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11

서로박: 돈키호테 다시 읽기 (2)

(앞에서 계속됩니다.) 7. 사랑하는 임의 상을 사랑할 뿐이다.: 임을 애타게 갈구하면, 만남은 성급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법인가요? 사랑을 애타게 갈구하는 남자는 그미를 사랑하는 대신에, 스스로 갈구하는 임의 상만을 사랑합니다. 돈키호테는 (비록 착각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행위를 필요로 하는 현실과 직접 부딪칩니다. 현실 속에는 자신의 갈망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가 둘시네아를 생각할 때는 이와는 다릅니다. 그미는 하나의 명상으로서 돈키호테의 뇌리 속에서만 출현할 뿐입니다. 친애하는 T, 언젠가 독일의 작가 투콜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키 크고 날씬한 분을 갈구하지만, 작고 뚱뚱한 분을 얻는다. 그게 삶”이라고 말입니다. 둘시네아는 아주 가까운 곳, 토..

34 이탈스파냐 2023.04.29

서로박: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고행' (1)

1. 친애하는 C, 오늘은 세르반테스의 유작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 Los trabajos de Persiles y Sigismunda』에 관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흔히 세르반테스 하면, 돈키호테를 연상하는데, 문학연구가들은 진정한 명작으로서 세르반테스의 유작을 거론하곤 합니다. 작품은 헬레니즘의 연애 소설 내지는 모험 소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세르반테스 (1547 - 1616)가 죽기 나흘 전에 완성된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세르반테스는 1599년에 이 작품의 집필을 착수하였는데, 죽기 직전에 마지막 힘을 쏟으면서 탈고했다고 합니다. 그는 탈고 후에 다음과 같은 시구를 남겼습니다. “나의 발은 이미 죽음의 바람을/ 맞으며 저세상 난간에 섰는데/ 주여 나는 이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34 이탈스파냐 2022.12.02

서로박: 창백한 얼굴의 하얀 그림자

- “얼마나 많은 선남선녀들이 실제 삶 속에서 돈키호테로, 둘시네아로 살아가고 있을까?” (투르게네프) - 1. 오늘은 돈키호테와 둘시네아에 관해 언급할까 합니다. 돈키호테는 남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던집니다. 그러나 언제나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하고, 일을 망치곤 합니다. 제 하나 몸 간수도 못하는데도, 그는 불쌍한 처녀들을 보호해 주겠다고 공언합니다. 언제나 타인의 마음속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기사는 고독한 바보입니다. 그의 체격은 장대하나, 몹시 말랐습니다. 누렇게 찌든 얼굴, 광대뼈 등은 광기로 인하여 수척한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돈키호테를 착각에 사로잡히게 한 것은 여러 책이었습니다. 기사에 관한 책들은 대부분의 경우 아주 천박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에게 어떤 결코 천박하지 않..

2 나의 글 2022.04.30

블로흐: 유토피아의 의미에 관하여 (2)

(앞에서 이어집니다.) 또한 동화들은 여러 과학 기술에 대한 가상적 기구들을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동화 작가들은 마치 마술의 도구처럼 이러한 자연과학의 기구들을 그야말로 마력적으로 동화에 도입했던 것입니다. 「열려라, 식탁 Tischlein, deck dich」이라든가 진실로 지레에 의해 작동되는 요술 말 (馬) 그리고 날아가는 양탄자를 생각해 보세요. 알라딘의 소도구들은 인간의 욕망을 놀라울 정도로 성취시켜주고 있습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그것을 실제로 작동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오랫동안 이어온 소망을 충족시켜주지 않았습니까? 그래,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발명품의 목록은 자세히 언급된 과학 기술의 유토피아로서, 바로 지금까지 간행된 동화 속에 이미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습니다. 가령 베이컨의..

29 Bloch 번역 2021.11.27

서로박: 소네트 패러디 (1)

다음의 글은 나의 논문 "고상한 소네트에서 조야한 소네트로"의 일부이다. 나: 소네트는 현대인의 사랑과 성을 담기에는 진부한 형식, 다시 말해 헌 부대에 불과하지요. 현대인들이 목숨 건 사랑을 체험하는 경우는 이제 드뭅니다. 사랑을 가로막던 장애물들이 오늘날 거의 철거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비극을 처절하게 노래할 필요성이 사라졌어요. 이에 반해 과거에는 구태의연한 관습, 도덕 그리고 법이 온존하였으므로, 죽음을 각오하는 사랑의 열정은 실제로 출현했고, 이는 소네트를 통해 묘사될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을 생각해 보세요. 피에르 아벨라르 (1079 - 1142)는 엘로이즈라는 아리따운 처녀의 가정교사로 일했는데, 그들은 활활 타오르는 연정을 주체하지 못하다가, 끝내 살을 섞었습..

22 외국시 2021.09.05

블로흐: 미하엘 콜하스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르는 행위만큼이나 규범적인 인간, 미하엘 콜하스 Michael Kohlaas이다. 기존하는 법 조항 하나는 그의 마음속에서 마치 벌겋게 타오르는 불처럼 작열한다. 거기에는 마치 신의 법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하나의 법조항을 따르기 위해서 마치 반역자처럼 무력의 투쟁에 깊이 개입하는 자는 오로지 미하엘 콜하스밖에 없다. 법조항은 그의 뇌리에는 자연법, 아니 자연법의 찬란한 광채로 투영되고 있다. 그리하여 어느 기사에 관한 가장 강력하고 열정적인 학습소설이 탄생하게 된다. 법적 감정에 도취하여 법 규정을 위하여 끝까지 싸우는 기사 말이다.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는 한 남자가 자신의 손해에 고통을 느끼다가 얼마나 광포하고 끔찍하게 행동하는가? 하는 물음을 생생하게 묘사하..

27 Bloch 저술 2020.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