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캉 22

호프만슈탈의 시: "두 사람"

그미는 손으로 술잔을 들고 있다 - 턱과 입은 마치 잔의 가장자리 같아 - 가볍고 편안했던 그미의 걸음걸이, 술잔에서 한 방울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은 가볍고 묵직했다, 그는 어린 말(馬)을 타고 갔다. 성의 없는 동작으로 그는 떨고 있는 말을 강제로 진정시켰다. 그렇지만 그가 그미의 손에서 가벼운 술잔을 받으려고 했을 때 그건 그들에게 너무 힘이 들었다. 두 사람의 손이 너무나 떨려서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지 못하게 되자, 짙은 포도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박설호 역) Die Beiden – Gedicht von 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 Sie trug den Becher in der Hand – Ihr Kinn und Mund glich seinem Ran..

21 독일시 2023.03.27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 서문 (3)

(앞에서 계속됩니다.) 6. 호모 아만스의 사회 심리적 개념 (1): 상기한 사항과 관련하여 우리는 호모 아만스의 의미를 -어떤 젠더의 범위를 넘어서서- 특정 부류, 혹은 다수와 관련되는 사회 심리적인 개념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호모 아만스는 제반 사회적 심리적 차별을 거부하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가령 그는 사회학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나와 당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커다란 가치를 지닌 분이 바로 호모 아만스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아가는 민초들일 수 있습니다.  민초들은 예나 지금에나 간에 “유교의 질서에 근거한 가부장적 씨족주의”라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

5 사회심리론 2022.06.01

서양 문학 속의 호모 아만스. 서문

“산문작품은 낯선 지역으로 들어서는 통로이며, 자신을 낯설게 반추할 수 있는 거울이다.” (필자) “’이 배는 오 분 후에 가라앉는다.‘ 신드바드의 이러한 외침은 먼 훗날 잠수함을 발명하게 했다.” (필자) 1. 친애하는 J, 본서는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울력, 2017)의 속편으로서 자료집 내지 사례집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통상적인 사례집과는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필자는 인간 삶의 제반 사회심리적인 갈등, 개개인의 고뇌와 해원 등을 무엇보다도 서양의 문학작품 속에서 찾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서양문학에 나타난 사랑과 성에관한 이야기들을 하나씩 정리하였습니다. 이야기들은 당신을 감동시키거나, 당신으로 하여금 타자의 어떤 심리적 하자를 간파하게 할 것입니다. 이로써 새롭게..

2 나의 잡글 2021.04.27

(저서 소개)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 심리학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 지금까지 수십권 간행했지만, 저자로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바로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입니다. 문학 서적, 사회학 서적 그리고 심리학 서적이 아니라, 상호 연계된 관점을 다룬 것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필자는 오래 전부터 호모 아만스의 인간형에 관해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책의 내용 가운데 필자가 애착을 가지는 장은 마지막 부록 "인종, 성, 나이 구분은 없다"입니다. 많은 참고 바랍니다. 목차 1. 서문: 구분 없는 인간형으로서의 호모 아만스 2. 정신분석학의 전개 과정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 3. 에릭 에릭슨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교육 심리 이론 4. 에밀리오 모데나의 생태 심리학과 에로스의 유토피아 5. 강덕경, 혹은 알렉..

1 알림 (명저) 2021.03.11

(명시 소개) 박현수의 시, "'응'이란 말" (1)

나: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너: “응”. 나: “응”이라는 대답 속에는 동의가 숨어 있군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말에는 주종 관계가 자리하는 반면에 “응”이라는 대답은 이와는 다른 것 같아요. 아이들의 천진난만함 그리고 동등한 관계를 연상시키니까요. 너: 요즈음 젊은이들은 카톡을 주고받을 때 응이라는 단어 대신에 그냥 동그라미 이응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응이라는 단어 속에는 수긍하고 동의한다는 의미가 은밀하게 내재해 있군요 나: 문정희 시인의 시 「응」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햇빛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

19 한국 문학 2021.01.15

서로박: (서평) 식수와 클레망의 새롭게 태어난 여인

엘렌 식수 (H. Cixous, 1937 -)와 카트린느 클레망 (C. Clément, 1939 -)의 "새롭게 태어난 여인 (La Jeune Née)"은 1975년 파리에서 처음 발표되었다. 제 1장, 「죄지은 여인 (La Coupable)」에서 클레망은 지금까지 “마녀” 혹은 “히스테리의 여자” 등으로 비하된 (남성적 시각에 의한) 잘못된 적대적 여성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이로써 가부장주의 이후의 사회에서 새롭게 나타날 “새롭게 태어날 여인”에 관한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제 2장, 「출발점들 (Sorties)」에서 식수는 (이제 페미니즘의 역사 비평 내지 사회 비평의 패러다임으로 변한) “남근 권력적 (phallokratisch)” 세계 질서의 많은 양상들을 하나하나 열거한다. 제 3장, 「교환..

5 사회심리론 2019.01.23

서로박: 자크 라캉의 이론 (5)

(앞에서 계속됩니다.) 22. 라캉 이론의 문제점 (1): 지금까지 우리는 라캉의 이론을 초보적 수준에서 개괄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문학 이론상으로 고찰할 때 라캉의 이론은 후기 구조주의 및 해체 이론 등의 시각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라캉은 무의식을 말하기 행위로써 도출해내어, 이를 동일한 차원에서 고찰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라캉의 이러한 태도는 몇 가지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컨대 무의식의 공간은 언어 영역 내의 의사 전달에 불필요한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언어 이전의 여백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한 인간이 정치적인 이유로 인하여 혹은 심리적 이유로 인하여 말로써 모든 것을 발설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고로 성에 관한 사항을 타인에게 발설하는 것은 참으로 껄끄러..

30a Lacan 2018.07.12

서로박: 자크 라캉의 이론 (4)

(앞에서 계속됩니다.) 16. 치료는 상상 속에 엉켜 있는 심리적 상흔을 재현시키는 작업이다. (2): 달리 말하자면 의사는 행동이 아니라, 환자와의 대화를 통해서 환자가 마지막 말을 스스로 끄집어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의사는 주체의 논의에 대해 “아하”, “그런가요?” 등과 같은 발언을 첨부하면 족하다고 합니다. 환자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왜곡되어 있는 상징적 질서는 진리로 비유될 수 있는데, 이러한 진리를 발견하는 당사자는 의사가 아니라, “완전히 말하는” 환자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다. 라캉의 정신 분석학은 한마디로 우주의 비밀을 찾아내려는 해석학이 아니라, 질병의 증상을 찾아내는 탐색 작업으로 끝납니다. 따라서 해석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려는 효과는 없으며, 오히려 증상속..

30a Lacan 2018.07.12

서로박: 자크 라캉의 이론 (3)

(앞에서 계속됩니다.) 11. 욕망의 언어, 무의식은 하나의 언어로 구조화되어 있다.: 이 명제는 라캉의 경우 매우 중요합니다. 라캉의 분석은 주체를 어떤 욕망의 언어 속으로 도입합니다. “첫 번째 언어langage premier”는 언어적 측면에서는 우주적이긴 하나, 욕망의 표출 내지 인간화 행위의 측면에서 고찰할 때 주체의 급진적 특수성으로 이해됩니다. 라캉은 무의식의 영역을 (누군가 말을 꺼내려 할 때의) 언어 효과의 영역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어란 말하기와 동일하지 않고, 의사소통으로 축소화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라캉이 생각하는 말하기는 주체와 타자 사이를 중개할 뿐 아니라, (표현 기능이 왜곡됨으로써 의사소통의 매개체로부터 일탈되는) 무의식적인 것을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무의식적으..

30a Lacan 2018.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