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2)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필자 (匹子) 2024. 3. 21. 11:05

2. 파울라 반홀처 (1901 – 1989)

 

여자: 브레히트의 첫 연인이었지요?

남자: 네, 반홀처는 바이에른의 운터알고이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1917년 아우크스부르크 김나지움에서 브레히트를 처음으로 만나 깊은 관계에 빠졌습니다. 그미는 1918년 초겨울에 브레히트와 처음으로 뜨거운 밤을 보냈는데, 이는 즉시 임신으로 이어졌습니다.

여자: 그런 경우도 있군요.

남자: 1919년 7월에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21세의 브레히트는 아들의 탄생을 기뻐하였고, 이틀간 병실을 지켰습니다. 다음 날 영아는 세례를 받았는데, “프랑크”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브레히트가 평소에 흠모하던 작가, 프랑크 베데킨트의 이름을 따온 것이지요.

여자: 처녀가 아이를 낳았으니, 주위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반홀처의 부모는 브레히트와 딸을 갈라놓으려고 애를 썼지요? 아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었나요?

남자: 프랑크는 자신의 생부, 브레히트와는 떨어져 살았고, 평생 친아버지를 그리워했다고 합니다. 부모의 반대에도 반홀처는 1920년 뮌헨에 거주하던 브레히트와 동거하려고 했습니다. 이 무렵 브레히트는 반홀처 외에도 배우 마리안네 초프와 사귀고 있었지요.

여자: 반홀처는 뮌헨 시가지를 헤매면서 브레히트를 찾아다녔다고 하지요?

남자: 네, 우연히 초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두 여인은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졌으나, “브레히트와 삼자대면하자.”는 데 합의를 보았습니다. 두 여인은 극장 앞에서 브레히트를 만나, 그에게 “우리 둘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때 브레히트는 진지한 표정으로 “두 사람 모두 (사랑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Kebir 1989: 9).

여자: 자신이 양다리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이로군요.

남자: 반홀처는 끝내 브레히트에 대한 미련을 접습니다. 1921년 7월부터 뉘른베르크에서 여교사로 일합니다. 그 사이에 브레히트는 마리안네 초프와 결혼하여, 베를린에 체류하고 있었습니다. 브레히트는 베를린에서 헬레네 바이겔과 만나, 깊은 관계에 빠집니다. 브레히트는 단시,「맞울림 소리Gleichklang」에서 그미와의 이별을 노래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