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데 도민 (1912 - 2006)은 (본명: 힐데 팔름) 1912년 유대인 법률가의 딸로서 쾰른에서 태어나다. (그미의 출생 연도는 실제로는 1909년이라고 한다.) 1929년 아비투어를 마친 뒤 쾰른 대학에서 국민 경제학, 사회학을 공부했으며, 카를 야스퍼스와 칼 만하임에게서 철학을 배우다. 1932년 로마로 망명하여, 피렌체 대학에서 “마키아벨리의 선구자로서의 폰타누스”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다. 도민은 1939년까지 로마에서 어학 교사로 일하다가, 나치의 위협 때문에 영국을 경유하여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망명하다. 처음에는 번역가, 건축 사진사 등으로 일하다가, 1947년부터 1952년까지 산토도밍고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다. 1951년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한 뒤에 도민은 시를 쓰기 시작하였으며, 1954년에 독일로 이주하다. 남편인 에어빈 발터 팔름 (Erwin Walter Palm)이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기 때문이다. 힐데 도민은 1961년부터 자유 작가로 일하면서,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청원
힐데 도민
우리는 가라앉아
홍수의 물에 씻기게 되리라,
우리는 심장 막까지
온통 젖게 되리라.
눈물의 경계선에서의
뭍에 대한 갈망
아무 쓸모없다,
꽃피는 봄을 맞이할 갈망,
아무 탈 없이 머물게 해달라는 갈망,
아무 쓸모없다.
다만 청원만이 쓸모 있다,
해 뜰 무렵 비둘기가
올리브 가지를 가져다주기를.
결실 역시 꽃잎처럼 알록달록하기를,
장미의 잎이 바닥에서
어떤 빛나는 꽃 동아리를 장식하기를.
우리가 홍수에서,
사자 굴에서, 불타는 난로에서
항상 상처입고 항상 구원 받으며
계속 새롭게
우리 자신으로 빠져나오게 하기를.
Bitte von Hilde Domin: Wir werden eingetaucht/ und mit dem Wasser der Sintflut gewaschen,/ wir werden durchnäßt/ bis auf die Herzhaut. // Der Wunsch nach der Landschaft/ diesseits der Tränengrenze/ taugt nicht,/ der Wunsch, den Blütenfrühling zu halten,/ der Wunsch, verschont zu bleiben,/ taugt nicht. // Es taugt die Bitte,/ daß bei Sonnenaufgang die Taube/ den Zweig vom Ölbaum bringe./ Daß die Frucht so bunt wie die Blüte sei,/ daß noch die Blätter der Rose am Boden/ eine leuchtende Krone bilden. // Und daß wir aus der Flut,/ daß wir aus der Löwengrube und dem feurigen Ofen/ immer versehrter und immer heiler/ stets von neuem/ zu uns selbst/ entlassen werden.
(질문)
1. 제 1연은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킵니다. 수동태 문장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2. 두 번째 연은 시인의 “쓸모없는” “갈망”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강조되는 사항은 무엇인가요?
3. 제 4연에서 나타나는 “사자 굴”이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구약성서를 참고하여 대답해 보세요.
(해설)
상기한 시는 1957년 스페인에서 씌어졌는데, 이로부터 30년 후 1987년 도민의 75세 생일 기념 시집에 다시금 채택되었습니다. 시인은 주어진 현실적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대신에, 한계 상황의 숨 막히는 순간을 포착하여, 이때 느끼는 심적 상태를 그대로 독자에게 전해줍니다.
제 1연에서 시인은 미래의 삶을 예견하면서, 마치 탐색하듯이 조심스럽게 “홍수”를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시인의 동시대인 아니면, 함께 살았던 유대인들을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수동태 문장으로 기술된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삶의 길을 힘들게 걸어 왔음을 암시합니다. 제 2연은 이른바 쓸모없는 갈망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꽃 피는 봄을 맞이할” 갈망 그리고 “아무 탈 없이” 살게 해달라는 갈망은 시인에 의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것은 개인적이고도 주관적 차원에서 이해될 수 있는 사적인 소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무사안일을 바라는 태도는 다른 각도에서는 편안함, 비겁함, 기회주의, 냉담함 등으로 비난당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 3연에서 이어지듯이) 다음과 같은 청원들만이 유효할 뿐입니다. 그래서 시적 자아는 신에게 “올리브 가지”, “결실”로서의 열매들 그리고 승리에 대한 표시로서의 “장미” 화환 등을 청원합니다. 시적 자아가 현재 머물고 있는 곳은 참담한 파국이 도래한 장소에서 부유하는 방주가 아닙니까? 그렇기에 그의 청원은 하나의 “기도”나 다름이 없습니다. 구약성서에서 다니엘은 애타는 마음으로 사자 굴에서의 구원을 빌며,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이는 신의 은총을 갈구하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마지막 연에서 다음의 사항을 암시합니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끔찍한 “홍수”를 맞이하고, “사자 굴” 내지는 “불타는 난로” 속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시련입니다. 그런데 설령 모든 시련을 이기고 용기를 얻는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운명과 마주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말합니다. 인간은 으레 “항상 상처 입고, 항상 구원 받으며/ 우리 자신으로/ 빠져나오”는 존재라고. 그렇기에 우리는 시련이라든가 죽음 등에 마냥 전전긍긍해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21 독일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엔첸스베르거의 '양들에 대한 늑대의 변호' (0) | 2024.10.02 |
---|---|
카린 키부스의 두 편의 시 (0) | 2024.09.28 |
박설호: (4)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0) | 2024.09.07 |
박설호: (3)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0) | 2024.09.07 |
박설호: (2) '시 작품은 상처 치유의 연고다' (0) | 2024.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