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근대불문헌

서로박: (2) 퐁트넬의 '아자앵 이야기'

필자 (匹子) 2023. 5. 2. 10:20

(앞에서 계속됩니다.)

 

6. 퐁트넬의 시대 비판: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퐁트넬은 엄격한 종교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절대주의 왕정 체제의 독재 치하에서 살았습니다. 비록 그의 글들이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무기로 활용되었지만, 퐁트넬은 힘없는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자가 아자앵의 이야기의 집필을 통해서 무신론자들의 공화국을 애타게 갈구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생전에 발표될 수 없었습니다. 국가는 교회 세력과 결탁하여 종교적 정신적으로 지식인을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1962년에 당국은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조직적인 압력을 가했으며, 1685년에는 종교적 관용을 기치로 한 낭트 칙령이 파기되었습니다. 이제 국가는 더 이상 프로테스탄트를 신봉하는 학자들을 지원하지 않고, 강압적으로 억압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아자앵의 이야기가 집필된 것입니다. 퐁트넬의 시대비판은 바로 프랑스 절대주의 왕권의 정치적 폭압 그리고 종교적 몰이해로 인한 탄압이 횡행하는 현실과의 관련성 속에서 발견됩니다.

 

7. 작품의 틀: 퐁트넬의 여행기는 도합 12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품은 베라스 Vairasse 그리고 푸아니 Foigny의 남쪽 나라에 관한 문헌에 착안하여 집필되었는데, 주인공, “는 될베트라는 이름을 지닌 젊은이입니다. 주인공은 탐험을 위해서 북태평양의 대양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런데 탐험대가 북동 지역을 항해하다가, 지금까지 한 번도 발견되지 않은, 100마일 가량 뻗어 있는 아름다운 아자오의 해안을 바라보게 됩니다. 다음의 장에서 독자는 아름다운 섬을 대하게 되는데, 아자오 섬의 크기는 대체로 시칠리아 정도 됩니다.

 

뒤이어 작품은 이곳 사람들의 종교관, 교육 시스템, 정치 구도, 경제적 측면 그리고 관직의 단계 등을 차례로 서술합니다. 뒤이어 서술되는 것은 전쟁과 평화에 관한 문제, 자연 자원의 활용에 관한 문제 그리고 노예 제도 등입니다. 주인공은 이곳 원주민들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사항, 아이들의 탄생 그리고 죽음의 예식 등에 관해서 차례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두 개의 장에서 주인공은 아자오 사람들과 깊은 토론 끝에 무신론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뒤이어 는 아자오 사람들에게 유럽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며, 이를 허락해 달라고 청원합니다. 주인공이 유럽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이유는 도서 출판의 기술, 도자기 제조기술 그리고 유실수를 개량하는 방법을 배운 다음에 다시 아자오로 돌아와서 이곳에서 살기 위함 때문이었습니다.

 

8. 퐁트넬의 작품의 수용과 혹평: 이미 언급했듯이 작품은 1680년에 집필되었으나, 퐁트넬이 죽은 다음인 1768년에 비로소 발표되었습니다. 만약 원고가 1680년에 발표되었더라면, 작품이 암시하는 바는 독자들에게 매우 생생하게 다가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1768년의 시점의 프랑스 사람들은 종교의 갈등에 대해 이미 지나간 이슈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의 왕정 체제는 계속 온존하고 있었지만, 절대 왕정의 폭력과 이와 관련된 신랄한 비판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다지 커다란 자극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삼부제라는 사회 계층의 경제적 차이 및 이로 인한 갈등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퐁트넬이 작품에 다룬 바 있는 노예 제도라든가 여성 차별에 관한 전근대적인 시각은 독자들을 매료시키지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퐁트넬의 주제 의식은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간주될 정도로 프랑스 혁명 이전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혁명 정신을 분명하게 건드리지는 못했습니다. 특히 18세기 중엽의 사람들은 더 이상 새로운 땅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18세기 중엽의 시점에서 환영을 받았던 사고는 모렐리의 자연법전 내지 메르시에의 시간 유토피아에 담겨 있는 완전성에 대한 시민들의 열정,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퐁트넬의 작품은 좋은 평을 얻지 못했습니다. 아자앵의 이야기속에는 어떠한 긍정적 종교가 담겨 있지 않으며, 작품의 구성에 있어서 빈약하기 이를 데 없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혹자는 퐁트넬의 작품이 베라스의 세바랑브 유토피아의 모작이며, 사상적 날카로움이라고는 조금도 발견되지 않는다고 혹평하기도 하였습니다.

 

9. 절대 왕정의 폭정과 패륜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 퐁트넬은 루이 14세의 절대 왕정 체제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으로서 유토피아의 이상 국가를 설계하였습니다. 그런데 23세 나이의 젊은 작가는 경제적으로 그리고 사회정치적으로 이른바 태양의 왕이라고 불리던 루이 14세의 절대 국가와는 반대되는 가능성을 구상했을 뿐 아니라, 실제 현실에 나타난 속물들을 신랄하게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시민들은 대체로 부도덕하게 생활하며, 권력 그리고 자신의 이득만을 추구하면서 이기주의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아자앵의 이야기에 묘사된 이상적 공화국에서는 어떤 첩자가 등장하는데, 그는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발생하는 온갖 패륜 행위에 관해서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첩자는 수많은 전쟁과 혁명적 사건 그리고 유럽과 아시아의 부도덕한 내용들을 정확하게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외교 사절단은 어떠한 경우에도 제복을 입지 않아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제복을 입고 여행을 떠나, 술집 여자들과 놀아나게 되면, 이는 일반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습니다.

 

 

10.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 따라서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 역시 두 가지 사항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폭정이며, 다른 하나는 상류층 사람들의 방탕과 방종의 삶을 가리킵니다. 1672년에 네덜란드에서는 국가 평의회의 수상 장 드 위트가 살해당하고, 오라니엔 공작이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하였습니다. 뒤이어 공작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면서 모든 정당을 해체하고 자신의 유일 당만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들은 현대적 표현을 사용하자면 일종의 쿠데타의 정책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요약하건대 주인공 될베트는 자신의 고향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정치적 학살에 치를 떨었습니다. 동시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증오와 탐욕이 끓어오르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범선을 타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고향으로 돌아오면, 고향의 정치적 사항은 나아질 것이라고 희망하였던 것입니다.

 

11. 상호부조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무신론자들의 공화국: 실제로 퐁트넬은 유럽의 사회를 비참하고 혼돈스러운 현실로 규정하고, 낯선 미지의 섬을 갈등이 없는 이상 국가라고 생각합니다. 아자오 사람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마치 형제자매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복수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들은 서로 협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이웃이 어려울 때 도와주고, 타인에게 봉사하는 데 대해 매우 기뻐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아자오 주민들은 상호부조 협력의 정신을 고수하면서 살아갑니다.

 

토머스 모어와 베라스는 함께 모여서 살아가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살아가려면, 균등하게 형법을 적용하고 도덕적 규범과 가치를 어긴 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퐁트넬은 불과 23의 나이인데도 이러한 처벌과 보복의 정당성을 뛰어넘는 놀라운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즉 퐁트넬의 유토피아에서는 다음과 같은 놀라운 사항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신에 대한 깊은 신앙심은 평화로운 공동의 삶에 대한 필연적인 도덕적 전제조건이 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퐁트넬은 이렇게 주장하면서, 유럽에 거주하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극악무도한 패륜과 폭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무신론자들의 어떤 공화국이 어쩌면 기독교 윤리에 근거한 유럽 국가들보다도 훨씬 이성적이며, 도덕적인 법 규정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