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으로 알려진 게오르크 뷔히너 문학상을 2013년에 수상한 작가는 시빌레 레비차로프 Sibylle Lewitscharoff입니다. 그미는 치밀한 관찰력과 날카로운 풍자 그리고 상상력을 드러내는 작가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2011년에 간행된 그미의 소설 '블루멘베르크'를 소개하는 것은 의미있을 것 같습니다.
시빌레 레비차로츠 (1954 - )그미는 불가리아 출신의 의사 그리고 독일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슈투트가르트에서 줄곧 살았다.
소설은 철학자 한스 블루멘베르크의 삶과 그의 제자에 관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대의 학문을 연구하면서 신화 연구가로서 고대 철학자로서 놀라운 업적을 보여주었던 블루멘베르크는 마치 박쥐처럼 생활하였습니다. 밤새도록 공부하고 글을 쓰며, 아침이 되면 잠을 청하는 그러한 학자였습니다. 에른스트 블로흐도 그러한 타입이었지요, 한국인 가운데 그렇게 생활하는 학자로서 우리는 한림대 사학과 박근갑 교수를 들 수 있습니다. 어쨌든 그는 야밤에 명료한 눈으로 문헌 그리고 자신의 원고지를 꿰뚫을 정도로 응시하는 사자의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스 블루멘베르크는 제반 영역에 있어서 깊은 통찰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자신의 연구에 몰두하여 "신화 연구 Arbeit am Mythos"라는 저작물을 발표하였지요. 이 점에 있어서 그의 면모는 김원익 선생님을 방불케 합니다. 김원익 선생님 역시 독문학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오래 전부터 신화의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한스 블루멘베르크 (1921 - 1996)의 모습. 아마도 50년대 아니면 60년대의 사진인 것 같아 보인다.
1970년부터 블루멘베르크는 뮌스터 대학의 금요일 오후 강의를 개최하였습니다. 이때가 되면 대학생은 물론이고, 뮌스터의 시민들까지 그의 강의를 청강하였습니다. 블루멘베르크는 자유 화법을 사용하여, 원고를 읽지 않고 청중을 향해서 직접 자신의 학문을 강의하였습니다. 강의의 주제는 2500년을 꿰뚫는 정신사의 흐름이었습니다. 그의 강의는 명징하였으며, 때로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하여, 뮌스터의 교양세계를 주름잡는 강사로 알려지게 됩니다. 블루멘베르크의 학문적 중점 영역은 신시대의 사고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중세와 르네상스를 관통하는 전환기의 사상 연구가 그의 핵심 테마였습니다. 그는 에른스트 카시러의 기능주의의 관점을 학문적 방법론으로 도입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입장을 제기하게 됩니다. 즉 신시대는 중세와 고대에 비해서 독자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인간의 고유한 자기 주장의 특성으로서 다른 시대에서는 드물게 혹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특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고유한 자기 주장의 특징은 이따금 고대에서도 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블루멘베르크는 고대의 사고에서 이론적 궁금증을 발견하곤 하였습니다.
어쨌든 간에 여기서 논의하려는 것은 블루멘베르크의 사상이 아니고, 레비차로프의 소설 속에 나타난 블루멘베르크입니다. 레비차로프가 소설 속에서 추적히는 것은 블루멘베르크의 학문 연구의 내용도 아니고, 그의 사적인 삶도 아닙니다. 작가는 다만 블루멘베르크의 삶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재구상함으로써 70년대 전환기의 시대에 서독의 대학교수로 살아갔던 어느 연구가의 삶의 편린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물론 레비차로프가 처음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블루멘베르크가 사회적 이방인으로서 독일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간 삶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블루멘베르크는 유대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후에 자신의 행적과 혈통에 관하여 한 마디도 언급한 바 없었습니다. 블루멘베르크는 다만 카를 슈미트와의 편지 교환을 통해서 유대인으로서의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토로한 바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 유대인에 대해 적대적 자세를 취하는 극우 정치 사상가와의 편지 속에 이 모든 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레비차로프의 소설은 블루멘베르크의 과거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미 언급했듯이 작가는 다른 사람과 거꾸로 살아가는 야행성 학자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이방인 작가로 살아가는 자신의 존재를 성찰하려고 한 게 분명합니다.
사진은 한스 블루멘베르크가 남긴 연구 메모의 카탈로그이다. 우리는 여기서 마치 훌륭한 가옥을 채 완성하지 않고 저 세상으로 떠나간 목수를 연상하게 된다.
소설의 진면목은 브루멘베르크의 삶 뿐 아니라, 그의 제자들에 관해서 생생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70년대 뮌스터 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상아탑의 현실을 반추하게 해줍니다. 실제로 블루멘베르크에게는 네 명의 탁월한 제자가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아마존 탐험 이후에 영문을 모르게 모두 기이한 병으로 요절하였습니다. 레비차로프는 이러한 비극적 사항 그리고 블루멘베르크의 비밀스러운 사랑의 이야기를 생기 넘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소설을 읽는 독자는 아직 인종 문제를 완전히 극복하지 못한 독일 사회에서 유대인 출신의 학자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갔는가 하는 사실을 접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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