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2) 모렐리의 '자연 법전'

필자 (匹子) 2023. 5. 1. 18:40

(앞에서 계속됩니다.)

 

15. 순번제에 입각한 원로원과 집행 위원회: 모렐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왕권의 횡포와 왕에 빌붙어서 이득을 챙기는 국가 관료들의 사악한 행정을 완전히 근절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다음과 같은 행정을 피력합니다. 최고 원로원은 대가족의 순번의 원칙에 따라 집행 위원회의 임원들을 결정합니다. 집행위원회의 임원들이라고 해서 모든 사안들을 마음대로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직접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다루는 것은 오로지 입법화된 안건에 국한되어 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법으로 확정되지 않은 시안에 관해서는 집행위원회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법제정은 오로지 최고 원로원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족장들은 대체로 종신제로 선출됩니다. 그들은 집행 위원회에 참석하여 어떤 중요한 임무를 담당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공동체에서 필요한 모든 자재들을 관할하며, 공동으로 수확해낸 모든 생산품들과 일상 생활용품들이 어떻게 정확하게 그리고 갈등 없이 분배되는지 감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출현한 유토피아 가운데에서 모렐리의 그것만큼 완강하게 엘리트의 관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서 강력한 순번제의 정책을 도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16. 종신형: 모렐리의 국가 공동체에서는 사형제도는 철폐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부당한 이유 없이 교수형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사람을 죽이거나 사회의 질서를 심각하게 어지럽히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재판을 통하여 종신형을 선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범인은 철창이 달린 동굴에서 갇혀 지내야 합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구금의 형벌을 “살아 있는 무덤 생활”이라고 일컫곤 합니다. 모렐리의 유토피아에서는 일하지 않는 사람, 간음한 사람 등은 법을 어긴 이유로 처벌받습니다. 모렐리는 대부분의 유토피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변호사 직업을 처음부터 철폐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변호사들은 높은 변호사 수임료를 챙기려고 하기 때문에 주로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범행을 고발할 수 있는 사람은 부족의 대표, 가장 조합장으로 국한되어 있으며, 법정은 모든 도시의 원로원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원로원만이 유일하게 처벌을 공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17. 가부장주의의 가족 체제. 그렇지만 결혼 제도는 유연하다: 공동체 내의 국가 조직은 여러 가지 조처를 통해서 그 안전을 보장받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가족 체제가 굳건하게 존속해야 합니다. 이에 대한 조처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가족의 토대가 되는 결혼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모렐리가 (모어, 베이컨, 안드레애 그리고 윈스탠리 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주의에 입각한 가족 구성원을 이상적 공동체의 토대로 설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렐리는 남녀의 나이가 만 15세 내지 16세가 되면, 결혼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규정합니다. 성인이 되는 모든 젊은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결혼해야 하며, 결혼한 부부는 오로지 어떤 확정된 전제 조건들을 충족시킬 경우에 한해서 이혼할 수 있습니다. 결혼의 절차는 1년에 한 번 치러집니다. 매년 초에 성년이 된 남녀들은 제각기 부족 원로원에 모여서 서로 만납니다. 남자는 마음에 드는 처녀를 고르게 되는데, 결혼은 처녀가 동의할 경우에 한해서 성립됩니다. 10년이 지난 다음에 비로소 어떤 특별한 조건 하에서 이혼은 가능합니다. 이혼한 남녀의 경우 다시 파트너를 만나서 재혼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 번의 이혼은 불가능합니다. (Morelly 64: 195). 누군가 간음했을 경우 1년간의 구금형을 감수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만 5세가 될 때까지만 부모의 품에서 자랄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단 5년으로 끝나고 맙니다.

 

18. 오년 동안 지속되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관계: 놀라운 것은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5년 동안 한시적으로 존속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모는 자신의 자식을 5년 동안 집에서 키울 수 있습니다. 5년이 지나면 아이는 교육 공동체로 보내집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소원해집니다. 모렐리의 견해에 의하면 가족의 체제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에 해가 되거나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6세가 된 아이들은 부모를 떠나 남녀가 분리된 반에서 공동으로 교육받게 됩니다. 아이들은 음식과 의복 그리고 잠자리를 제공받는데, 사회의 법과 나이 많은 사람을 공경하고, 우정을 쌓으며, 절대로 거짓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교육받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은 가족보다 사회와 국가를 더욱 배려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고 합니다.

 

19. 여성의 역할과 남녀평등에는 사고가 미치지 못했다: 모렐리의 자연법전에서 여성의 역할에 관해서 자세하게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자연법전」에서 단 한번 여성 장인에 관해서 언급된 바 있지만, 모렐리는 윈스탠리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해방에 관해서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여성들에게는 완전한 시민으로서의 권한이 주어지지 않고, 오로지 50세를 넘어선 가장만이 완전한 시민의 자격을 획득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가부장주의에 의해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연 법칙을 고수하는 규범만이 훌륭한 것으로 간주되고 있을 뿐입니다. 푸아니 그리고 드니 디드로가 남성들의 독재를 완강하게 비판하고 남녀평등의 사상을 도입하려고 깊이 숙고한 데 비하면, 모렐리는 여성의 역할에 관해서 커다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마디로 모렐리로서는 절대 왕정 체제를 타파 그리고 중앙집권적 행정체제를 기방분권으로 대치시키는 작업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 부모와 자식의 관계: 따라서 모렐리의 유토피아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혈연적으로 완전하게 결속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식들이 하나의 공동체에서 교육 받으므로, 부모와의 깊은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부모와 자식이 영영 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카린 보위에는 작품 『칼로카인 Kallocain』에서 모렐리가 시도한 “5년 동안의 부모와 자식의 삶”의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보위에의 경우 아이가 8살이 지나면, 부모는 자식과 영원히 이별해야 합니다. 이 점에서 보이어의 유토피아는 모렐리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보위에는 국가가 개인의 가정 체제마저 완전히 구속한다는 이른바 디스토피아의 비정함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21. 상업의 금지: 이상 사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물품을 구매하거나 판매할 수 없습니다. 모든 생산품은 마치 바자회와 같은 공개적 장소에 진열되어야 합니다. 이 경우 바자회는 물품의 교환소라고 명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매일 특정 물품을 필요로 하고, 어떤 사람은 드물게 그것을 필요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와 공급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물품 교환소에서 사람들은 무엇이 더 필요한지 무엇이 남아도는지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모렐리가 시장, 다시 말해서 물물 교환 내지 돈 거래를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개개인 사이에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거나 화폐 교환이 이루어지면, 사람들은 더 많은 이윤을 추구하게 되며, 이는 자연스럽게 사유 재산 제도의 존속으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국가와 국가 사이의 거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무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재화를 사적으로 축적하지 말아야 합니다. 새로운 사회는 어떠한 경우에도 상업, 다시 말해서 이윤을 남기는 장사행위를 근절하고 있습니다.

 

22. 농업 중심의 경제 구조: 20세에서 25세의 모든 사람들은 반드시 의무적으로 농업에 종사해야 합니다. 만약 특정한 땅이 농업을 영위하기에 적당하지 않아서 도시의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공장을 짓고 수공업을 영위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인접한 도시 사람들과 노동력을 서로 분배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인접한 도시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수공업에 종사할 수 있으며, 반대로 이곳의 사람들은 인접 지역으로 가서 밀농사 혹은 포도 농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요약하건대 모렐리는 노동력의 교환을 통해서 도시와 농촌 사이의 교류를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습니다. 장인이 되려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반드시 25세까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은 오년 간 의무적으로 농업에 종사한 다음에 비로소 수공업자가 되거나 계속하여 농업, 어업, 정원사, 목자, 화부 (火夫), 벽돌공, 목수, 대장장이 등과 같은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들은 4일 혹은 5일 동안 일하고, 그 다음날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23. 학문과 예술: 아이들 가운데에서 특히 학문과 예술에 커다란 재능을 보일 경우가 있습니다. 국가는 재능을 지닌 아이들에게 학문과 예술을 갈고 닦을 기회를 제공합니다. 특정한 학문과 예술은 국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에게 반드시 이득이 되고, 즐거움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중요시 되는 학문은 무엇보다도 자연과학 내지 새로운 기술이며, 신학과 형이상학의 비중은 거의 약화되어 있습니다. 학문과 예술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들은 20세에서 25세 사이의 의무적인 농사일을 면제 받게 되는데, 이 시기에 자신이 스스로 하고 싶은 학문과 예술에 몰두할 수 있습니다.

 

24. 의복과 장신구: 20세에서 30세까지의 모든 젊은이는 반드시 유니폼을 착용해야 합니다. 모렐리는 옷의 색깔을 분명히 규정하지는 않지만, 유니폼의 색깔은 그들의 직업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엄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모렐리 공동체에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들의 사치와 과소비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모렐리는 사람들이 검소하지만 청결한 옷을 입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30세 이상이 된 사람들은 노동 그리고 의식주에 있어서 자신의 취향을 약간 드러낼 수 있습니다. 30세 이성이 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물품을 어느 정도의 범위에서 예외적으로 더 얻을 수 있습니다.

 

25. 물물 교환을 위한 바자회: 모렐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가령 채소 내지 과일을 필요로 하는 자는 타인이 재배하는 채소 내지 과실 밭에 가서 자신이 얻으려는 과일 내지 채소만큼의 노동을 행하면 된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일이 실제 현실에서 제대로 행해지기 어렵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시장과 무역이 필수불가결한 까닭은 국가의 체제가 엄청난 범위로 확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바나나를 먹고 싶은 프랑스인이 무턱대고 바나나 농장에 가서 하루치의 농사일을 거들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나나 농장은 프랑스의 따뜻한 지역에서도 자라지 않고 아프리카에서 자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물물교환과 시장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 국가는 그 실천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기 마련입니다. 물론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매매는 처음부터 자본주의의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화의 유통이 –복잡하게 전문화되는 근대 내지 현대 사회를 염두에 둘 때- 무조건 배격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항이 모렐리의 유토피아 뿐 아니라, 피히테의 「폐쇄된 상업 국가 Der geschlossene Handelsstaat」(1800)에 나타나는 제도상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26. 자연법전의 문제점: 모렐리를 자연법전을 절대적 당위성이 강조된, 결코 수정될 수 없는 철칙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자연법전은 캄파넬라의 태양의 나라에서 활용되는 최고 권력자의 법과 동일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문제는 모렐리의 자연법전의 경우 인민에 의해서 법이 만들어질 수 없다는 사항입니다. 왜냐하면 자연법전의 제반 규정들은 자연의 절대적으로 인정되는 법칙에 의거한 것이므로 사회의 가변적인 정황에 따라서 인위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법전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려고 시도한다면, 그자는 엄격하게 처벌받아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자유주의에 바탕을 두어 살아가는 개개인들은 자연법전의 규정으로 인하여 그들의 생활의 규제 내지 간섭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바로 이러한 까닭에 자연의 법전은 자신의 고유한 전체주의적 특성으로 인하여 때로는 개개인의 인권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막강한 기준으로 악용될 소지가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27. 사회 변화를 위한 능동적 특성: 지금까지 우리는 「바실리아데」 그리고 「자연 법전」을 살펴보았습니다. 전자의 작품이 서사시 속에 문학적으로 투영된 이상적인 공동체의 상이라면, 후자는 자연의 법칙을 중시하면서 바람직한 인간 삶과 사회를 규정하는 법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전자가 역사와는 무관한 바람직한 평등 공동체의 상이라면, 후자는 바람직한 공동체의 상을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규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로써 모렐리는 존재와 당위의 이원론적 원칙을 극복하고, 인류의 발전을 생물학적 삶의 리듬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찬란한 황금의 시대에 도래했던 행복하고 평화로운 평등의 삶이 자연법전을 통해서 이룩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로써 유토피아의 구상은 과거의 정태적 체제의 특성을 떠나,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능동적 특성을 견지하게 됩니다.

 

28. 자연법과 모렐리: 18세기의 가장 중요한 국가 유토피아로 이해됩니다. 물론 모렐리가 국가 유토피아에 관한 플라톤, 존 로크 그리고 몽테스키외의 고유한 입장을 차용하여 이를 모방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은 다음의 관점에서 과히 독창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지금까지의 국가 유토피아는 오로지 국가의 정치적 토대만 중시한 데 비해, 모렐리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 국가에 있어서 경제적 요인들을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파악한다는 사실입니다. 

 

자연법 정의에 근거한 모렐리의 유토피아는 “지금, 여기”의 구체적 상황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항이 바로 경제라는 사실을 분명히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모렐리는 초기 자본주의의 유토피아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렐리의 유토피아는 상행위와 시장 경제 구도를 처음부터 배격하기 때문입니다. 모렐리의 초기 공산주의의 복지 국가에 관한 이론은 나중에 F. N. 바뵈프 (Babeuf, 1760 - 1797)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렐리의 사상은 한편으로는 국가 없는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연어주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생시몽, 에티엔 카베 그리고 루이 블랑 등의 초기 사회주의 사상의 싹으로 작용했습니다.

 

고문헌

 

- Boye, Karin: Kallocain, Ein klassischer Abenteuerroman, München 1982.

- Fichte, Johann Gottlieb: Sämmtliche Werke. Band 3, Berlin 1845/1846.

- Coe, Richard Nelson: Morelly. Ein Rationalist auf dem Wege zum Sozialismus, Berlin/DDR, S. 349-358.

- Jens, Walter (hrsg.): Kindlers Literaturlexikon, München 2001.

- Morelly, Etienne Gabriel: Naufrage des Isles flottante, ou Basilade du célébre Pilpai, 2 Bde. 1753.

- Morelly, Etienne Gabriel: Gesetzbuch der natürlichen Gesellschaft oder der wahre Geist ihrer Gesetz zu jeder Zeiz, Berlin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