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동독문학

서로박: (1) 야나 헨젤의 '동쪽 지역 아이들'

필자 (匹子) 2024. 6. 16. 09:05

친애하는 H, 오늘은 전환기 이후의 작품으로서 2002년에 약 35만부가 팔려나갔던 베스트셀러 소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베스트셀러라면 으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체로 수준 이하의 저질 문학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소설이 베스트셀러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의외의 반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작품은 야나 헨젤 Jana Hensel의 『동쪽지역 아이들 Zonenkinder』입니다. 야나 헨젤은 1976년생으로서 라이프치히 출신입니다. 그미는 2002년의 시점에서 고찰할 때 13년을 구동독에서 살았고, 13년을 통일된 독일에서 살았습니다. 다시 말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그미의 나이는 불과 13세였습니다. 통일이 되었으나, 어느 누구도 아이에게 변화된 현실, 아니 변화되어야 했던 이유를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통일된 지 10년이 훨씬 지났는데도, 동독 지역 사람들은 서독사람들에 의해 경멸당하곤 합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제 대부분 사람들이 과거의 삶, 특히 구동독의 과거 일상에 관하여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입니다. 젊은 헨젤은 이 점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그리하여 직접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 위하여 펜을 거머쥡니다. 그리하여 탄생한 책이 바로 『동쪽지역 아이들』입니다.

 

 

 

 

 

주인공은 작가와 동일하게 느껴집니다. 작품 속에서 그미는 과거 유년기의 삶을 추적해 나갑니다. 잃어버린 구동독의 삶의 풍경은 유년의 눈에 의해서 반사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살았던 유년의 삶의 장소는 이제 사라지고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가의 시스템 체제가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는 학교생활은 서서히 바뀌기 시작합니다. 교실에 붙어 있던 울브리히트와 호네커의 사진이 사라지고, 방과 후의 활동도 서독의 교육 방식으로 바뀝니다. 게다가 흔히 사용되던 단어 역시 순식간에 바뀌게 됩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용되던 표현은 사라지고, 서독에서 통용되는 단어들이 갑자기 어색하게 사용됩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상점을 지칭하던 “카우프할레 Kaufhalle”를 “슈퍼마켓”으로, “대중 체조”를 에어로빅으로, “몬도스 Mondos”를 “콘돔”으로 달리 표현하게 됩니다. 주인공이 체험했던 모든 체험은 이제 더 이상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통독 이후에 자신의 모든 정체성을 저버리고, 서독사람의 모든 것을 모방하면서 살아갑니다. 구동독의 모든 질서는 깡그리 허물어지고, 사람들은 모두 서독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갑니다. 예컨대 의복, 식습관 그리고 취미 생활 등 모든 것은 서방 세계의 방식에 따라 결정됩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주인공의 존재는 서독의 젊은이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게 바뀌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의 사항에 있었습니다. 즉 어느 누구도 동독의 시스템 가운데 그나마 좋은 점을 인지하고 이를 발설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구동독은 복지체계, 교육 제도 그리고 여성의 취업 등의 측면에서 나름대로의 장점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동독이 붕괴되면서, 장점이든 단점이든 간에 모든 시스템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동독 출신의 젊은이들은 기억 속에 깊숙이 은폐되어 있는 유년의 현실을 발설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쉽게 어느 나라 출신이라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을 동독 출신이라고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스스로 “오시”임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껄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작가는 주인공과 동년배의 세대가 “우리라는 감정 Wir-Gefühl”을 지닐 수 없었음을 가장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작가는 바로 이러한 점들을 작품 속에서 세밀하게 성찰하고 있습니다.

 

 

 

 야나 헨젤

 

친애하는 H, 유년의 사라진 현실은 기억의 박물관 속에 보존되어 있습니다. 기억의 박물관은 어떠한 이름도, 주소도 지니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로지 주인공의 머릿속에 보존되어 있을 뿐입니다. 작가는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박물관의 문을 서서히 열어봅니다. 박물관 속에는 결코 망각될 수 없는 체험의 파편들이 가득 모여 있습니다. 작가는 어떠한 비애 내지 동경의 시각을 배제한 채 이것들을 글로 표현합니다. 한마디로 작품 『동쪽지역 아이들』은 마치 수필처럼 간결하고도 솔직하게 기록된 체험기의 인상을 풍깁니다. 그 안에는 주인공의 과거 체험, 여성으로 살아간 어머니와 언니에 관한 에피소드 등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도 없고, 독자들을 자극할만한 짜릿한 연애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습니다. 소설 속에는 그저 일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는 여성들의 일상, 그리고 혼전 동거를 자연스러운 사랑의 삶이라고 이해하는 동독 여성들의 애정관 등이 간결하게 서술되어 있을 뿐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이 책이 출간과 함께 수십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니라 작품이 동시대 젊은이들의 심리적 아픔, 해원 그리고 갈망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의를 구체적으로 전개하기 전에 일단 하나의 에피소드를 예로 들까 합니다. 2003년 초에 카이 비어만 Kai Biermann이라는 이름의 젊은 저널리스트는 베를린에서 야나 한젠과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 역시 구동독 출신으로서 슈투트가르트 신문의 문예란을 담당하는 기자로 활약 중이었습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급부상한 동년배 여성 작가를 만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느 커피숍에서 야나 한젠은 서독의 니베아 Niver 크림 대신에 동독 제품, 플로레나를 가방에서 끄집어내어 얼굴에 발랐습니다. (베를린의 겨울 날씨는 워낙 변화불측하기 때문에, 얼굴관리를 소홀히 하면, 강한 바람 탓에 피부가 거칠어진다고 합니다.) 이 모습을 바라본 저널리스트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서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요즈음 그걸 바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말한 뒤에 그는 인터뷰를 생략하고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고 합니다. 비로 이러한 해프닝이 발생한 뒤부터 야나 한젠은 자신의 크림을 가방에서 꺼내기가 어색하다고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