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한국 문학

(명시 소개) (2) 타향에서 고향 찾기, 이교상의 연작시 "담양에서 쓰는 편지"

필자 (匹子) 2022. 7. 7. 11:34

(앞에서 계속됩니다.)

 

3. 「호접몽을 만나다」

 

너: 실제로 시인은 담양의 여러 지역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유년의 삶 그리고 젊은 시절을 다시 기억해냅니다. 이는 「다시 봄날에」, 「호접몽을 만나다」에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나: 물론 우리는 시인의 과거 체험에 관해서 모조리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시인은 “허기진 유년 시절”을 보냈다는 사실입니다. 마른 나뭇가지의 바스락거림은 “술 취한 아버지의” 흥얼거림을 연상시킵니다. 시인의 “발목”이 자꾸 ”허공에 푹푹” 빠지는 까닭은 막막한 현실을 헤쳐나갈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 그런데 시인은 담양에 있는 관방 산에 있는 제방에서 지나간 사랑을 반추하고 있습니다.

 

은은히 날아가서/ 물낯이 되고 싶었을까요?

 

그동안 아주 요상한 외로움이 시간을 녹슬게 했지만, 오래 기다렸다는 듯 벤치에 앉아있는 남자와 여자가 한 방향을 바라보며 비눗방울처럼 부풀어 올랐습니다. 모든 그리움은 연분홍 색채를 지녔으므로, 그동안 숨겨왔던 마음 살포시 드러낸 채 남자는 여자를 업고 여자는 남자를 안고 천천히 꽃망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대낮이지만, 욕심껏 솟구쳐 올랐다가 관방제림에 알몸으로 내려앉은

 

찬란한/ 인간의 상상이여 // 아름다운/ 나비여

 

: 네 추측하건대 사랑에 대한 시인의 갈망은 젊은 시절에 거의 충족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갈망의 충족을 젊은 시절에 만끽하는 자는 세상에 많지 않지 않아요. 시인은 우연히 젊은 남녀를 바라봅니다. 이때 과거의 기억, 즉 “꽃망울 속으로” 걸어 들어간 연정을 떠올립니다. 사랑은 마치 비눗방울 속의 오색영롱한 색채로 투영되고 있습니다.

: 장자 (荘子)의 “호접몽”이 떠오르는군요. 꿈도 현실도 죽음도 삶도 구별이 없지요. 우리가 눈으로 보고 생각으로 느끼고 하는 것은 한낱 만물의 피상적 변화라고 합니다.

 

: 어쩌면 시인은 사랑이 성취되는 가상적인 공간을 사랑을 방해하는 현실과 대비시키려고 그러한 제목을 붙였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러한 두 공간은 “물낯”을 통해 분명히 구분되고 있어요. 그런데 다음의 범상치 않은 시구는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요상한 외로움은 시간을 녹슬게” 한다. 멋진 시구 아닙니까? 외로움은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이끌지만, 사랑은 성취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릅니다.

 

: 섬세한 인간은 임이 곁에 있어도 외로움을 느낀다고 하지요?

: 어쩌면 그게 사랑의 본질이며, 인간 심리의 내적 구조를 대변하는 말이지요. 시인은 바로 그 점을 말하기 위해서 호접몽을 예로 들면서, “그리움은 연분홍 색채”라고 명명하는 게 아닐까요?

 

4. 「댓잎이 별의 집이 되는 이유」

 

: 이어지는 시편, 「댓잎이 별의 집이 되는 이유」는 감히 말씀드리건대 연작시의 압권인 것 같습니다. 시인은 새로운 여행지에서 아픔과 그리움을 순간적으로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나: 한 작품을 압권이라 단언하면, 연작시의 다른 작품들의 가치가 훼손될 것 같은데요? 물론 동의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시적 화자는 스스로 참아내어야 했던 상처를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장소에서 소환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삶에서의 압박감 그리고 이로 인한 심리적 상처는 우리의 꿈속에서 흐릿한 상으로 나타나 우리를 경악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시인은 이를 “으슥한 그림자를 끌고 어디론가 자꾸 도망 다니는 악몽”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알아도 어쩌지 못한 상처가 너무 많아

 

으슥한 그림자를 끌고 어디론가 자꾸 도망 다니는 악몽을 꿀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백태 낀 혀로 제 몸 핥아먹고 마음대로 우묵해진 여름 손등으로 문지를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노숙의 풍경들이 나무 그늘 속에 검은 얼굴을 묻고 요란한 매미의 울음소리로 허기를 채울 때 별이 보였습니다.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무럭무럭 웃자란 가시넝쿨 그 새빨간 거짓을 지울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거리에 버려진 비닐들이 아버지의 서러움으로 느껴질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산을 오르다가 우연히 마주앉은 풀꽃들을 아주 귀하게 읽을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떨쳐내려 할수록 더욱 집요해진 슬픔을 그러안을 때마다 별이 보였습니다.

 

봄이면/ 그 무수한 상처가 반짝반짝/ 말을 합니다

 

: “무럭무럭 웃자란 가시넝쿨 그 새빨간 거짓”이라는 표현은 시인의 유년과 청년 시절의 성장 과정의 아픔과 상처를 유추하게 합니다.

: 시적 자아의 객관적 상관물인 “가시넝쿨”은 자신을 보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물과 햇빛을 충분히 공급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땅은 척박하고, 물과 햇빛은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누가 감히 무럭무럭 자랐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요?

: 사실 50년대 혹은 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면 시인이 말하는 굶주림에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권층을 제외하고 전쟁 이후에 남한 사람들은 가난이 하나의 일상이었으니까요. “백태 낀 혀로 제 몸 핥아먹고 마음대로 우묵해진 여름 손등으로” 문지르는 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었습니다.

 

: 그렇습니다. 시인은 산에서 “풀꽃”을 바라볼 때 자신을 떠올리고, 배고픈 시절 “매미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거리에 버려진 비닐”이 시인에게 “서러움”을 안겨주는 까닭은 비닐이 아버지의 한 끼 식사를 연상하게 해주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가난과 고독 그리고 외면당하던 자아의 아픔을 떨칠 수 있었던 것은 밤하늘의 “별” 때문에 가능했는지 모릅니다.

 

너: 시인이 가장 소중하게 사용하는 시어는 아무래도 “댓잎” 그리고 “별”인 것 같아요.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요?

: 대나무는 곧고 유연하며, 어린 시인에게 강직함과 인내를 가르쳐준 게 틀림없습니다. 그밖에 별은 캄캄한 밤에 더욱 밝게 빛납니다. 별은 절망에 빠진 자에게 출구를 알려주고, 병든 사람에게 건강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안겨주지요. 별은 서로 떠나 있는 연인들에게 그리움을 안겨주고, 잠들지 못한 아이에게 찬란한 세상을 미리 보여줍니다.

: 북극성은 방랑하는 자에게 방향감각을 느끼게 해주지요?

: 그렇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다시금 재론할 것입니다. 어쨌든 별은 시인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별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대담자이기도 했지요. “무수한 상처”는 “반짝반짝” 말하며, 시인과 대화할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