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글

호모 아만스. 치유를 위한 문학 사회심리학 서문 (3)

필자 (匹子) 2022. 6. 1. 14:19

(앞에서 계속됩니다.)

 

6. 호모 아만스의 사회 심리적 개념 (1): 상기한 사항과 관련하여 우리는 호모 아만스의 의미를 -어떤 젠더의 범위를 넘어서서- 특정 부류, 혹은 다수와 관련되는 사회 심리적인 개념으로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가령 호모 아만스는 제반 사회적 심리적 차별을 거부하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가령 그는 사회학적 차원에서 고찰할 때 나와 당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커다란 가치를 지닌 분이 바로 호모 아만스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지금 여기 한반도에 살아가는 민초들일 수 있습니다.

 

민초들은 예나 지금에나 간에 “유교의 질서에 근거한 가부장적 씨족주의”라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생활비 문제를 걱정하고, 계층적으로 차별 당하며, 민주적 분위기가 사라지면 독재 권력에 의해서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래서 필자는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을 위해 Zur Kritik der Hegelschen Rechtsphilosophie』의 서문에 실린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어서, “힘들게 살아가고 무거운 짐을 진 채 생활하며, 경멸당하고 모욕당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분들을 일차적으로 호모 아만스라고 규정하려 합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사회 내지 국가로 향하는 호모 아만스의 내면에는 두 가지 독특한 행동양상이 자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꿈, 인내 그리고 저항 가운데 세 번째 사항, 즉 저항입니다. 자신의 처지에 좌절하지 않고 인내하며 버티면서, 자신의 부자유를 가로막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 대해 도전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는 분들이 바로 호모 아만스일 것입니다.

 

7. 호모 아만스의 사회 심리적 개념 (2): 호모 아만스는 다수의 인간에 대한 심리 내지 심리학적 관점에서 고찰할 때 관용의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입니다. 가급적이면 타자의 사랑의 삶에 대해 깊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관대하게 대하려는 자세가 관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성 소수자들에 대한 이해와 아량을 지닌 분이 바로 호모 아만스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도 말한 바 있듯이 인간의 의식은 존재에 의해 결정되고 변화되는 법이지요. 다시 말해서 주어진 경제적 여건이 향상되면, 우리는 세계를 이전과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기에 특정 사회적 주체들에 관한 특성을 함부로 확정하면 곤란하며, 그들의 성향의 변화 가능성을 함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의외로 사랑의 행복에 대해 과도한 질투심을 드러내며, 성 소수자들에 대해 유독 강한 배타적 거부감을 표방하곤 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무엇보다도 주어진 관습, 도덕 그리고 법에 순응함으로써, 개개인의 자유와 욕망을 스스로 억압하고 차단시키는 태도에서 비롯합니다.

 

호모 아만스는 평범한 민초로서 경제적으로 힘들게 살아가지만, 현명하고 관대한 분일 수 있습니다. 가령 그는 세 가지의 차이를 용인하지 않습니다. 성의 차이, 나이 차이 그리고 인종의 차이가 바로 그 세 가지 차이입니다. 이것들은 우리를 편협하게 만들고, 사람과 사람을 분할하게 하며, 당동벌이党同伐異의 행동을 취하게 하는 비가시적 이데올로기의 편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8. 탈-구분에 근거하는 인간형의 유토피아 (1): 여기서 호모 아만스는 한 마디로 “탈-구분에 근거하는 인간형의 유토피아”로 해명될 수 있는데, 이는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을까요? 사랑하는 인간은 모든 사회적 심리적 차이 내지는 차별을 거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성의 차이, 나이의 차이 그리고 인종의 차이 등으로 인한 차별과 멸시를 배격하는 인간형으로 정의 내려질 수 있습니다.

 

첫째로 호모 아만스는 성의 구분을 처음부터 거부한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남성과 여성을 서로 구분하지 않으면, 성의 구분, 여성 차별 자체가 처음부터 불필요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성의 차이는 하나의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남성 중심주의의 역사는 여성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비하하는 데 기여해 왔습니다. 성이 다르다고 해서 남성이 지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여성보다도 우월하다고 단언할 수도 없습니다. 남성과 여성은 신체적으로 차이를 드러내지만 동등한 존재입니다. 두 성 사이에서 서로 다른 것은 생식 기관 그리고 근육 량에 국한될 뿐입니다.

 

예컨대 뇌 과학자들은 남성과 여성의 뇌의 크기의 차이를 비교하여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런데 뇌의 기능이 크기에 의해서 좌우되는 게 아니라, 혈액 내지 신경 전달물질의 속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연구에 의하면 여성의 뇌의 기능이 속도 면에서 남성을 앞선다는 연구 결과가 이어졌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남성과 여성의 지적 능력을 비교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된 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개인과 개인의 차이가 있을 뿐, 성 차이에 의해서 판가름 나지 않는다는 게 확정되었습니다.

 

9. 탈-구분에 근거하는 인간형의 유토피아 (2): 이 점을 고려할 때 프로이트Freud의 “남근 선망Penis-Neid”이라든가, 라캉Lacan의 “팔루스 중심주의Phallocentrism” 등에 관한 견해는 그야말로 예지적 편견에서 파생된 사변적 주장에 불과합니다. 위대한 냉소주의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 Judith Butler는 『젠더 트러블Gender Trouble』(1990)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의 차이 및 남성중심주의의 선입견을 해소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여러 논의를 개진하였습니다.

 

버틀러는 행위 주체성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생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당연하게 간주되는 성의 구분을 어느 정도 상대화시키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행위자란 버틀러가 주장한대로 선험적으로 가정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행위를 통해 행위의 주체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 우리는 트랜스젠더라든가, 여장 남성 드래그 퀸, 혹은 남장 여성 드래그 킹의 존재를 해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젠더 개념 하나만으로 인종 차이, 국적 차이, 나이 차이 그리고 종교 차이 등에서 비롯한 선입견마저 모조리 차단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성과 젠더를 이야기할 때 우리가 주어진 현실 속에 토대를 두고 있는 특정한 관습, 특정한 도덕 그리고 실정법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10. 호모 아만스의 사회 심리적 개념 (3): 둘째로 호모 아만스는 나이 차이와 세대 차이를 인지하지만 이를 중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이 차이와 세대 차이는 시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규정된 구분이기 때문입니다. 한반도에서는 장소의 차이로 인한 지역감정보다는 시간 구분으로 인한 세대 차이가 인간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국가가 개별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의 폭력은 참으로 끔찍하게 작용합니다. 흔히 남한의 가장 커다란 문제는 지역감정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세대 차이로 인해 경험의 폭이 세대마다 현격하게 차이를 이룬다는 점 그리고 세대 사이의 대화가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는 데에서 발견됩니다. 나이가 차이난다는 이유로 서로 등을 지고 배척하며 살아가는 것은 역시 어리석은 태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노인의 친구는 반드시 노인이어야 하고, 고등학생의 친구는 오로지 고등학생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의 유학생의 친구는 할머니 할아버지일 수 있듯이, 노인의 친구 역시 소년소녀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장유유서라는 수직적 위계질서의 잣대를 들이대며 주종관계를 강요하는 것은 진부한 유교적 관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11. 호모 아만스의 사회 심리적 개념 (4): 셋째로 호모 아만스는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것을 용인하지 않습니다. 특히 90년대 이후로 남한 사회는 국제화와 다원주의 사회 풍토로 인하여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문제와 조우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의사소통의 어려움에서 비롯한 선입견입니다만, 백인을 좋아하고 흑인을 싫어하는 것은 경험부족에서 비롯한 선입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쨌든 흑인, 유대인 등에 대한 인종 차별이야 말로 함께 아우르며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나쁜 자세입니다. 인맥을 따지고, 고향을 따지며, 관계를 따지는 게 전근대적 유교적 관습이듯이, 인종을 따지고, 가문을 따지며, 혈족을 따지는 행위 역시 씨족 이기주의의 관습으로서 차제에는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요약하건대 호모 아만스는 젠더의 역할 구분을 추종하지 않습니다. 나이 차이 그리고 인종 차이의 구분 역시 용인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호모 아만스는 궁극적으로 오로지 이성애만을 맹신하는 편견을 깨뜨리고, 가족 중심의 가부장적 씨족이기주의의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일차적 관건으로 생각합니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