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토피아

서로박: 빌케의 아토피아 사회

필자 (匹子) 2023. 4. 8. 10:39

헬무트 빌케 (1945 - )는 니클라스 루만의 시스템 이론에 입각하여 자신의 아토피아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21세기에 이르러 현대 사회는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고 있다. 가령 국가의 영토 구분은 오늘날 급진적으로 해체되어 있다.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와 국가 사이에 제한이 없으며, 사회의 변형이라든가 이행의 과정은 디지털화 되어가고 있다. 고전적 유토피아의 전통은 거의 파괴되고, 그 대신에 디지털 사회 구조가 정착되었다. 이로써 출현하는 것은 아토피아라고 한다. “아토피아”는 유토피아의 뜻과는 달리 정치적 영역으로서의 장소의 중요성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아토피아는 정치와 복지 국가에 대한 믿음에 대항하는 사고로 출현한 셈이다.

 

변화된 사회는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빌케는 하나의 장점으로 다음의 예를 들고 있다. 디지털 산업은 여러 영역에서의 운송의 경비를 없앨 수 있게 해주었으며, 국가와 국가 사이의 경쟁 모델은 더 이상 효력을 지니지 못하게 되었다. 전통적 민주주의는 대중의 복지를 담지하는 우선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자아 중심주의의 관점 역시 “유비쿼터스 ubiquitous”의 시각에 의해서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체에서 근거하는 일방적인 관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경제적 차원에서 국경 없는 교역이 활발히 진행되므로, 민족 국가의 개념은 더 이상 효력을 끼칠 수 없다는 게 빌케의 지론이다. 그리하여 보편화된 수많은 장소는 “없는 공간”으로서의 거대한 유토피아를 대치하였다고 한다.

 

헬무트 빌케 교수

 

변화된 사회에서는 단점도 존재한다. 빌케의 표현에 의하면 변화된 세계로서의 “지엽적인 세계 시스템” 속에는 어떤 새로운 소외 현상의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현재의 글로벌화한 세계 전체의 시스템이 역으로 자신을 비판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엽적인 세계 시스템은 빌케에 의하면 자신의 반응 능력을 압살시키고, 전체적 관련성만을 하나의 유희 내지는 게임으로 제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빌케는 장 파울의 시적 표현인 “천사의 기계”를 언급한다. 인간은 빌케에 의하면 천사에 의해 구상된 단순한 탈것에 불과한 존재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디지털화된 세계 사회 속에서 단순한 필요에 의해서 지루하지만 마땅히 해야 하는 일에 골몰하고 살아간다. 이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전-지구적으로 주어진 지식의 간접자본의 시스템이다. 빌케는 이를 “지엽적인 세계 시스템 laterale Weltsystem”이라고 칭하고 있다. 그래도 빌케는 시스템의 자기비판의 기능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유연한 전-지구적 네트워크로서의 공동적 지성의 소통이 가능한 한 아토피아 사회 내에서의 그러한 문제점은 해결될 것이라고 한다.

 

빌케는 세계 시스템을 방해하는 영역으로서 사회적 하부 시스템을 거론하고 있다. 가령 재정 시스템, 매스컴, 법 그리고 지식 등의 사회적 하부 시스템이 그러한 범례들이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거대한 사회 구조의 하부에 위치한 것들이기 때문에 아토피아 전제를 관망하지 못한다. 이것들은 빌케의 표현에 의하면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와 다를 바 없다. 이를 차단시키려면 인간은 비판적 시각을 지닌 채, 자기 자신을 전-지구적 조직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하부 시스템들은 눈먼 키클롭스처럼 그 자체 위험하지만, 극복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엽적인 세계 국가 시스템은 아토피아의 사회적 요건에 해당하는 어떤 합리성을 찾아나갈 것이다. 디지털화된 현대 사회의 이러한 시스템은 다섯 가지의 특성으로 요약될 수 있다고 한다. 자율성, 효율성, 탈-경계, 세계적 시각 그리고 탈-이데올로기가 바로 그 다섯 가지 사항이다. 그러므로 세계 시민으로서의 현대인들은 아토피아의 요청을 받아들이고, 전지구적 장소 없음 속에서 하나의 고유한 영역을 창조해나가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한 좋은 예로서 우리는 P. M.의 『볼로의 볼로』라는 비-국가주의 공동체를 하나의 범례로 제시할 수 있다.

 

빌케는 유토피아를 국가 중심으로 주도하는 사회주의의 지배 체제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테면 유토피아는 히틀러, 혹은 정통 사회주의자들의 찬란한 꿈과 유사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런데 플라톤과 토머스 모어 이후의 유토피아를 고찰하면, 우리는 히틀러와 스탈린의 거짓 유토피아가 유토피아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히틀러 스스로도 반유토피아주의자라는 것을 명백하게 선언한 바 있다. 빌케는 유토피아의 전통을 시장 제도와 연결시키고 이를 해명하고 있다. 시장은 재화를 소유한 개인들이 자신의 재물을 내세워 최대한의 이익을 도출해내려는 상호 교환 시스템이다.

 

빌케는 이러한 교환 시스템 내지 글로벌 세계의 경제적 구도 등을 유토피아와 직결시키려고 한다, 물론 빌케는 세계의 사회는 더 이상 모어의 국가 중심의 섬으로 설계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이제 유럽과 아메리카 중심주의의 사고는 일방적이라고 진단한다. 이러한 주장은 그 자체 타당하다. 빌케는 국경 없는 세계 전체의 특성으로서 아토피아를 내세우고 있다. 그렇지만 “아토피아”는 “지배 없는 세계 전체”의 특성을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경제적 차원에서 “사라진 국경”만을 고려할 게 아니라, 정치적 의미에서 지배 없는 세계의 가능성을 탐색해야 할지 모른다.

 

참고 문헌

- Saage, Richard (2008): Utopieforschung, Bd. II, An der Schwelle des 21. Jahrhunderts, Berlin.

- Willke, Helmut (2001): Atopia. Studien zu atopischen Gesellschaft, Frankfurt a. M..

- Willke, Helmut (2002): Dystopia. Studien zur Krisis des Wissens der modernen Gesellschaft, Frankfurt a.M..

- Willke, Helmut (2003): Heterotopia. Studien zur Krise der Ordnung moderner Gesellschaften, Frankfurt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