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Brecht

서로박: 상처입은 소크라테스

필자 (匹子) 2023. 9. 27. 18:25

1. 사실 같은 허구, 허구 같은 사실

 

친애하는 R, 소크라테스는 서양 철학사의 맨 처음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의 사상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실제 삶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습니다. 독일의 작가, 게오르크 카이저는 극작품, 「구출된 알키비아데스」에서 군인으로서의 철학자의 진면목을 묘사한 바 있습니다. 이를 토대로 하여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상처 입은 소크라테스”라는 단편을 발표하였습니다.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32년의 델리온 전투의 영웅으로 등장합니다. 어쩌면 이는 허구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브레히트의 단편이 전적으로 허구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문학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 가능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허황된 내용으로 처음부터 배격할 수는 없지요. 수많은 동화는 인간의 이룰 수 없는, 그러나 부분적으로 이루어지는 꿈을 반영하지 않습니까?

 

2. 군인으로 차출된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이따금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지만, 젊은이들과 대화 나누는 일로 소일했습니다. 어떠한 경위에서 군인으로 차출되었을까? 총알받이로 나서게 되면, 아테네 국가로부터 돈을 받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으면 크산티페의 극성스럽게 긁어대는 바가지 때문이었을까요? 미리 말하건대 두 가지 추측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당시에는 아직 총이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소설에서 크산티페는 악처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그녀가 역사적으로 악처로 묘사된 까닭은 일부 거만한 남성 역사가들의 “모함” 때문인지 모릅니다.

 

친애하는 R, 어쨌든 중년의 소크라테스는 군인이 되어, 창과 방패를 쥐고 최전선에 투입됩니다. 방패는 자신의 불룩한 배를 절반밖에 가리지 못할 정도로 자그마합니다. 그러나 약 20킬로에 해당하는 무기를 들고 서 있기란 여간 고역이 아닙니다. 소크라테스는 신들의 말씀을 멀리하고, 고참들의 말을 신뢰합니다. 그리하여 고참들이 시키는 대로 틈만 나면 양파를 씹어 먹습니다. 양파를 많이 먹으면, 전투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3. 모든 전쟁은 밥그릇 싸움이다

 

친애하는 R, 전쟁이 발발한 것은 포도밭 경작지 그리고 땅을 더 차지하려는 고위층 인간들의 탐욕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리스는 페르시아와 영토 문제 그리고 재화 문제로 의견 대립을 빚다가, 끝내 페르시아 군대가 침범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전쟁이 자신의 삶 내지 자신의 이익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전투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고 여깁니다.

 

어느 날 새벽이었습니다. 주위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습니다. 페르시아 군대가 공격해올 때, 자신의 동료들이 주위에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소크라테스 역시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습니다. 짙은 안개로 인해서 눈앞이 보이지 않는데도, 아군 쪽으로 향해 뒤뚱뒤뚱 달립니다. 이때 커다란 가시 하나가 발바닥에 사정없이 박힙니다. 주인공은 일순간 커다란 비명을 지릅니다. 깨금발을 디디면서 도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습니다. 이제는 페르시아 군인들을 맞이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4. 놀라운 기지 그리고 살아남기

 

페르시아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소크라테스는 간이 콩알만 해지는 것을 느꼈지만, 일단 고함을 지르고 봅니다. 죽기 직전의 군인들이 그렇게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곤 했던 것입니다. 이 순간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목소리가 의외로 우렁차다는 것을 감지합니다. 친애하는 R, 이때 그의 뇌리에는 놀라운 기지가 떠오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고함지르는 일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한 지라, 불과 지척인데도 앞을 볼 수 없었습니다.

 

오리무중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장검을 휘저으며, 원을 그립니다. 이 와중에서도 있는 힘을 다하여 고함을 내뱉습니다. “일 분대 돌격”, “4분대 측면으로 이동” 등. 친애하는 R, 이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페르시아 군인들은 예기치 못한 적의 반격 (?)에 당황하여 퇴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에 그리스의 기마부대가 도착합니다. 그들 사이에는 젊은 영웅, 알키비아데스도 끼어 있었습니다. 조만간 소크라테스는 페르시아 군인들을 홀몸으로 물리친 영웅으로 알려집니다.

 

5. 영웅 만들기, 그리고 거짓말

 

어느 누구도 주인공이 도주하다가 가시에 찔렸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위대한 철학자, 페르시아 군을 물리치다.”라는 소문은 아테네 시민들에게 하나의 기정사실로 퍼져나갑니다. 시민들은 그에게 월계수를 씌워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이를 거절하며, 알키비아데스로 하여금 상을 받도록 조처합니다. 사실인즉 발이 너무 아파, 수상식장의 계단 위로 올라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를 더욱더 칭송합니다. 그의 수상 거부는 놀라운 인간적 겸허함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친애하는 R,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을까요? 아니, 있었습니다. 아내 크산티페였지요.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초리는 예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아내가 끓여준 완두콩 스프를 먹고 싶어도, 즉시 식탁으로 달려갈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발이 퉁퉁 부어올랐던 것입니다. 소피스트들이 “가시 박힌 발”에 관한 소식을 접하면, 자신이 얼마나 커다란 구설수에 오르게 될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6. 진리를 발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아침에 친구 안티스테네스가 찾아와서, 항간에 떠도는 소문을 소크라테스에게 전해줍니다. 소문에 의하면 소크라테스가 방향을 착각하여 적지로 도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알키비아데스가 등장합니다. 그는 소크라테스를 막무가내로 수상식장으로 데리고 갈 심산이었습니다. 부풀어 오른 발을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주인공은 두 사람에게 진실을 들려줍니다.

 

친애하는 R, 소설은 비록 단편이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암시해준줍니다. 작품의 은폐된 (진정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어쩌면 아내 크산티페가 아닐까요? 그녀는 처음부터 남편의 (거짓된) 용기를 의심하고 이에 대한 수정을 요구합니다. 이로써 소크라테스는 부끄러운 진리를 솔직하게 고백하게 됩니다. 크산티페는 남편으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도록 요구하며, 나아가 소크라테스의 부풀어 오른 발에서 직접 가시를 빼줍니다. 이러한 행위는 그 자체 “산파술”에 대한 비유나 다를 바 없습니다.

 

 

7. 두려움을 말할 줄 아는 용기

 

친애하는 R, 19세기 말까지 유럽 귀족들은 얼굴의 칼자국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적어도 불알 달린 사내라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미녀를 위해서 결투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남성상은 “용기 있는 군인”의 모습으로 각인되었습니다. 근대 국가의 이데올로기 역시 이를 은밀히 조장해 왔습니다. 오늘날 결투의 풍습은 사라졌으나, 남자다움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습니다. 흔히 멋진 사내는 죽음조차도 연연하지 않고, 목숨 걸고 싸울 줄 아는 대장부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자고로 소시민들은 꿈속에서 자주 장검을 갈곤 합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하지요. 혹시 나는 큰소리를 지르기는커녕 앙갚음하지도 못하고, 노예처럼 고분고분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친애하는 R, 핵무기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한 용기일까요?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을 두렵다고 말하는 자세일지 모릅니다. 소크라테스처럼 온갖 창피와 굴욕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비겁함을 드러낼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요? 왜냐하면 핵무기는 적을 무찌를 뿐 아니라, 자신 또한 모조리 파괴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