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최신독문헌

전환기 소설 (1)

필자 (匹子) 2017. 9. 15. 09:49

 

- Katrin Aehnlich: Alle sterben, auch die Löffelstöre, 2007

카트린 엔리히 (1957 - )의 데뷔 작품 『모두가 주걱 철갑상어처럼 죽는다』는 2007년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구동독에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남녀의 사랑을 서술하고 있다. 주인공 스칼렛은 동물원에서 일하는데, 친구 파울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이틀간의 특별 휴가를 청원한다. 그미는 재미있지만 우울한 음색으로 친구 파울에 관해서 성찰한다. 특히 전환기 이후에 자신의 과거를 더듬는데, 기억 속에는 언제나 파울이 있다. 스칼렛은 마음속에 더 이상 한 나라를 소유하지 못한다. 구동독의 현실은 오랫동안 마치 극작품의 공연과 같이 투영된다. 파울의 영혼은 손상되어 있다. 그는 유치원 그리고 학교에서 수년간 스칼렛과 함께 지낸 사내아이였는데, 어느 날 암에 걸려 사망한다. 스칼렛은 일순간 다음의 사실을 깨닫는다. 즉 일상 삶에 있어서의 실패는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 시작되고, 나중에는 천박할 정도로 자명하게 인지된다는 사실 말이다.

 

 

 

 

- Katrin Askan: Aus dem Schneider, 2000.

유디트는 영원히 떠나기 전에 거대한 지하 난로 가장자리에 석탄을 가득 채운다. 젊은 여자에게 넓고 황량한 집은 결코 안식처가 되지 못하지만, 서독으로의 도주가 실패로 돌아갈 경우, 돌아와야 할 집은 따뜻해야 할 것이다. 유디트는 도주 전에 할아버지 때부터 살아온 과거의 행적을 반추한다. 유디트는 삼대에 걸쳐 동독에 살아온 것은 한마디로 우연 때문이었다. 지나간 과거는 주인공의 의식 속에서 반추된다. 이를테면 감정 없는 할아버지는 나치 시대에 완강할 정도로 체제 순응적인 태도를 취했고, 유디트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완고한 방식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는 유디트 어머니의 거식증으로 인한 사망으로 이어진다. 작가 카트린 아스칸의 동독 상은 밝지도 못하고, 긍정적 요소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제목 『빠져나오다 Aus dem Schneider』의 정확한 뜻은 “위험한 게임에서 빠져나오다.”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는 카드 놀이할 때 사용되는 어구로서, 작가는 구동독의 붕괴를 “위험 속에서의 구출”로 이해하고 있다.

 

 

 

 

- Volker Braun: Der Wendehals, 1995.

1995년에 간행된 폴커 브라운의 소설집이다. 브라운은 독일 통일을 “변혁 Umbruch”이라는 용어로 설명하였다. 그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쓰라린 마음으로 지켜보았지만,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 자세로 비판적 시각을 고수하면서 작품을 완성하였다. 작품 내의 「이기주의 동독인 Der Wendehals」에 등장하는 인물은 “나” 그리고 “그”이다. (원래 “Wendehals”는 “개미잡이” 새를 지칭하는 명칭이었는데, 크리스타 볼프가 이 단어를 “동독의 기회주의자”라는 의미로 처음 사용한 바 있다.)

나는 구동독 출신의 지식인이며 현재 실업자가 되어서 세상을 관망하고 있다. “나”에게는 소비재를 구매할 여력이 없다. 이에 비하면 “그”는 구동독 시절 “나”의 상관으로서 관료였는데, 통독 이후에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여 상인으로 변모한 사내이다. “그”에게는 처음부터 이성이 없었다. 브라운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자본주의 사회의 풍요로움이 어떻게 부패한 권력과 결탁하는가? 그리고 소비의 파괴적인 힘이 인간의 영혼을 얼마나 갉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날카롭게 천착하고 있다.

 

 

 

 

 

- Thomas Brussig: Helden wie wir, 1995.

토마스 브루시히의 소설 『우리 같은 영웅들』은 1995년에 발표되었다. 주인공은 클라우스 울츠트는 1968년 소련 탱크가 체코에서 나타난 프라하의 봄을 깔아뭉갤 당시에 태어났는데, 그의 성기는 발육이 정지되어 있다. 그는 안기부에서 일하는 아버지와 “고추는 오줌 놀 때만 사용하는 거란다.”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교육 등으로 인하여 성적으로 거의 불능상태에 처해 있다. 그런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그는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이때 그의 남근이 찔려서 장대하게 부풀어 오른다. 작품은 수많은 풍자와 아이러니로 이루어져 있다. 가령 “구제된 남근 der geheilte Pimmel”이라는 표현은 크리스타 볼프의 “나누어진 하늘 der geteilte Himmel”에 대한 패러디로 이해될 수 있다. 브루시히는 이러한 패러디를 통하여 구동독의 이전 세대 작가들의 허구성을 고발하려고 하였다.

 

 

 

 

- Thomas Brussig: Wie es leuchtet, 2004.

브루시히의 소설 『불빛은 어떻게 비치는가?』는 2004년에 발표된 장편소설이다. 작가 브루시히는 1989년 여름 이후의 동독의 현실 그리고 이때 활약했던 사람들을 바탕으로 소설의 토대를 설정하였다. 무대는 동베를린의 팔라스트 호텔인데, 이곳을 중심으로 수많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마치 퍼즐 게임처럼 전개되고 있다. 특히 구동독의 인권 운동가 위르겐 바르테는 권력의 희생양이 되는데, 그의 몰락은 김근태 의원을 연상시킨다. 심리치료사 레나 그리고 레나의 오빠가 전해주는 대중가요에 관한 이야기, 너무나 활발하게 살아가는 거친 빌리의 이야기, 통독 이후에 자신의 지조를 변화시키는 다니엘 데첸의 이야기, 폴크스바겐 대표 이사의 이름을 도용하여 사기극을 벌이는 베르너 슈니텔의 이야기, 권력의 하수인으로 일하는 군인 루츠 노이슈타인, 통독 이후에 눈을 뜨게 되지만 끝내 사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자비네 부세의 이야기, 함부르크 출신의 신문 기자 레오 라트케의 이야기, 자신의 스타지 전적을 감추는 변호사 기젤라 블랑크의 이야기, 장대높이뛰기의 책을 집필하는 발데마르 부데의 이야기 등은 모두 압권이 아닐 수 없다.

 

 

 

 

- Brigitte Burmeister: Unter dem Namen Norma, 1994.

마리안네는 동베를린에서 딸과 함께 살아간다. 남편 요하네스는 돈을 벌기 위하여 서독의 만하임으로 건너가고 없다. 그미는 요하네스를 찾아간다. 남편은 마치 커다란 재산을 획득했다는 듯이 의기양양해 있다. 마리안네는 건축가들의 파티에 참석한다. 그미는 파티에 참석한 어느 여인에게 어떤 거짓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자신은 ‘노르마’라는 가명을 사용한 “비공식 협조 요원 (IM)”으로서 스타지를 위해 일했으며, 여러 명의 남자를 사귀고 임신과 낙태를 겪게 되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낯선 자아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은 마리안네로 하여금 가상적 이야기를 끄집어내게 하였다. 대화에 끼어 든 남편은 아주 화를 내면서, 자신의 아내가 실제로 슈타지와 함께 일했다고 굳게 믿게 된다. 결국 마리안네와 요하네스 사이의 애정 관계는 완전히 파괴된다. 작가는 구동독에 대한 애증 (정확히 말하자면 증오심을 수단으로 한, 목표로서의 사랑)을 통해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황금만능주의를 고발한다. 이로써 드러나는 것은 “사라진 동독에 대한 향수 Ostalgie”이다. 이러한 향수는 스타지 권력에 대한 증오스러운 묘사를 통해서 정반대로 투영되고 있다.

 

 

 

 

- Friedrich Christian Delius: Die Birnen von Ribbeck, 1991.

68 학생세대인 서독 작가 F. C. 델리우스는 통독 이후에 서독 사람들이 동독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양상을 목격하고, 이를 비판하기 위해서 작품『리벡의 배』을 집필하였다. 그는 폰타네의 담시 「하벨란트의 리벡 지방의 리벡씨」라는 작품을 토대로 작품을 완성하였다. 원래 북독의 하벨란트 지역에는 한스 게오르크 폰 리벡 (1689 - 1759)이라는 귀족이 살았는데, 그는 매년 자신의 정원에서 생산되는 과일을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리벡씨는 매일 기도를 드리면서 풍년을 부탁드렸다. 그러면 나무의 영혼은 비밀스럽게 과일의 달콤함을 만끽하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리벡씨의 부우한 자손들이 자신의 재화를 이웃과 나누어먹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델리우스는 술 취한 토착인 한 사람을 등장시켜, 의식의 흐름 수법을 동원하여 자본가의 냉혹한 욕망을 독백하게 하고 있다. 술 취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래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무엇을 살아야 해. 혹시 새로움에 대한 거짓된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유령을 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