의 세계를 유희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작품 속에 담긴 더 나은 세계에 관한 바람직한, 혹은 끔찍한 상을 주어진 현실과 무관한 “유희”로 못 박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키부스의 시에서 “너희”로서의 작가 그리고 그들로서의 소시민들 사이의 어떤 기막힌 소통 단절을 다시금 감지하게 됩니다.
깨지기 쉬운
카린 키부스
너를 사랑한다고
지금 말한다면
그건 내가 신중하게
둘이서 한 번도 즐기지 않은
어느 축제의 선물을
전달한다는 것뿐이야
얼마 지나서
너는 다시 혼자
네가 태어난 날
며칠 전에
이 작은 소포를
초조히 네 쪽으로 당기면
그 속에 달칵거리는
조각들을 더 이상
전혀 알지 못하지
Fragile von Karin Kiwus: Wenn ich jetzt sage/ ich liebe dich/ übergebe ich nur/ vorsichtig das Geschenk/ zu einem Fest das wir beide/ noch nie gefeiert haben// Und wenn du gleich/ wieder allein/ deinen Geburtstag/ vor Augen hast/ und dieses Päckchen/ ungeduldig an dich reißt/ dann nimmst du schon/ die scheppernden Scherben darin/ gar nicht mehr wahr
(질문)
1. 시인은 어떠한 이유에서 사랑을 “소포”로 비유하고 있을까요?
2. 사랑은 결코 강탈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문장을 찾아보세요.
(해설)
카린 키부스는 훌륭한 연애시를 많이 발표하였습니다. 그미의 시들은 형식적으로 자유분방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어떠한 열정도, 격정적 페이소스도 담지 않습니다. 그미의 연애 시는 더러는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냉담하지도, 천박하지도 않습니다. 인용 시는 “사랑은 얼마나 깨어지기 쉬운가?”를 주제화하고 있습니다. 자고로 현대인에게 사랑의 고백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길거리에서 스치는 낯선 이성을 임으로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낯선 임”에게 대놓고 사랑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것이 결혼을 전제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러합니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은 너와 나의 어떤 알 수 없는 축제를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이러한 축제를 위해서 “나”는 “너”에게 어떤 갈망의 선물을 전달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의 고백은 둘이서 함께 행하는 축제를 위한 선물 꾸러미요, “소포”입니다.
그래, 사랑의 고백은 기나긴 행로를 전제로 하는 두 사람 사이의 약속입니다. 누군가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두 사람의 뇌리에는 함께 걸어야 할 삶의 생소한 오솔길 그리고 역정이 떠오를 것입니다. 이 길은 때로는 달콤하지만, 때로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사랑의 고백은 듣는 사람에게는 기쁨을 느끼게 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고백이 발설되는 순간 그것은 “태어난 날/ 며칠 전에” 받아든 생일 선물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생일 선물로서의 사랑 - 그것은 쉽사리 깨어지기 쉬운 그릇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이 경우 사랑의 허상에 현혹되어 있다는 말이 아닌가요? 독일인들은 비교적 냉정하고 합리적입니다. 그들은 첫눈에 애정을 느끼더라도, 이를 쉽사리 발설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우정을 쌓고, 함께 축제를 즐기다가, 그야말로 “신중하게” 사랑을 표현합니다. 만약 누군가 “사랑은 결코 순식간에 강탈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어느 임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마치 그릇 조각처럼 선물꾸러미 속에서 “달칵거리는”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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