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권경업의 시 '오래전 그대는 꽃다운 누군가의 눈부신 눈물이었습니다'

필자 (匹子) 2023. 11. 2. 09:22

나: 오늘은 권경업 시인의 작품을 다루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회자되지 않은 것은 기이할 정도입니다.

너: 많은 시집을 간행했지만, 다음의 시집에는 많은 명시들이 숨어 있어요. 『꽃을 피운 바람의 독백』3권 (전망 2013), 그리고 『뜨거운 것은 다 바람이 되었다』 (작가 마을 2012). 우리는 명시들을 다시 읽고, 이것들을 애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나: 그의 몇몇 시편들을 예의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권 시인을 “바람의 시인”으로 규정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너: 그분은 바람처럼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권 시인은 자연을 스치며 방랑하고, 꽃과 나무 가지를 쓰다듬는 산악인이지요. 그의 시 가운데에는 다음과 같은 게 있습니다. “몸서리치도록 누군가가 그리운 날은/ 억새도 하얀 바람이 된다.” (「누군가가 그리운 날은」 전문). 사회인으로서의 행적을 염두에 둘 때 그는 정말로 바람의 시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웃과 친구 그리고 지인들에게 바람처럼 끊임없이 무언가를 자극하는 분이니까요

 

나: 네. 이와 관련하여 그를 바람의 시인으로 명명한 것은 참으로 멋지군요. 흔히 사람들은 야구선수 이종범을 “바람의 아들”이라고 말하지요? 워낙 빠르게 달리니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너: “바람의 아들”은 신출귀몰할 정도로 탁월한 운동 감각을 드러내는 표현이라면, 바람의 시인은 이와는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거대한 양 (美)”을 발견하고, 이러한 아름다움을 독자에게 전해주기 때문이지요.

 

나: 일단 권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오래전 그대는 꽃다운 누군가의 눈부신 눈물이었습니다.」는 2001년에 발표된 작품이지요?

 

오래전, 그대도 꽃다운 누군가의

눈부신 눈물이지 않았나요

 

장당골 산벚꽃을 그저

꽃이라 부르지 마세요

그 겨울, 설움에 복받친 마디마디

울컥이는 눈물이에요

 

어디 아픔 없이 피운 꽃 있겠습니까

 

오래 전, 그대도

꽃다운 누군가의 눈물이지 않았나요, 아마

지금은 가고 없을

산 같으셨던 오직 한 분의

 

너: 혼자 조용히 읽어도 가슴이 미어지는 작품입니다.

나: 그렇지요? 시를 해부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시의 맛을 떨어뜨리게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 예사롭게 넘길 꽃이 아닌 것 같아요. 권시인은 다른 시 「산벚꽃 그늘 아래」에서 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저건 아우성 같지만, 실은/ 사랑한다는/ 너에게 보이려는 소리 없는 고백”이라고요. (뜨거운 것은 다 바람이 되었다, 작가 마을 2002, 130쪽)

 

나: 사랑한다는 소리 없는 고백이라, 멋진 표현인데요? 그런데 산벚꽃은 생명력을 지닌 한반도의 민초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수많은 세월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다가 세상을 떠난 여성들 말입니다.

너: 나 역시 그렇게 느꼈습니다. 마지막 구절, “지금은 가고 없을/ 산 같으셨던 오직 한 분의”라는 구절은 참으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군요. 나는 이 시를 읽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꽃다운 누군가의 눈물로 피는 꽃” - 그게 벚꽃이지요.

 

나: “장당골 산벚꽃”이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시인이 어디에 머물렀는지 유추할 수 있어요.

너: 네, 장당골은 지리산 내원사 방향의 계곡을 가리킵니다. 나는 그곳에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나: 그곳의 계곡에는 아름다운 개울이 자리하고 있으며, 무제치기 폭포까지 이어진다고 하네요. 어쨌든 산벚나무는 장당골 계곡에서 찬란하게 꽃을 피우곤 합니다. 시인은 지리산의 장당골을 자주 여성의 자궁으로 비유했습니다. 가령 이러한 시도 있지요. “폐경기 안면 홍조/ 그래도 곱다” (「10월 장당골」전문)

 

너: 그런데 벚꽃은 “사꾸라”라고 해서, 일본의 국화로 알려져 있지 않나요?

나: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일본에도 무궁화나무가 많으니까요. 게다가 벚나무는 순수한 우리나라의 특산종입니다. 이를테면 산벚꽃나무는 인고의 세월을 저항으로 맞서온 생명체이지요. 산벚꽃 나무의 껍질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기이하게도 세로가 아니라, 가로로 갈라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려시대에 팔만대장경의 60% 이상이 벚꽃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나중에 이것들은 모두 사라졌고, 오로지 해인사의 것만 보존되고 있지만 말이지요.

 

너: 벚꽃나무가 주로 계곡에서 자라는 것도 중요했겠네요?

나: 그렇습니다. 당시 고려인들은 몽고군의 눈을 피해서 수월하게 목재를 구했다고 전해집니다. 게다가 이 나무는 이조시대에는 화살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벚꽃나무의 껍질로 화살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화피 89장을 받았다.” (난중일기 1594년 2월 5일) 여기서 화피는 벚나무 껍질을 가리킵니다.

 

너: 그렇다면 권 시인이 “그 겨울, 설움에 복받친 마디마디/ 울컥이는 눈물”로 표현한 것도 이와 관련되는지요?

나: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산벚꽃나무는 이를테면 한 많은 이조시대의 여성들을 가리킬 수도 있어요. 임진왜란 당시에 고통 속에서 남편과 자식을 돌보다가, 전쟁 통에 몰래 화살을 다듬고 주먹밥을 만들던 여성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러한 여성들의 상처와 아픔이 권경엽 시인의 시에 용해되어 있는 게 아닐까요?

 

너: 여기서 시인은 “지금은 가고 없을/ 산 같으셨던 오직 한 분의” 눈물을 기억에 떠올리고 있습니다. 그분은 추측컨대 시인의 어머니일 수도 있어요.

나: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시 해석에 있어서의 빈 여백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빈 여백 leere Stelle”은 수용미학자 볼프강 이저 Wolfgang Iser의 『독서의 행위Der Akt des Lesens』에 의하면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맹점으로 이해될 수 있지요. 이를테면 우리는 독서 시에 “한 분”을 “평생 항일 독립 운동과 통일 운동에 몰두하던 부친” (김광환)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함께 히말라야 산을 등반하다가 목숨을 잃은 동료” (전홍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든지 달리 해석할 수 있겠지요. 한마디로 그분은 지금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태산 같은 성품을 남긴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