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삶
<실험>은 1939년에 집필, 1948년 “칼렌더 이야기 (Kalendergeschichte)"라는 책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프란시스 베이컨( 1561-1626)은 영국 제임스 1세 때의 수상으로, 영국의 법률가이자 정치가이다. 하지만 후대에 정치가로서의 그의 삶은 좋지 못했다. 그는 법률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대법관의 자리에까지 올랐으나 1621년에 뇌물 수술 혐의로 탄핵을 당하고 60세의 나이에 실험과 저술에 몰두하다가 65세의 나이에 사망한다. 작가는 왜 베이컨을 작품의 소재로 삼았을까? 그것은 바로 정치가로서의 그는 매우 형편없었지만, 과학자로서의 그는 매우 유능했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의 그는 매우 합리적이고 경험론에 정통했다.
“유용성”과 “이성”을 중시하는 작가, 브레히트로서는 작품 집필의 수단으로 베이컨의 말년의 삶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베이컨은 ”근대 경험론의 선구자“라고 불리며 실험과 관찰을 통해 원리와 법칙을 발견하는 ”귀납법“을 제시했다. 작품의 가장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은 그의 죽음이었다. 그는 말년에 런던 근교의 시골집에 머물면서 특히 “온도와 부패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한 과학 실험을 행하고 있었다. 그 실험은 실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고, 영국의 춥고 습기 많은 날씨 상황에서 그는 결국 폐렴에 걸려 집에 도착하기도 전인 그해 4월 9일 사망했다.
2. 등장인물 소개
2-1. 주인, ‘프란시스 베이컨’: 작품 내에서 그는 부패한 공직 경력을 가진 은퇴한 정치가로서, 출옥한 다음에 자신의 영지로 돌아가 말년을 자연과학에 관한 저술과 실험으로 보낸다.
2-2. 호기심 많은 소년 ‘딕’: 베이컨의 영지에는 여러 하층민들이 일하고 있는데, 그 중 마구간에서 일하는 하층민 계급의 소년이다. 열성적이고 뛰어난 관찰력으로 베이컨의 눈에 띄게 되어 그의 제자가 된다.
3. 작품의 줄거리
3-1. 불명예스럽게 은퇴한 공직자, 출옥 후 영지로: 작품의 시작은 재직 당시 “처형과 악랄한 독점의 묵인, 불법 체포의 방치, 지시된 판결의 선고”등의 업적으로 불명예스러운 공직자 베이컨의 은퇴 시점부터 다루어지고 있다. 그 후 영지로 돌아와 자연과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데 몰두한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들을 다스리는 데 실패했으므로, 지금부터는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하면 자연의 힘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배할 수 있을까“를 탐구하는데 그의 여력을 다 쏟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는 주로 실용적 사물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는데, 항상 서재에서 나와 들판과 정원 그리고 마구간에서 몇 시간이고 머무르곤 했다.
3-2. 호기심 많은 소년 ‘딕’을 만나다: 어느 날 베이컨은 마구간에서 값이 꽤 비싼 병든 말 한 마리의 상태를 정확하고 끈기 있는 관찰력으로 열성을 다해 그에게 보고하는 소년 ‘딕’을 만나게 된다. ‘딕’의 열성과 뛰어난 관찰력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어느 저녁 마구간에 갔을 때 그는 한 노파가 그 소년에게 “그 사람은 돈이 많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나쁜 사람이니, 너의 몫의 빵을 받기 위해 할 일은 하되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을 항상 잊지 말라”라고 당부하는 것을 듣게 된다. 그는 행여나 그 소년의 대답이 들릴까 서둘려 집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다음날에도 자신을 대하는 소년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3-3. 노인, 소년을 제자로 삼다: 말이 다 나은 후 베이컨은 소년을 그의 제자로 삼아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는 몇 개의 실험에 관해서 그 소년과 얘기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졌고, 이때 그는 보통 어른들이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어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말을 썼다. 그는 소년을 아이처럼 대하지 않고, 마치 자신과 같이 학문적 조예가 깊은 학자에게 말하듯이 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위대한 사람들과 대화를 해왔지만, 그들이 제대로 그의 말을 이해하는 적은 거의 드물었다. 왜냐하면 그가 "분명치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도 분명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신을 중시하는 스콜라 철학이 지배적인 사상이었다. 스콜라철학은 추상적인 것을 바탕으로 두고 있어 증명이 어려운 반면, 베이컨의 경험론적 시각은 그 당시 가히 혁명적이었으며 "경험"에 의해 확실한 증명이 가능하였기 때문에 당시 지배하던 스콜라 철학에 뿌리를 둔 "위대한 사람들"은 너무도 분명한 그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는 소년이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데 애를 먹는 것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다만 소년이 나름대로 낯선 단어들을 사용하려고 할 때 짜증 내지 않고 일일이 그것을 고쳐줄 뿐이었다.
3-4. 소년, ‘이성적으로 의심하는 방법’을 배우다: 딕이 주로 하는 수련은 그의 눈에 띄는 사물과 그가 자신의 선생님과 함께 겪는 과정들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베이컨은 사물을 설명하는 데는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존재하며 얼마나 많은 단어들이 필요한지 일러주었다. 그러한 설명으로도 딕이 사물을 반쯤을 알 수 있음과 동시에 그것을 다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좋다’ 그리고 ‘나쁘다’처럼 추상적인 단어들은 근본적으로 아무런 사실도 증명할 수 없는 때문에 오히려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딕은 풍뎅이를 처음보고 그것이 ‘흉측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깨달았다. 그 풍뎅이가 동일한 크기의 다른 동물에 비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그리고 그 풍뎅이가 왜 그렇게 할 수 있는지를 제시해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 소년은 그것을 급경사의 평면과 수평인 평면에 놓고 소음을 이용해 그것을 움직이게 하였다. 풍뎅이를 오랜 시간 관찰하다 보면 그것의 ‘흉측함’은 금방 사라졌다. 언제가 딕은 주인 나리를 만났을 때 그의 손에 들고 있던 ‘빵’에 대하여 설명해야만 했다. 그때 나리는 “여기선 ‘좋다’라는 단어를 안심하고 사용해도 된단다. 빵이란 사람이 먹기 위해 만든 것이라서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지. 하지만 자연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그런 단어들을 쓰는 것은 어리석다"라고 말한다.
소년은 그때 자신의 할머니가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그미는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저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브레히트의 작품 속에서 나쁜 사람과 좋은 사람의 의미는 얼마나 그 사람이 “유용성 있고 생산적인가”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앞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될 수도,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년은 이해해야 할 것들이 손해 잡히듯이 이해되었기 때문에 매우 빠르게 깨우쳐 나갔다. 눈에 보이는 변화가 정말 사용한 방법 때문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이성적인 의심”을 남겨둬야 한다는 것도 그는 깨달았다. 선생님의 위대한 뜻은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그에게서 배우는 여러 시도들의 유용성이 그를 열광케 했다. 그는 자신의 스승을 이러한 방식으로 이해했다. 이제 이 세계에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고, 모든 지식은 인류의 복지와 행복의 증진을 위해 발전되어왔다. 그것을 주도한 것은 ‘과학’이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탐구함으로써 보다 많이 ‘유용성’을 끌어내려 했다. ‘믿는 것’보다 ‘아는 것’이 중요했다. “인간은 믿는 것은 너무 많은 반면, 아는 것은 너무 적었다.” 모든 것은 자신이 직접 체험해보고 유용성이 있는 것들만 말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가르침이었다.
3-5. 소년, 지식을 갈구하다: 딕은 이제 자신도 그 가르침에 한 발 들여놓으리라 결심한다. 그는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주인나리의 지식을 매일밤 불이 켜져 있는 그의 ‘서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 대한 딕의 호기심은 날로 커져갔다. 그는 글을 배우기로 결심하고 교회의 성구실에 있는 미사 책에 글이 있다고 생각하고 보좌신부를 찾아가 사정을 하지만 종치는 줄을 잡아당기겠다고 신고하여 미사 중 보좌신부가 읽는 구절 몇 개를 외워 마구간 뒤에서 연습하다가 소년이 신부를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한 마부장에게 따귀를 맞고 글자를 깨치기 위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간다. 그것보다 더욱 큰 재앙은 주인나리가 병에 걸린 것이었다.
3-6. 노인과 소년, 함께 실험을 시작하다: 어느 겨울 병들어 있던 베이컨은 딕과 함께 썰매를 타고 몇 마일 떨어진 영지로 여행을 했다. 농가에서 그들은 언 참새 한 마리가 길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다. 베이컨이 농가 주인에게 이 참새는 얼마 동안 이곳에 놓여 있었냐고 묻자 농가 주인은 “한 시간에서 한 주일, 또는 그 이상”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은 곧 그 참새가 썩지 않고 매우 신선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베이컨이 영지에 들어섰을 때, 썰매에 닭 한 마리가 부딪히고 즉사한다.
베이컨은 소년에게 그것의 내장을 꺼내고 차가운 눈을 채워 넣어 일주일 정도 차가운 지하실 바닥에 두라고 지시한다. 당시에는 냉동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래전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싱싱한 참새의 상태에 혹시 그것이 차가운 온도에 놓여져 있어서 싱싱함을 유지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성적 의심”이 그들로 하여금 실험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리고 베이컨은 소년에게 그 닭의 상태를 보고하라고 명령한다. 그 후 베이컨은 고열로 앓아눕는데, 소년은 닭이 여전히 싱싱하다고 보고한다. 그러나 이틀 뒤 다시 보고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스승은 세상을 떠나고 만다.
3-7. 소년, 스스로 실험을 이어가다: 스승이 떠나고 소년은 이제 실험을 혼자서 완성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마부에게 엿새 전 죽은 닭을 보여주며 그것이 완전히 싱싱하다는 것을 열심히 설명하지만 그는 ‘그래서 뭐 어떻다고?’와 같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소년을 굴하지 않고 요리사에게 그 닭을 요리해달라고 찾아갔지만 역시 무시당한다. 닭은 여전히 싱싱했다. 장례식이 치러지는 이틀 동안, 소년은 자신의 할머니에게 그간의 일을 들려주며 그녀가 자신을 믿어줄 것이라고 기대하며 “차가운 눈을 채워 두었기 때문에 그 닭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는 “죽은 지 일주일이나 닭을 어떻게 먹어? 그건 독이 있어!”라고 말하며 소년의 말을 믿지 않는다.
3-8. 마침내 실험을 완성하다: 주인 나리의 장례식 행렬을 따라가던 도중 딕은 다리를 삐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스승의 도움 없이도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실험을 끝내기 위해서이다. 그의 할머니는 화를 내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더 이상은 따라갈 수 없다며 대열에서 이탈한다. 그리고 나서 오두막 안에서 그는 닭 옆에 쭈그리고 앉아 그것이 독이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그것을 냄비에 물을 붓고 요리해 먹으려고 한다. 소년이 그러고 있는 동안 그의 주인 나리를 애도하는 세 발의 대포 소리가 들렸다.
4. 작품해설과 주제
작품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것은 그의 적지 않은 동시대인들에게 혐오감을 주었으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한 과학에 대한 열광을 불어 넣어 주었던 전 영국 대법관인 프란시스 베이컨을 애도하는 조포 소리였다.”라는 말로 끝이 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엿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베이컨에 대한 작가의 이중적인 태도이다. 작가는 공직자로서의 베이컨을 아주 나쁘게 묘사하고 있지만, 과학자로서의 베이컨은 아주 유능하고 훌륭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번째는 과학에 대한 딕의 열정이다. 딕은 주인 나리의 장례 대열에서 이탈하여 그를 애도하는 조포 소리를 들으며 실험을 끝내려고 한다. 자신에게 가르침을 준 스승의 죽음보다는 닭 실험이 중요했던 것이다. 실제로 작품에 “주인 나리에 대한 걱정은, 끝내지 못한 실험에 대한 걱정으로 변했고 그는 상자에 눈물을 쏟았다. 위대한 발견의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과학과 실험에 대한 딕의 열정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딕은 앞으로도 자신의 스승처럼 책만 읽는 과학자가 아니라 “두 손으로 행하는 과학자”로서 인류의 복지와 행복의 증진을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고 의심을 해 나갈 것임에 틀림이 없다. 딕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관찰력을 볼 때, 그는 장래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대해서 연구하고 실험하는 "노동하는 자연과학자"로 성장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작품의 참된 주인공이 베이컨이 아니라 호기심 많은 소년 ‘딕’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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