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스타로빈스키 (J. Starobinski, 1920 - 2019)의 "쟝 쟈크 루소. 투영과 장애 (Jean J. Rousseau. La transparence et l’obstacle)"은 1957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스타로빈스키는 소위 제네바학파의 레이몽 (M. Raymond)의 제자이다. 그럼에도 그는 의학의 수련 및 의학사 연구에 몰두하였고, “객관적” 인문 과학의 서술 방법 및 “발견 교수법 (Heuristik)의 방식”을 응용하였다. [발견 교수법은 주지하다시피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해결을 얻으려는 교수법으로서, 학생 스스로 깨닫게 조처하는 모든 방식을 가리킨다.] 그럼에도 서술 기법 그리고 발견 교수법적인 방법론 등은 다만 무언가를 보조하는 기능을 지닐 뿐이다. 다시 말해 상기한 서술 기법 내지 발견 교수법적 방식은 어떤 철학적 예술적 인식을 위한 보조 수단에 불과하다. 스타로빈스키는 텍스트와 해석자의 해석학적 만남에다 핵심적인 비중을 두었다. 다시 말해 스타로빈스키의 문학 비평은 해석자가 주어진 작품에 대해 과연 얼마나 거리감 내지 동질성을 느끼는가? 하는 물음으로 시작된다.
장 쟈크 루소. 투영과 장애는 존재와 가상의 대립 그리고 문학 작품의 현상 형태에 나타나는 은폐의 문제 그리고 우울 등을 중요한 사항으로 부각시킨다. 여기서 거론되는 루소의 태도와 이념 역시 이를 위해서이다. 실제로 스타로빈스키는 루소의 사상과 태도를 연대기 순서에 의해서 밝힌다. 그렇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루소의 전기도 아니요, 루소 철학의 조직적 분석도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루소의 자기 인식의 과정에 집중하고 있다. 이로써 스타로빈스키는 하나의 사상이 사상가가 처하고 있는 현실로부터 분리될 수 없으며, 또한 자신의 이론이 개인적 운명과 구분될 수 없음을 분명히 지적한다. 쟝 쟈크 루소의 문학적 창조는 어떤 상상적 행위로서 그의 태도 내지 입장은 스타로빈스키에 의해 어떤 생명력 넘치는 가상으로서 해석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정신 분석학 비평에 친숙해 있는) 스타로빈스키는 정신분석학적 비평을 비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문학 작품들을 여러 전제 조건들로 축소화시키고, 문학 작품을 잉태시키는 최후의 원인 내지 “설계”를 등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적 문학 비평은 작가의 성적 심리적인 집필 모티브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간주한다. 이로 인하여 예술 창조의 마지막 동인인 영감 (inspiration) 내지는 창조적 충격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
만약 상징이 감추어진 갈망을 은폐하고 있다며, 그것은 동시에 갈망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내고 표시하는 무엇이기도 하다. 개인적 이야기는 예술 작품에 편입되지만, 그것은 또한 초월화된 이야기일 수 있다. 스타로빈스키는 작가의 이러한 초월의 능력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작가는 문학 작품의 창조적 집필을 통하여, (자신이 자연적 존재로서 소속되어 있는) 운명을 바꾸고, 자신이 속하는 사회적 상황을 바꾼다.
가령 루소의 작품 속에는 동경이 담긴 망상적 열망의 상이 끊임없이 담겨 있다. 이는 텍스트 유형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내면적 연관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상인 셈이다. 루소의 내적인 욕망을 투영하고 있는 내면적 연관성으로서의 경험은 (스스로 용납할래야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사회와의 갈등 속에서 나름대로의 특수한 기능을 획득한다. 실제로 루소는 내밀한 개인적 욕망을 사회적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없기 때문에 깊은 고뇌에 빠지곤 하였다.
루소의 이상은 스타로빈스키에 의하면 마음 (Herz)속의 바람을 외부 세계로 투영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루소는 외부 세계 (사회)에서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직접적 가능성을 발견하기는커녕, 기껏해야 언어, 돈, 사회 인습적 허상 등에 의해 간접적 차단만을 느낀다. 그는 수동적 체념 속에 스스로를 차단시키는 장애물을 용인할 수 밖에 없지만, 자신의 순수성을 더럽히지 않는다. 한마디로 마음속 바람을 밖으로 투영시키려는 루소의 노력이야 말로 루소 사상의 핵심적 모티브이다. 그것은 (이른바 황금의 시대라는) 신화적 과거속에서 발견된 이상을 하나의 목표로서 상정한 것이다. 루소의 이상은 (개인적으로는) 개개인의 개혁, 참다운 교육을 통해서, (전체적으로는) 어떤 이상적인 정치 공동체를 통해서 실현되어야 마땅한 유토피아이다. 이는 어째서 루소가 현대의 자전기 (Autobiographie)의 창조자가 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과 같다. 자아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을 진정하게 드러낼 수 있다. [만일 자신에 대한 기록 속에 토로하기 힘들고 부끄러운 내용이 담겨 있다면, 글쓰기 행위는 어떤 심리적 정신적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인간의 진정한 본질은 루소에 의하면 사회적 가상 속에 은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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