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4)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필자 (匹子) 2024. 3. 26. 14:49

(앞에서 계속됩니다.)

 

4. 마리아 로자 아만 (1901 – 1988)

 

여자: 하이너 뮐러는 장시 「이를테면 아이아스」에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습니다. “브레히트의 비석은 한그루 밋밋한 자두나무” (Müller: 297). 자두는 여성의 생식기에 대한 객관적 상징물인데, 브레히트가 연속적으로 갈구한 대상이겠지요?

남자: 그렇지만 사랑의 감정이란 순간적 스침이었습니다. “마치 철새가 날아가는 모습” (「Die Liebenden」), 혹은 마치 구름 사이로 달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적 쾌락이었지요.

 

여자: 시간의 흐름은 하나의 아련한 아쉬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지요. “시간은 모든 것을 갉아 먹는다.Tempus edax rerum.”고 하지 않습니까?

남자: 브레히트는 간밤에 살을 섞은 여자의 잿빛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일순간 가슴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어느 젊은 여자에게서 발견한 것Entdeckungen an einer jungen Frau」, 독자들에게 부자유를 강요하는 관습과 도덕에 유혹당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고 권고하였습니다. (「Gegen Verführung」). (GBA. 11: 116).

 

여자: 마리아 로자 아만은 누구인가요?

남자: 브레히트의 죽마고우였습니다. 그미의 아버지는 이발사 그리고 가발 제조자로 일했는데, 아우크스부르크의 중심가인 케셀마르크에서 상점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브레히트는 학교 앞에서 만나 아만과 숲속으로 놀러 다니곤 하였습니다. 이전에 브레히트는 아만보다 여섯 살 나이 많은 그미의 언니에게 다가가, 추파를 던진 적이 있었습니다. 아만의 언니는 아버지의 상점에서 일했는데, 부모는 이를 알아차리고 무례한 청년이 아예 처음부터 가게 안으로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했습니다. (Hillesheim: 28).

여자: 아만의 이름이 문학사에 등재된 것은 브레히트의 명시, 「마리 A.에 관한 기억Die Erinnerung an Marie A」 때문이지요? (GBA. 11: 32).

 

남자: 네, 브레히트는 1920년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 속에서 이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Reich-Ranicki: 201). 1916년 브레히트의 구애를 거부한 아만은 1920년 여름 브레히트의 두 번째의 격정적인 유혹에도 끝내 마음을 열지 않았습니다. 브레히트는 1920년에 이 작품에다 “1004 번째의 감상적인 노래”라는 부제를 달았습니다.

여자: “1004”라는 숫자는 돈 후안을 연상시킵니다. 에스파냐의 바람둥이, 돈 후안은 평생 1003 명의 여자와 정을 통했는데, 젊은 브레히트는 이 기록을 깨고 싶었다고 하지요?

 

남자: 그렇습니다. 시작품, 「마리 A.에 관한 기억」에서 자연 풍경은 남성적 시각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임을 취하려는 남성적 의향은 강하게 드러나지만, 아만의 속내는 철저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여자: 이 점이야말로 브레히트 연애시의 취약점일지 모릅니다.

 

남자: 동의합니다. 아만은 순진무구한 처녀였는데, 브레히트 혼자 열병을 앓은 게 틀림이 없어요. 훗날 오이겐 부인이 된 마리아 로자 아만은 어느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만약 브레히트와 계속 숲속에서 금지된 장난을 끝까지 이어나갔더라면, 그미는 학교에서 쫓겨났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키스했을 때, 행여나 임신할까 두려워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나중에 그미의 여자 친구인 파울라 반홀처가 브레히트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을 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합니다. (Kebir 1989: 31).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