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현대불문헌

서로박: (1) 미셸 투르니에의 '쌍둥이 행성'

필자 (匹子) 2024. 3. 27. 03:44

1. 대립하는 문학적 공간: 미셸 투르니에의 장편 소설 쌍둥이 행성Les Météores(1975)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비교적 방대한 이 작품은 한국어 문헌으로 아직 번역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작가는 이전에 발표된 소설의 배경으로 설정된 두 개의 대립적 현실을 다시 소환해내고 있습니다. 첫째로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1967)에는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방드르디 (금요일이라는 가상적인 인물)가 등장합니다. 이로써 작가는 문명과 야생의 차이점, 한계 그리고 어떤 대안으로서의 태양 축제 등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마왕Le roi des Aulnes (1970)은 작품 배경으로서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두 개의 대립하는 가상의 현실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가령 프랑스에서는 평화적 일상이 이어진다면, 주인공은 제2차 세계대전 독일의 한계 상황이라는 극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끔찍한 사회적 정황 속에서 몇몇은 식인종 내지는 잔악한 야수로 변신해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첫 번째 작품에서 문명과 야생이 대비된다면, 두 번째 작품에서는 일상 그리고 한계 상황 사이의 분명한 차이점이 드러납니다.

 

 

 

2. 사랑의 두 가지 유형: 투르니에의 세 번째 작품 『쌍둥이 행성』에서는 어떤 두 가지 이질적인 삶이 대비되고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피상적으로 고찰할 때 이성애를 추구하는 부류와 동성애를 추구하는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이로써 대칭되는 것은 두 개의 상반되는 세계(관)입니다. 그 하나가 사회적 통념에 의해서 지배되는 세계라면, 다른 하나는 사적인 삶에서 나타나는 다른 유형의 사랑의 유형을 지칭합니다. 전자는 이성애를 추구하는 인간군으로 출현하고, 후자는 동성애를 추구하는 몇몇 등장인물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특히 쌍둥이 형제의 동성애를 작품의 중심적 주제로 끌어들입니다. 이러한 관계는 천체와 관련되는 신화의 차원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이를테면 신화를 “하나의 토대로서의 역사”로 규정합니다. 인간은 투르니에에 의하면 신화적 동물인데,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동물적 본능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존재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쌍둥이인 장과 폴은 이리저리 유동하는 행성에 비유되고 있다면, 주변 인물 알렉상드르는 제 8장에서 유명을 달리하지만, 쌍둥이 행성 주위에서 회전하는 하나의 위성으로 비유될 수 있습니다.

 

3. 프랑스 브리타니의 가족 구성원들: 소설의 초점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의 어느 가정으로 향합니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 북서부 지역인 브리타니 지역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사업가로 일하는 에뒤아르, 그의 아내 마리아-바르바라, 쌍둥이 두 아들, 장과 폴 그리고 알렉상드르가 함께 거주하고 있습니다. 알렉상드르는 에뒤아르의 남동생으로서 미혼인데, 기이하게도 형의 집에 기거합니다. 말하자면 이 가정은 일견 프랑스 사회의 통념에 해당하는 이성애를 준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에뒤아르는 일찍이 조실부모했습니다. 두 형제는 부모로부터의 전통적 권위의 가족 윤리를 물려받지 않았으므로 사랑과 성에 있어서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평화로운 가정에 서서히 불행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독일의 나치 군대가 프랑스 전역을 장악한 것이었습니다. 마리아-바르바라는 유대인 출신이라서 신분을 감추며 살았는데, 어느 날 점령 독일군에 의해 체포됩니다. 그 후 그미는 1943년에 부헨발트의 유대인 강제 수용소(KZ)로 송치됩니다. 전하는 소식에 의하면 나치에 의해서 살해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미의 남편 에뒤이르는 전쟁 후에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트라우마로 고생하다가 1948년에 유명을 달리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소설의 배경인데 작품 내에서 지엽적으로 가볍게 처리되고 있습니다.

 

4. 동성애자 알렉상드르와 장 그리고 폴: 알렉상드르 쉬랑Alexandre Surin은 동성애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작가는 그를 “쓰레기 같은 멋쟁이 Dandy of Sludge”라고 명명합니다. 이는 형용모순의 표현인데, 알렉상드르가 그만큼 극단적인 성향을 품고 있음을 반증합니다. 알렉상드르는 언제나 새로운 사랑의 파트너를 찾아다니는데, 마음에 드는 게이들과 짜릿한 환락을 즐기곤 합니다. 한마디로 알렉상드르는 사회에 대한 체제 파괴적 반항아입니다. 이를테면 “동성애, 게이와 같은 단어들은 1890년까지 당대의 시사 영어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런 용어들은 오래된 현실을 표현하는 단지 새로운 라벨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 자체를 가리킨다.”라는 제프리 윅스Jeoffrey Weeks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자가 알렉상드르입니다.

 

그 밖에 쌍둥이 두 조카인 장과 폴은 성격상으로 그리고 외모에 있어서 거의 똑같습니다. 두 사람은 한꺼번에 장-폴이라고 명명할 정도입니다. 장과 폴은 어린 시절부터 상대방에게 애호의 감정을 품어왔는데, 이러한 감정은 사춘기 이후의 시기에 서서히 동성애로 비화되어 나타납니다. 이들은 한결같이 나르시시즘의 내향적 열망을 고수하고 있는데, 두 사람 외에는 누구에게도 연모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물론 장은 나중에 이러한 태도를 저버리게 되지만 말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장과 폴은 삼촌인 알렉상드르와는 성 정체성의 측면에서 안정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알렉상드르의 모험: 알렉상드르는 쓰레기 청소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의 회사는 프랑스의 모든 쓰레기를 저장하여, 매립지로 보내는 일을 담당하지요. 회사의 이름은 “시립 폐기물 처리 회사”, 줄여서 “SEDOMO”라고 일컫습니다. 알렉상드르는 세상이 모조리 잡동사니 쓰레기로 구성되어 있다고 여기고, 최소한 자신만큼은 이러한 더러운 오물 덩어리와는 다른 존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여행을 즐겨합니다. 알렉상드르의 이러한 욕구는 지옥과 연옥 그리고 천국을 방랑하는 단태 알리기리의 여정을 연상시킵니다.

 

어느 날 알렉상드르는 우연한 기회에 장과 폴이 깊은 밤에 서로를 부둥켜안고 다정하게 성교하는 모습을 관음하게 됩니다. 이때 그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조카들이 벌리는 사랑의 유희는 자신이 우연히 만난 게이들과 행하는 극단적인 성교와는 전적으로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안온하고 자연스러운 일란성 쌍둥이의 포옹 내지는 신비적 합일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까지 알렉상드르는 자신의 성적 욕망을 하나의 도전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방종한 일탈을 통해서 충족시켜고 노력해 왔습니다. 말하자면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성욕은 어떻게 해서든 차단되거나, 설령 어떠한 괴로움을 동반하더라도 고통스러운 몸부림으로써 분출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쌍둥이 형제, 장과 폴은 마치 하나의 알속에서 상대방을 품듯이 자연스러운 혼연일체 내지는 안온한 경천동지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소설의 제8장에서 알렉상드르는 일순간 비극을 맞이합니다. 즉 그는 카사블랑카에서 여행 중에 항구의 부두에서 어느 교활한 작은 사내에 의해 살해되고 맙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