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황금의 시대와 유토피아

필자 (匹子) 2023. 3. 20. 16:02

1. 황금의 시대: 친애하는 L, 맨 처음 우리는 “신화에 반영된 유토피아의 상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으며, 유토피아 연구에서 어떠한 척도로 규정될 수 있는가?”하는 물음과 봉착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신화와 유토피아 사이의 관련성에 관한 사항입니다. 고대 사람들도 더 나은 세상에 관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동양의 대동 (大同)에 관한 사고 그리고 무릉도원의 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서양의 경우 황금의 시대, 아틀란티스 그리고 성서의 에덴동산 등에 관한 신화가 범례로 채택될 수 있습니다.

 

헤시오도스는 이미 기원전 700년경에 황금의 시대에 관한 신화를 언급했습니다. 이에 관한 이야기는 가장 오래된 상으로서 고대의 문학 작품에서 자주 언급되었습니다. 황금의 시대에 관한 이야기는 기원전 3세기 아라토스 Aratus에게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플라톤 역시 황금의 시대에 관한 다양한 버전을 알고 있었으며, 로마 시대에 이르러 오비디우스 역시 걱정 없는 삶을 가능하게 했던 태고 시절의 찬란한 삶을 자신의 『변신 이야기 Metamophoses』에 언급한 바 있습니다. 찬란한 삶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성서에 언급되는 에덴동산 이야기일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아무런 노력과 수고 없이 얼마든지 지상의 열매를 따먹고 살아갑니다.

 

2.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차이점 (1): 여기서 우리는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차이점에 관해서 3가지 사항으로 언급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 사항은 신화가 지니는 숙명론적 특징 그리고 유토피아가 지니고 있는 변화 가능성의 특징을 가리킵니다. 이를테면 토마스 모어 이후에 묘사된 사회 유토피아는 황금의 시대의 상 내지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만끽하는 천국의 상을 도입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를 추적하는 것도 아닙니다. 헤시오도스는 인간의 몰락에 관한 핵심적 모티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황금의 시대 다음으로, 은의 시대 그리고 철의 시대가 이어지며, 네 번째, 다섯 번째의 시대가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지금은 인류는 철의 시대를 지나치고 있다. 인간은 낮 동안에는 결코 힘든 노동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Hesiod: 82)

 

헤시오도스는 자신의 주어진 현실을 고려하면서 모든 것을 기록했으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신화적 역사적 유형의 파멸 이론입니다. 그밖에 신화들은 학문적 논의로 명징하게 밝혀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신들의 이야기들로서 합리적 논의를 거쳐서 진리로 확정될 수 없습니다. 헤시오도스의 이야기는 세계의 탄생, 신들의 행위와 업적 그리고 자연과의 상호 관련성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신화는 세계의 근원을 우화적으로 서술하며, 세계가 신의 의지의 소산이라고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신화적 관점에서 고찰하면 세계는 신의 의지에 의해 탄생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와 인간과 관련된 모든 것은 숙명적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서 사회 유토피아는 세계를 사회정치적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설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인간에 의해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입니다. 이 점이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첫 번째 차이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차이점 (2): 신화와 유토피아 사이의 두 번째 차이점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잇습니다. 즉 신화는 대체로 과거 지향적이고 수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지만, 유토피아는 미래지향적이고 능동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황금의 시대에 관한 신화를 유토피아의 사고의 이전 형태라고 규정할 수 있습니다. 황금의 시대 혹은 에덴동산에 관한 신화는 인간의 상상에 의해서 출현한 상이지만, 주어진 시대에 대한 반대급부로 떠올린 상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화 속에도 주어진 시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고대인들이 자신의 이상을 과거로, 다시 말해서 태고 시절로 이전시켜놓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원초적 행복은 노동과 강제노동이 전혀 필요 없는 태초의 시점으로 되돌려지게 된 것입니다. 찬란한 삶은 무조건 과거의 시간으로 이전되고, 사람들은 현실도피적인 자세를 취하면서, 태초의 시대를 막연하게 동경해 왔습니다. 이와는 달리 유토피아는 찬란한 삶을 수동적으로 추구하는 태도와 전적으로 다릅니다.

 

4. 유토피아는 미래로 향하는 능동적 시각의 상을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과거 지향적인 시각 대신에, 미래의 찬란한 삶을 위하여 앞으로 향하는 시각을 견지합니다. 유토피아라는 섬의 사회는 16세기 영국의 주어진 현실에 대한 반대급부의 상으로서, 합리적 질서의 상으로 축조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인간은 비록 제한된 능력이지만, 이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자신의 권리를 되찾으려고 시도합니다. 그러한 한 미래로 행하는 유토피아의 시각은 과거로 향하는 신화적 시각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에덴동산과 같은 천국의 삶이라든가 황금의 시대에 관한 과거 지향적으로 그리고 수동적으로 동경하는 자세는 유토피아에서 나타나는 미래 지향적이고 능동적인 자세와는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예외적 사항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즉 찬란한 태초를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려는 계몽주의의 유토피아라든가 황금의 시대를 바탕으로 미래의 구원을 갈구하는 천년왕국의 기대감은 신화적 내용을 과거 지향적이고 수동적으로 고찰하려는 퇴행적 태도 Regression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것은 목표로서의 선취의 상을 황금의 시대로 설정하지만, 과정 내지 수단으로서 미래의 더 나음 삶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천년왕국의 기대감은 신화적으로 착색되어 있으나, 의향에 있어서는 유토피아의 성분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5. 유토피아와 신화 사이의 차이점 (3): 셋째로 유토피아는 문헌을 연구하는 사람은 문헌의 발표 시점을 중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유토피아의 상에서는 저자가 처한 현실이 간접적으로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유토피아의 역사는 본질적으로 주어진 사회의 결핍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작가가 처해 있는 처참한 현실상을 역으로 투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신화의 경우 사람들은 특정 신화가 언제 어디서 출현했는지 확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신화를 바탕으로 신화가 탄생한 현실의 구체적 문제점을 도출해내기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신화의 경우 저자가 불분명하고, 신화의 출현의 시점과 그 배경을 분명하게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예외적 사항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신화의 연구가 아니라, 신화 수용의 역사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예외사항입니다. 우리는 신화 수용의 역사 연구에서 수용 시점의 시대정신과 관련하여 신화의 수용에서 나타나는 차이점을 통시적으로 비교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특정한 시대에 왜 하필이면 어떤 특정 신화가 활발하게 수용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검토하면, 우리는 신화가 특정한 시대에 끼친 영향과 상호작용을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Jørgensen: 301)

 

바로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플루타르코스 Plutarch의 『리쿠르고스의 삶』을 유토피아 연구의 문헌으로 규정할 수 없습니다. 비록 작품은 스파르타의 찬란한 국가 체제를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우리는 리쿠르고스가 실존인물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플루타르코스가 과연 어떠한 구체적 현실적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리쿠르고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습니다. 『리쿠르고스의 삶』이 신화적 이야기로 분류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