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3) 여인들의 브레히트. 사랑의 슬픔

필자 (匹子) 2024. 3. 24. 09:17

2. 헤다 쿤 (1898 – 1976)

 

남자: 브레히트는 1917년 가을에 뮌헨 대학교에서 헤다 쿤 (1898 - ?)을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의대생이었는데. 아르투르 쿠처 교수Prof. Artur Kutscher의 연극 세미나에 참가하였습니다. 당시에 쿤은 세미나에서 어떤 테마를 맡아 발표하였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여자: 쿤은 브레히트가 뮌헨의 대학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을 주었겠군요.

남자: 그렇습니다. 특히 브레히트가 훗날 뮌헨의 카머슈필레에서 연출가로 일하게 될 오토 차레크Otto Zarek를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그미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 사이로 발전합니다. 1918년 브레히트는 쿤을 아우크스부르크로 데리고 가서 부모님에게 소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어머니는 병에 걸려 쿤을 직접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여자: 브레히트는 양다리를 넘어서서, 문어발이었군요.

 

남자: (웃음) 재미있는 표현입니다. 브레히트는 반홀처와의 관계를 청산하지 않은 채 쿤을 사랑했습니다. 1919년 뮌헨의 평의회 공화국 혁명 사건이 발발했을 때, 쿤은 일시적으로 프라이부르크 대학 의학과에 다녔습니다. 1920년에서 1922년 사이에 쓰인 브레히트의 일기를 읽게 되면, 두 사람은 깊은 관계에 빠져 있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Hillesheim: 109). 헤다는 브레히트와의 결혼에 열광했고, 브레히트는 혼인 없이 그냥 현재를 즐기자고 제안하였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몇 년 이어졌으나, 쿤은 의학 공부 때문에 서로 자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여자: 브레히트는 여성의 심리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지닌 것 같네요.

 

남자: 네, 브레히트는 체질상 많은 사람 앞에 나서기를 꺼렸으나 일대일의 만남에서 대화를 이끌어나가는 솜씨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고 합니다. 황금의 혀는 여성을 유혹하는 무기였다고 합니다. 반홀처가 브레히트에게 “평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여왕”이었다면, 쿤은 “병적인 성욕을 지닌 창녀”로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Hillesheim: 110). 쿤은 브레히트의 여성 편력을 서서히 감지한 다음에, 고민 끝에 그와의 애정관계를 접습니다.

 

여자: 누구든 한 사람의 임을 사랑하려고 하지요. 여성들이 바람둥이를 좋아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남자: 그런가요? 쿤은 이별을 결심한 다음에, 의학 전공의인 에른스트 볼하임Ernst Wollheim과 약혼식을 치릅니다. 1921년 겨울 브레히트가 두 번째로 베를린에 체류했을 때 심한 고뿔에 걸린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쿤은 자신의 약혼자에게 그의 진료를 부탁했는데, 볼하임은 망설였습니다. 볼하임은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아차렸으나, 더 이상 브레히트와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치료해 주었습니다. 이때 브레히트와 헤다 쿤의 관계는 종언을 고합니다. 브레히트는 헤다 쿤에 대한 자신의 마음 그리고 「헤에 관하여Von He」라는 시에서 그대로 드러낸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