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문학 이론

서로박: 벤야민의 '기술 복제 가능한 시대의 예술'

필자 (匹子) 2023. 12. 13. 11:02

 

발터 벤야민 (Walter Benjamin, 1892 - 1940)의 「기술 복제 가능한 시대의 예술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은 1936년 프랑스어로 씌어져 "사회 연구를 위한 잡지"에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1955년 아도르노 등이 편찬한 벤야민 전집에 독일어 축약문으로 간행된다.

 

벤야민의 예술 이론적 에세이는 예술과 복제 (재생산)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무척 중요한 문헌이다. 예술 작품은 과거에도 수작업에 의해서 (주조, 압착 등의 방법으로) 이미 재생산된 바 있다. 벤야민은 예술의 현격한 발전을 이룩한 새로운 시대가 19세기라고 규정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특히 사진 예술과 영화 예술의 분야에서) 예술 작품은 대대적으로 복제 내지 재생산 가능하게 되었다. 그 대신 잃어버린 예술 작품의 기능은 벤야민에 의하면 “아우라”라고 한다.

 

어떤 예술 작품이 유일한 특성을 지닐 수 있는 까닭은 벤야민에 의하면 그 속에 아우라가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예술 작품은 과거의 전통과 관련하여 문화, 제식 그리고 종교 등과 구분되지 않았다. 원래 예술 작품은 문화적 풍속, 제식 그리고 종교 의식을 반영하려는 의도에서 탄생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예술 작품이 독창성을 지니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내재적으로 신비롭고도 근접 불가능한 특성을 지녀야 했다. (이는 예술 작품이 관찰자와 얼마나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과는 무관하다.) 따라서 아우라는 예술 작품의 근접 불가능한 특성을 신비롭게 그리고 신화적으로 전해주는, 그러한 기능을 담당하였다. 벤야민은 자신의 아우라 개념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우라는 “(작품과 감상자가 얼마나 근접해 있는 간에) 어떤 먼 곳이 은은하게 투시되는 일시적 현상”이다.

 

 

오늘날 사진과 영화와 같은 임의로 복제 가능한 예술이 발전되었다. 이로써 예술 작품의 풍속 가치는 상품 가치로 교체된다. 이때 특히 영화의 경우 어떤 새로운 인지 형태가 출현한다. 영화는 주어진 현실의 미세한 그물 구조를 파고든다. 그것은 세부 사항들을 사회적 관련성으로부터 일탈시킴으로써, 그것들을 새롭게 결합시킨다. 가령 우리의 소외된 현존재 (대도시, 사무실 그리고 공장 등과 같은 갇힌 세계)는 필연적 당위성에 의해 조종되고 있지 않는가? 영화는 바로 그러한 필연적 당위성에 대한 견해를 다양화시키고 증가시킨다. 아우라를 담고 있는 예술 작품을 대할 때 관찰자는 “반사회적”인 명상에 사로잡히지만, 영화를 감상할 때 어떤 사회적 방향 전환을 체험한다.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은 벤야민에 의하면 예술과 정치 사이의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가령 정치적 삶의 대중적인 “예술화”는 파시즘의 특성을 규정짓는 범례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정치의 예술화”는 모든 예술적 수단을 동원하여 실제로 전쟁을 미화시켰다. 그러니까 전쟁이란 벤야민에 의하면 “미적인 사건”으로 해석되었으며, “예술을 위한 예술 (L‘art pour L’art)”의 완성으로 수용되었다고 한다.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류는 한때 호메로스에 의하면 올림포스 신들의 관찰 대상에 불과했다. 이제 인류는 자기 자신의 관찰 대상으로 변모했다. 인류의 이러한 자기 소외는 계속 진척되었고, 끝내 자신의 고유한 존재를 없애는 일을 가장 훌륭한 미적 향유로 체험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서 인류는 자신이 저지르는 전쟁 놀음을 이제 자신의 눈으로 관람하고, 이를 즐기게 되었다. 따라서 “정치의 예술화” 라는 슬로건이 얼마나 예술 지상주의로 남용되고, 파시즘의 전쟁 광분으로 악용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우리에게 하나의 분명한 해답을 제공해준다. 따라서 “정치의 예술화”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표방해온 “예술의 정치화”와 정반대되는 슬로건으로 이해될 수 있다.

 

본 논문으로 미루어 우리는 당시 벤야민이 유물론적 예술관에 서서히 관심을 돌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은 나중에 아도르노의 문학 분석에, F. A. 키틀러 (Kittler)의 매체 이론서 󰡔축음기, 영화, 타이프라이터󰡕 (1986)에 그리고 라코-라바르트 (Lacoue-Labarthes)의 문화 이론 분석서 󰡔정치적인 것의 가상󰡕 등에 영향을 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