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독일시

호프만슈탈의 시: "두 사람"

필자 (匹子) 2023. 3. 27. 20:22

그미는 손으로 술잔을 들고 있다

- 턱과 입은 마치 잔의 가장자리 같아 -

가볍고 편안했던 그미의 걸음걸이,

술잔에서 한 방울도 튀어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은 가볍고 묵직했다,

그는 어린 말(馬)을 타고 갔다.

성의 없는 동작으로 그는

떨고 있는 말을 강제로 진정시켰다.

 

그렇지만 그가 그미의 손에서

가벼운 술잔을 받으려고 했을 때

그건 그들에게 너무 힘이 들었다.

두 사람의 손이 너무나 떨려서

한 손이 다른 손을 잡지 못하게 되자,

짙은 포도주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박설호 역)

 

Die Beiden – Gedicht von 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

 

Sie trug den Becher in der Hand

– Ihr Kinn und Mund glich seinem Rand -,

So leicht und sicher war ihr Gang,

Kein Tropfen aus dem Becher sprang.

 

So leicht und fest war seine Hand:

Er ritt auf einem jungen Pferde,

Und mit nachlässiger Gebärde

Erzwang er, daß es zitternd stand.

 

Jedoch, wenn er aus ihrer Hand

Den leichten Becher nehmen sollte,

So war es beiden allzu schwer:

Denn beide bebten sie so sehr,

Daß keine Hand die andre fand

Und dunkler Wein am Boden rollte.

 

작품의 해설

 

호프만슈탈의 시 "두 사람Die beiden"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그리고 스위스의 김나지움 교과서에 실린 작품입니다. “진정한 사랑” 그리고 “확고한 남녀관계”는 현대 사회에서 서서히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좋든 싫든 간에 많은 부부가 이혼하고, 앞으로는 결혼식 자체가 커다란 의미가 없는 세상이 출현할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개방적인 자세로 파트너를 만나고 헤어지곤 합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파트너는 행여나 이별하게 될까 전전긍긍합니다. 그들이 혼인을 선택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러한 불안이 작용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불안 – 이것이 어쩌면 후고 폰 호프만슈탈이 1896년에 집필한 시 「두 사람」의 주제일지 모릅니다. 술잔은 사랑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상징하는 객관적 상관물입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그렇게 사랑을 확신했지만, 술잔은 떨리게 되고, 그만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고 맙니다.

 

시작품은 약강격 Jambus4각운으로 이루어진 소네트입니다. 마지막 연은 기이하게도 하나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연은 제각기 여자와 남자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세 번째 연에서 서로 만납니다. 작품이 두 사랑 사이의 사랑 그리고 사랑의 관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작품은 “연애 시”에 속합니다. 그미의 걸음걸이는 “가볍고 편안”합니다. 그미는 경쾌하고 즐거우며 편안한 삶을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술잔에서 한 방울도 튀어나오지 않”을 정도로 연인들은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자의 태도 또한 “가볍고 묵직”합니다.

 

그렇지만 “성의 없는 동작”에서 일말의 불안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은 그냥 서 있을 때 몸을 떨고 있습니다.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는 안정되지 못한 묘한 감정이 속출합니다. 말하자면 떨림이 감지된 것이었습니다. 한 손이 다른 한 손에 들려 있던 술잔을 거머쥐지 못하게 되자, 포도주는 바닥으로 쏟아지고 맙니다.

 

마지막 시구는 자구적으로 번역하면 “짙은 포도주 방울이 바닥으로 굴러간다.”라고 표현되고 있습니다. 이를 고려한다면 포도주 방울은 잃어버린 사랑으로 인한 고통 그리고 번뇌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술잔이 사랑에 대한 기대감 내지는 소유욕을 담은 마음이라면, 포도주는 사랑의 기쁨을 즐기게 하는 내용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은 어떤 불안으로 인해서 서로를 “발견finden”하지 못하고 술잔을 놓치게 됩니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연애 시는 불가능한 사랑의 가능성을 노래해 왔습니다. 젊은 시인들은 어째서, 무슨 장애물이 우리의 깊은 사랑을 방해한단 말인가? 하는 애타는 마음을 노래하면서 사랑의 성취를 갈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호프만슈탈은 의도적으로 사랑의 한계 내지는 가능한 사랑의 불가능성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호프만슈탈에 의하면 갈망하는 동안에만 출현하는 감정입니다. 두 사람의 사랑이 합쳐지려고 하는 순간 연정은 마치 바닥으로 떨어지는 술잔처럼 허망합니다. 우리는 이 시를 읽으면서 환전한 사랑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자크 라캉의 비극적 전언을 추체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