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최신독문헌

전환기 소설 (2)

필자 (匹子) 2017. 9. 15. 09:49

- Kurt Drawert: Spiegelland, 1992.

구동독의 브란덴부르크 출신인 시인 쿠르트 드라베르트 (1956 - )는 1992년에 내적 독백의 소설 『거울 나라』를 발표하였다. “거울 나라”는 시인 자신이 태어난 곳인 구동독을 가리킨다. 작가는 작품을 19개의 장으로 나누면서, “독일의 독백”으로 지칭한다. 그는 자신의 두 아들, 다시 말해서 새롭게 이 땅에서 살아갈 후세 사람들에게 과거에 존재했던, 그러나 조만간 망각의 심연으로 나락할 하나의 나라에 관해서 서술하고 있다. “그럼에도/ 어떤 유산이 있어야 할 거야./ 나 자신 언젠가 (먼 훗날에는 망각이 기억 위에/ 득세하게 되겠지만) 다시 포착할 수 있는 이야기,/ 마치 사진 속의 감정을 담은 모음집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내면의 나라는 하나의/ 쓰러진 성터가 되겠지만)/ 어떠한 이름을 지니지 않고/ 어느 낯선 자로서의 너에 관해서/ 다른 언어로써 그 나라 안으로 들어서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작가는 과연 언어로써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가? 언어는 얼마나 권력에 의해 난자당했는가? 작품은 무엇보다도 남용된 언어에 관해서 집요하게 비판하고 있다. 당은 자연스러운 언어의 기능을 말살시키면서, 언어를 하나의 수단으로 약용해 왔던 것이다.

 

 

 

 

- Günter Grass: Ein weites Feld, 1995.

『난제』는 귄터 그라스가 1995년에 발표한 장편소설이다. (흔히 광야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오역이다.)작품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통일의 시점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이야기는 1848년 독일 혁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품의 제목은 테오도르 폰타네의 소설 『에피 브리스트』에서 유래한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서류 배달원 테오 부트케이다. 그는 자신이 폰티라고 불리기를 좋아할 만큼 사람들이 자신을 테오도르 폰타네로 이해하기를 바라고 있다. 두 번째 인물은 호프탈러라는 이름을 지닌 첩자이다. 그는 한스 요아힘 세트리히의 소설 『탈호버』에 등장하는 염탐꾼을 빼박은 인물이다. 두 사람은 20세기 역사와 19세기에 발생한 여러 가지 사건들과 결부시키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 호프탈러는 “우리는 다르게 처신할 수 있어.”하고 말하면서 테오 부트케에게 은근히 압박을 가한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모든 삶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고 환호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소설의 화자로서 포츠담의 어느 서고에서 일하는 익명의 사내를 등장시켜 두 사람의 입장을 대립시키고 있다. 이로써 전환기 이후의 현실에 대한 모든 판단은 독자들에게 위임되고 있다.

 

 

 

 

- Christoph Hein: Landnahme, 2004.

소설은 추진력이 강한, 철면피의 사내, 베른하르트 하버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다. 그는 슐레지엔 출신으로서 구동독의 가상적인 도시, 굴덴부르크에 정착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아버지를 집단으로 따돌림 시키다가 끝내 살해하였다. 23년 후에 이 사실을 알아낸 주인공은 모든 사건을 은폐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했던 사람은 자신이 굴덴부르크에서 사업가로 성공을 거두게 되는 파트너 내지 파트너들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작가는 다섯 명의 화자를 설정하여, 이들로 하여금 베른하르트 하버의 삶을 조명하게 하고 있다. 소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1 사람들에게서 철저히 배척당하는 왕따가 타인에게 굴복하거나 순응하지 않을 경우에, 주어진 사회에 동화하는 데 얼마나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되는가? 2. 과거의 죄악을 밝히는 일은 현재 살아가는 인간의 이해관계 내지 사회 구성원들 간의 인간관계를 거슬리지 않은 채 실현 가능한가? 3. 돈과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정의롭게 살아가려는 삶의 가치를 모조리 저버릴 수밖에 없는가?

 

 

 

 

- Jana Hensel: Zonenkinder, 2002.

야나 헨젤의 『동쪽 지역의 아이들』은 작품 간행된 2002년에 35만부가 판매되었다. 작품은 1976년생의 작가 헨젤의 데뷔작이다. 그미는 구동독에서 보낸 유년의 삶을 기억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동쪽지역 아이들』은 마치 수필처럼 간결하고도 솔직하게 기록된 체험기의 인상을 풍긴다. 그 안에는 주인공의 과거 체험, 여성으로 살아간 어머니와 언니에 관한 에피소드 등이 가득 담겨 있다. 박진감 넘치는 줄거리도 없고, 독자들을 자극할만한 짜릿한 연애 이야기도 담겨 있지 않다. 그저 일하면서 육아에 전념하는 여성들의 일상, 그리고 혼전 동거를 자연스러운 사랑의 삶이라고 이해하는 동독 여성들의 애정관 등이 간결하게 주인공의 뇌리에 떠오를 뿐이다. 그럼에도 작품이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까닭은 어느 누구도 동독 출신의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 깊숙이 은폐되어 있는 아픈 기억을 발설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 Thomas Hettche: Nox, 1995.

서독 기센 출신의 소설가 토마스 헤체 (1964 - )의 작품 『밤 (夜)』은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의 사람들과 어느 여자의 살인극을 다룬 작품이다. 1989년 11월 8일 밤 사람들은 고통과 기쁨이 뒤섞인 성적 클라이맥스를 만끽하려고 한다. 어느 젊은 여자는 기이하게 사람을 죽인 뒤에, 축제와 흥분의 도가니에서 여흥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 끼여 춤을 춘다. 소설의 화자 역시 그미의 칼에 의해 난자당하는데, 화자는 죽음의 나라에 머물면서 모든 것을 서술한다. 베를린 장벽의 틈이 벌어지는 것은 여성의 벌어지는 음부로 비유되며, 장벽 붕괴의 열광은 모든 충동의 발산으로 이해된다. 작가는 장벽 붕괴의 영웅을 독일로 비유하고 있다. 이로써 작가는 한편으로는 독일의 부활을, 다른 한편으로는 독일의 죽음을 심리학적 차원에서 구명하려고 한다.

 

 

 

 

- Stefan Heym: Auf Sand gebaut, 1990.

슈테판 하임 (1913 - 2001)의 소설 『모래 위에 집짓다』는 도합 일곱 편으로 이루어진 단편 모음집이다. 국경 변화를 통한 노 작가의 깊은 성찰이 담겨 있는 글로서, 쉽게 읽히면서도 감동을 전해준다. 일단 「모래 위에 집짓다」만을 살펴보자. 보델 슈빙 부부는 수십 년 동안 동베를린의 어느 집에서 살아왔는데, 두 남자를 맞이한다. 한 사람은 변호사 슈비부스 박사이며, 다른 한 사람은 포로트베델이라는 남자이다. 프로트베델은 법적 증거를 내세우면서 그 집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다. 제 4장에서는 텔아비브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미 역시 집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의 단편 가운데 쿠르트 투콜스키의 다음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모든 민족은 스스로 한탄을 터뜨리든 소리 없이 웃든 간에 당연히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를 지니게 된다.”

 

 

 

 

- Martin Jankowski: Rabet oder Das Verschwinden einer Himmelsrichtung, 1999.

마르틴 얀코프스키는 고타 출신의 시인이며 가수인데, 1999년에 소설 『라베트 혹은 어느 천체의 소멸』을 발표하였다. 주인공 벤야민 그라스만은 구동독 지역의 시골에 사는 몽상가 젊은이인데, 대도시 라이프치히로 가서 음악 연주가가 되고 싶어 한다. 함께 음악을 공부하는 게자라는 처녀를 알게 되어, 주인공은 그미와 함께 니콜라이 교회의 야권 예술가 모임에 가담한다. 사람들은 저녁에 만나서 현 정부를 비판하는 견해를 서로 나눈다. 며칠 후에 벤야민은 어느 예술가가 당국에 체포되어, 결국 서독으로 송치되는 것을 체험한다. 이후 벤야민은 정치에 가담하여 고초를 겪다가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체험한다. 60년대 청년의 시각에서 바라본 평화 혁명의 시각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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