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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박: 통독 이후의 장벽 붕괴의 문학에 관하여

필자 (匹子) 2016. 6. 24. 10:51

친애하는 J, 독일이 통일이 된 지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의 시기는 한 세대를 가리킵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해인 1989년에 태어난 사람은 이제 20세가 되었으니까요. (한반도는 아직 통일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여전히 분단 상태입니다. 그동안 나 자신 무얼 하며 살았는지 스스로 반성해 봅니다.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수수방관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렇지만 깊이 자학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날 지식인의 영향력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으니까요. 일반 사람들은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치는 소년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해 왔습니다. 그러니 때로는 차라리 입을 다물고 TV만 시청하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ㅠㅠ)

 

 

 

 

 

2009년에 독일에서는 『장벽이 붕괴되던 그날 밤 Die Nacht, in der die Mauer fiel』이라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책을 편찬한 사람은 레나투스 테케르트 Renatus Deckert입니다. 책을 읽으면, 우리는 다음의 사항을 예리하게 간파하게 됩니다. 즉 서독 작가들은 베를린 장벽이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질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를테면 한스 울리히 트라이헬 Hans Ulrich Treichel은 1989년 11월 9일 치과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의 달력에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강의할 고트프리트 벤 세미나에 관한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만약 장벽이 무너지지 않았더라면, 그가 자신의 메모를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하지 못했으리라고 합니다.

 

마르셀 바이어 Marcel Beyer는 바로 이 날에 난생 처음으로 자동차 한 대를 구입했다고 합니다. 울리케 드레스너 Ulrike Draesner는 1989년 11월 9일에 뮌헨대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하고 있었습니다. 집필에 몰두하다가 그미는 동독의 트라반트 자동차가 뮌헨에 도착한 것을 목격하고 비로소 베를린 장벽 붕괴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고 합니다. 카차 랑게-뮐러 Katja Lange-Müller는 1984년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바 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날 밤 작품 낭독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보쿰 Bochum의 어느 호텔에 머물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듯 대부분의 서독 작가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직접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비하면 동독의 젊은 작가들의 사정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국가인민군 die natinale Volksarmee”에서 제대한 직후였습니다. 가령 요헨 슈미트 Jochen Schmitt, 우베 텔캄프 Uwe Tellkamp, 안드레 쿠비첵 André Kubiczek 등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무조건 처음부터 통일을 찬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벽의 붕괴를 목격하던 그들은 오히려 가슴이 답답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혁명을 위한 열정의 시기는 장벽 붕괴로 종언을 고하였으며, 지금까지 자신들이 역사적 변화의 주체로서 아무 것도 행한 게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이 역사의 변화 과정에 관해서 숙고하기 시작했을 때, 순식간에 모든 것이 변화되고, 전환기의 사건은 흔적 없이 역사의 장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장벽 붕괴에 관한 이야기는 현재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의 귀에는 마치 동화처럼 울려 퍼집니다. 자고로 구체적 사건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역사의 장으로 이어져 결국에는 자신과 무관한 하나의 신비적이고 추상적인 사항으로 수용될 뿐이지요.

 

 

 

 

 

친애하는 J, 세상은 얼마나 기이하고도 놀라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는가요? 과거에 장벽은 끔찍한 장애물이었는데, 이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과거에 동독인들은 장벽을 뛰어넘다가 동독의 인민군들의 발포로 인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지만 장벽이 붕괴되자 사람들은 그 위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사람들의 자유를 그토록 옥죄던 장벽들이 불과 하루아침에 콘크리트 쓰레기로 변신하게 된 것입니다. 정치학자, 헤어프리트 뮌클러 Herfried Münkler는 그의 책 『독일인과 그들의 신화 Die Deutschen und ihre Mythen』로써 라이프치히 도서전에서 출판 문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는데,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개탄하였습니다. 즉 서독은 1949년 건립 이후에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내세울 수 있는 신화를 소유하지 않았는데, 장벽 붕괴가 새롭게 거듭난 통일된 독일의 빈 공간을 메꿀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역사 서술의 장본인으로서의 문학은 이른바 신화를 창조하는 일에 하나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독일 사람들은 소설의 영역에서 장벽 붕괴의 내용을 담은 훌륭한 장편 소설을 기다려 왔습니다. 물론 이 와중에 좋은 소설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아네트 그뢰쉬너 Annett Gröschner의 『모스크바의 얼음 Moskauer Eis』, 크리스토프 하인 Christoph Hein의 『점거 Landnahme』, 쿠르트 드라베르트 Kurt Drawert의 『거울 나라 Spiegelland』, 옌스 슈파르슈 Jens Sparschuh의 『방의 분수 Zimmerspringbrunnen』등이 발표되었는데, 이것들은 전환기의 사항을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동독의 몰락과 통일에 관하여 문학적으로 서술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때 이르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몇 년 전부터 장벽 붕괴 그리고 그 결과 등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간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테면 율리아 쇼흐 Julia Schoch의 장편 소설 『여름의 속력으로 Mit der Geschwindigkeit des Sommers』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메클렌부르크의 소도시인데, 이곳에서는 동독 인민군대가 집결되었던 지역입니다. 서술자의 누이동생은 언젠가 그곳 지역의 군인 한 사람을 뜨겁게 사랑했는데, 나중에 뉴욕에서 자살로 삶을 마감합니다. 서술자는 누이동생의 흔적을 찾습니다. 누이동생은 과거 구동독에서 비교적 평온하게 생활했는데, 자본주의 자유의 대가로 강요하는 경쟁 그리고 성취에 대한 요구사항에 커다란 갈등을 느끼게 되고, 이는 결국 자살로 이어진 것입니다. 이는 브리기테 부어마이스터 Brigitte Burmeister의 『노르마라는 이름으로』의 주제와 일맥상통합니다.

  

이번에는 60년대에 태어난 작가의 작품을 다루어부기로 합시다. 토마스 브루시히 Thomas Brussig는 1995년에 『우리 같은 영웅들 Helden wie wir』을 발표하여 세인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는 동독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온갖 아이러니를 동원하여 조소를 퍼붓습니다. 그는 장벽 붕괴를 하나의 그로테스크한 사건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최근에 브루시히는 소설 『환하게 비치는 것처럼 Wie es leuchtet』에서 통일된 독일의 혼란스러운 출발 그리고 그 경과에 관하여 신랄한 어조로 묘사한 바 있습니다. 이로써 작가는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부유로운 삶과 물신숭배의 태도는 얼마나 커다란 심리적 허망함을 안겨주는가? 하고 말입니다.

 

2009년에 안겔리카 클뤼센도르프 Angelika Klüssendorf는 소설작품 『아마추어 Amateure』를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미는 브루시히처럼 현란하지는 않지만, 장벽 붕괴를 체험한 사람들의 내면의 심리를 정확하고도 에로틱하게 서술하였습니다. 클뤼센도르프는 1958년에 서독에서 태어났는데, 1961년에 동독으로 와서 동베를린에서 성장하였고, 1985년에 다시금 서독으로 이주한 작가입니다. 소설의 내용은 1989년 가을부터 이듬해 10월 3일 기이한 통일 축제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소설은 많은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로 치과의사, TV 제작자, 최신형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속물들이 등장합니다. 이들 중 한 사람은 장벽 붕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가 서쪽 편에서 장벽 위로 올라갔을 때, 반대편에서 올라온 어느 여성과 마주칩니다. 이때 그들은 키스를 나누면서, 거의 즉흥적으로 연락처를 교환합니다. 뒤이어 그들은 서로 사랑하게 되는데, 이들의 연애 이야기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는 낯설고 기이하게 비칩니다. 작가는 장벽 붕괴의 사건을 신화의 새로운 모티프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가장 광범하고도 의미심장한 전환기의 소설로서 우리는 잉고 슐체 Ingo Schulze의 『새로운 생활들 Neue Leben』을 들 수 있습니다. 동독의 몰락을 멀리서 냉정하게 고찰하기 위해서는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야 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엔리코 튀르머라는 인물입니다. 그는 1989년을 자신의 삶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전환기라고 기술합니다. 엔리코는 동독에서 연출가로 일하면서 살았습니다. 통일된 독일에서 그는 광고 신문의 편집자로 살아갑니다. 과거에는 주로 언어를 다루던 사람이 이제는 숫자와 경제 문제를 주로 다루며 생활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엔리코가 처음부터 이러한 변화된 삶을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

 

소설 속에는 1989년 가을이 기이할 정도로 가장 지루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독자들이 이에 관해서 너무 많이 접한 나머지 식상해 할까봐, 그게 아니라면 잉고 슐체와 같은 탁월한 소설가조차도 독자에게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전할 수 없기 때문일까요? 라이프치히 데모라든가, 원탁회의 등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진부한 소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잉고 슐체는 2008년에 『아담과 에벌린 Adam und Evelyn』을 발표하였습니다. 여기서 작가는 통독 후에 만난 두 남녀가 서독으로 도피하는 과정을 우아하고도 즉흥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묘사는 마치 실낙원에 대한 패러디처럼 비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거에 낙원은 과연 어디에 있었습니까? 찬란한 천국은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습니까, 아니면 동독을 탈출하는 사람들이 애타게 갈망하던 어떤 더 나은, 다른 나라입니까? 슐체는 후자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인하여 더 나은 다른 나라를 발견할 가능성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서방세계로 인하여 천국을 찾을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통일과 관련된 작품으로서 우리는 우베 텔캄프 Uwe Tellkamp의 『탑 Der Turm』을 생략할 수 없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08년에 독일 출판 상을 받았습니다. 작가는 80년대 말의 동독의 현실을 어느 교양 시민의 시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드레스덴의 교외입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현악사중주 그리고 고전 문학 등을 대하면서 동독이 강요하는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쓰고 있었습니다. 작가는 사회 전체의 피곤함과 도덕적 해이 그리고 체제순응을 강요하는 국가의 책략과 이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태도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결국 소설은 1989년 가을로 귀결됩니다. 몰락을 알리는 종소리가 둔중하게 울리지만, 이는 어떤 암시를 전해주지는 못합니다. 말하자면 작가는 더 이상 장벽 붕괴를 생생히 묘사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작가는 일상 사람들에게 고뇌를 안겨주던 시기 이후에 관해서 더 이상 서술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모릅니다. 장벽 붕괴에 관한 이야기는 독일인들에게 아무런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장벽 붕괴의 소재는 두 개의 다른 시기를 연결하는 고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