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박설호: (3) 문창길의 시,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필자 (匹子) 2023. 10. 31. 11:43

(앞에서 계속됩니다.)

 

5.

B; 네, 그만큼 문창길 시인의 마지막 시구는 감동 그 이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는 선생님이 서두에 지적하셨던 교육의 본질적 의미 그리고 젊은이가 체험하는 입신(立身)의 방향성에 관해서 살펴볼까요?

A: 교육이란 사실을 접하고, 무언가를 깨닫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한 미래를 염두에 두면서 직업 교육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학교와 가정 그리고 학원을 오고 가지요.

B: 어릴 때부터 부모들은 사유재에 대한 인식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문 잘 잠그고 다녀라.”고 가르치지요.

 

A: 어쩌면 가정을 떠나 다른 곳에 체류하며 배우는 게 진정한 교육일 수 있어요. 그렇게 되면 친구를 생각하고, 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믿음과 애착이 강화될 수 있습니다. 신비로운 사회주의자, 에치엔 가브리엘 모렐리Étienne-Gabriel Morelly는 『자연 법전Code de la nature』(1755)에서 학교를 하나의 교육 공동체로 설정하고, 가정으로부터 거리감을 취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사적 소유물이라든가 가족 이기주의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박설호: 서양 유토피아의 흐름, 제 2권, 캄파넬라에서 디드로까지. 르네상스 시기-프랑스 혁명 전후, 울력 2020, 217쪽 이하)

B: 어쩌면 교육에서 필요하는 것은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의식일 수 있다는 말씀이로군요.

 

A: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가족들의 끈끈한 사랑마저 무조건적으로 배제할 수는 없지요. 한 가지 예로 스웨덴의 작가 카린 보위에Karin Boye는 소설 『칼로카인Kallocain』에서 전체주의 디스토피아를 다룬 바 있습니다. 이러한 공동체에서는 아이는 8세가 되면 부모를 떠나는데, 국가는 부모와 자식들을 영원히 만날 수 없도록 조처합니다. (Boye, Karin (1986): Kallocain: Roman aus dem 21. Jahrhundert, Frankfurt a. M..S. 167) 누군가 자식과의 이별을 슬퍼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체제 파괴적이고 반국가적이며, 사악한 이기주의자로 매도되어 처벌당합니다.

B: 끔찍하군요. 어쨌든 우리나라의 부모와 자식 관계는 너무나 견고해서 모렐리의 제안이 절실하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입신의 방향성은 문창길 시인의 작품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A: 교육의 길은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여정과 같습니다. 문 시인의 작품은 미얀마의 문화적 배경을 넘어서서 바로 이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나는 한울을 키우고 보살피는 노력에 관해서 언급하였습니다.

B: 아, 그게 해월 최시형이 추구한 양천(養天)과 관련되는 군요.

 

A: 그렇습니다. 최보따리는 난세에 숨어 살았습니다. 틈만 나면 새끼를 꼬든가, 젊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가르침은 최시형 선생에게는 매우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B: 그것은 자그마한, 천진난만한 아이가 나중에는 세상을 다스리는 위대한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겠네요.

A: 네. 중요한 것은 가르치는 자의 관심과 사랑이 아닐까요? 문창길 시인의 시작품에서 가르치는 자는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마지막 구절은 코코 아웅이 만난 은사의 발언일 수 있어요. 문창길 시인은 전지적 관점으로 은사의 발언을 빌려 외칩니다. 단기출가는 무궁한 고행을 어린 도반에게 수행케 하리라.” 그리고 다음과 같은 시구는 참으로 놀라운 발언 아닙니까? “불성은 너의 손바닥 안에 있느니/ 너의 집에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B: 지금은 비록 삶의 뜻도 다 헤아리지못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일가를 이루리라는 말씀으로 이해되는군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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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미터 고산지대 외딴 산간마을

나의 어린 친구가 속세를 떠나 단기출가를 한다

절 마당에서 동무들과 대나무 공 세팍타크로를 차거나

말고삐를 잡고 풀밭을 찾아다니던 코코 아웅

짧지만 긴 불가의 세계는 높은 산 저 안개밭보다

무궁한 고행을 어린 도반에게 수행케 하리라

뜻도 다 헤아리지 못할 불경을 외우게 하고

붉은 단지를 안고 마을로 내려가 탁발승이 되라 하고

그러다 뜨거운 햇볕 내리쬐면

노승이 주는 샨스타일 얼음과자를 받아 빨면서

맨발의 학승이 되기도 할 것이다

 

코코 아웅

내일이면 스님으로 불러야 한다

그러다 열흘 후면 다시

속세의 어린 친구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 그의 엄마는 파르라니 빛나는

아들의 머리를 매만진다

그래 이제 엄마를 떠나거라

너의 고향은

너의 모태는

궁극적 평안에 이르는 니르바나에 있느니라

 

스님의 엄마는 아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과 왕관을 씌운다

붉은 흙가루와 나뭇잎을 개어 화려한 분장을 하고

마을에서 뽑은 붉은말 잔등이에 올려주며

순진무구한 너의 세계를 지키라 한다

불성은 너의 손바닥 안에 있느니

너의 집에 너는

네 우주를 안고 돌아올 것이다.

 

문창길 시집: 북국 독립서신, 들꽃세상 2019, 68 - 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