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계속됩니다.)
『흔적들』의 글들은 그 자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흔적이라는 단어는 자구적으로는 발자국, 바퀴 자국 등으로 이해되며, 단서 내지는 암호 등의 의미를 지닌다. 주어진 현실 속에는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수많은 흔적이 마치 어떤 놀라운 비밀처럼 숨어 있다. 블로흐는 에드거 알란 포, 코난 도일 그리고 아가사 크리스티처럼 이러한 암호를 세심하게 주시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블로흐의 짤막한 글이 드러내려는 것은 무엇일까? 오로지 인간과 세계에 도사린 변화의 효모 그리고 갈망의 방어기제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흔적들』이 블로흐의 희망 철학 사상을 압축한 미세화인 근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역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블로흐의 글들은 블로흐 사상이 추적하는 “미래”, “전선 Front”, “새로운 무엇 Novum”과 낙관적 희망을 명시적으로 그리고 묵시적으로 재구성하려고 한다. 이러한 특징들은 마지막을 강조하는 미래 지향적 오메가로 요약될 수 있다. 블로흐는 다른 저서에서 “태초에 진리가 존재했는데, 인간은 이를 다시 기억해 내면 족하다.”라는 플라톤의 재기억 이론을 배격하고 있다. 인간과 세계를 염두에 둘 때,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이 우리에게 더 큰 의미를 전해준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최후에 웃는 자가 승리자”라는 격언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지금까지의 학문과 예술은 블로흐에 의하면 과거의 골동품과 같은 유산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한다. 블로흐는 수미일관 바로 이 점을 집요하게 비판해 왔다. 변증법을 내세운 헤겔조차도 미래의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미래는 헤겔의 눈에는 티끌 내지 왕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시작과 종말을 하나의 원(圓)으로 묶으려 하므로, 그의 사상 역시 –블로흐에 의하면- 재기억 이론의 의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이다. 그러니까 사상적 영향으로서의 중요성은 블로흐에 의하면 태초의 알파가 아니라, 혁명 내지는 개벽 이후의 최종적인 오메가라고 한다.
둘째로 블로흐가 도출하려는 내밀한 암호는 “새로운 무엇Novum”이고, “미래지향적 의식”이며, “갈망의 지향점”이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무엇보다도 변모, 갱생 그리고 혁명적 전환 등의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은 그저 어두컴컴하게 다가올 뿐이다. 어두움 속에는 분명히 우리에게 필요한 무엇이 자리하는 것 같은데, 아직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는 게 기이할 뿐이다. 블로흐는 이러한 현상을 “그냥 살아가는 순간의 어두움”이라고 표현하였다. 인간은 지금 여기 살아가고 있지만, 삶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감지하지 못한다. 이는 마치 행복이 지금 여기서 인지되지 않는 경우와 같다. 그러니 인간은 내적으로 갈구하는 더욱 찬란하고 더욱 행복한 삶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삶은 “아직 아닌 무엇”으로 우리의 전의식 속에 명징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변화되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그렇기에 “아직 아님”이라는 자극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연속적으로 출현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존재론은 대체로 “존재하는 무엇에 관한 이론”에 집착해 왔다. 후설과 하이데거 등은 블로흐에 의하면 주어진 현실을 하나의 변화하지 않는 정태적인 무엇, 즉 확정된 고체로 이해해 왔다. 어리한 존재론은 정태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변모와 혁명 그리고 전환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블로흐는 인간과 세계에 결여한 무엇이 “아직 아님Noch-Nicht”이라는 과정을 거쳐 종국에는 “모두 없음” 그리고 “모두 있음”으로 변화되리라고 확신한다. 이를 고려하면 의식의 경향성 그리고 물질의 잠재성에서 공통으로 엿보이는 세계와 인간의 변화 그리고 변모의 과정이야말로 새로운 삶, 더 나은 삶 내지는 혁신의 생존을 이어나가는 노정이라는 것이다.
블로흐는 우리의 눈에 띄지 않는 사소하고도 일상적 이야기를 일차적으로 들려준다. 그렇지만 독자는 단순한 이야기에서 처음에는 어떤 열광적 모티프 그리고 섬뜩한 경악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주위에는 아직 아님을 떠올리게 하는 수많은 불만 사항들이 즐비하게 주어져 있다. 이러한 충족되지 못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을 추동하여 더 훌륭한 정서, 더 좋은 제도 그리고 더 찬란한 삶의 조건을 연속적으로 갈구하게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러한 크고 작은 갈망이 그냥 뇌리를 스쳐 지나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블로흐에 의하면 문학과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착상을 예술적으로 철학적으로 기술하고 이를 보존하며, 널리 퍼뜨리는 일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놀라운 정서적 감정으로서 문화적 예술적 유산을 차곡차곡 쌓아나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갈망 기계인 인간은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크고 작은 갈망의 착상을 망각하지 않게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블로흐는 과감하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중요한 것은 “갈망의 힘”이라고, 그렇기에 “이야기하면서 사고하는 것 역시 멋지고 기상천외한 일”이라고 말이다.
흔적들을 접하는 독자는 어떤 열광적 환희 그리고 섬뜩한 경악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어떠한 이유에서 인간의 갈망이 세계를 변화시키고, 개개인의 마음을 유동하게 하며, 문화적 예술적 유산을 차곡차곡 쌓게 하는가 하는 물음과 관련되는 놀라운 감정일 것이다.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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