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 13

서로박: (3)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앞에서 계속됩니다.) 10. 비극이 발생하다: 므이쉬킨 공작은 나스타시아에게 결혼을 신청합니다. 주인공에게 결혼이란 무소유의 행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스위스에서 병든 마리를 도와주었듯이, 이번에는 (사랑하는 임의 행복을 위하여 임을 떠나려고 결심하는) 나스타시아를 아무런 조건 없이 돕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은 끔찍한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나스타시아는 주인공과 결혼하기 직전에 로고친에게 향합니다. 경제적 문제 등 이전의 모든 관계를 깨끗하게 매듭지어야만, 공작과 결혼할 수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므이쉬킨 공작 역시 그미를 찾으려고 로고친의 집으로 달려갑니다. 로고친은 거칠고 단순한 사내였습니다. 그는 주인공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나스타시아에게 향해 칼을 뽑아 듭니..

31 동구러문헌 2024.10.25

서로박: (2) 도스토옙스키의 '백치'

(앞에서 계속됩니다.) 6. 소설 속의 압권, 하나의 에피소드 (1) : 뒤이어 주인공은 우연히 나스타시아와 살롱에서 조우합니다. 살롱에는 상류층에 해당하는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서 므이쉬킨 공작은 사람들에게 놀라운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므이쉬킨 공작이 스위스에서 체험했던 이야기입니다. 나스타시아를 비롯한 여러 사람이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마리라는 처녀가 살았는데, 어느 남자에게 농락당한 뒤에 버림받게 됩니다. 이웃 사람들은 사실을 잘 알지도 모르면서, 마리를 간통한 여자로 매도합니다. 마리의 머리카락을 마구잡이로 절단하고 끔찍한 고통을 가합니다. 마리는 사회적으로 버림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간통한 여자는 유럽 시민 사회에서 ..

31 동구러문헌 2024.10.25

박설호: (1) 흙의 권리. 오르플리트 서한집, 서문

“흙은 살림의 자양이고, 핵폐기물은 죽임의 원자재다.” (에티엔 다보도)“흙의 권리는 유한한 생명의 처절함으로, 여성성의 우선권으로, 물질의 중요성으로, 죽음의 소중한 가치로 설명된다.” (필자) 1. 친애하는 M,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미지의 독자,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대의 상처를 내밀하게 전하는 데에는 서간체가 가장 좋을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청년이었을 때,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Бедные люди』 (1844/45)을 읽고, 깊은 감동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비록 찢어지게 가난하지만, 상대방을 깊이 애호하는 마카르 제브시킨 그리고 경제적 이유로 돈 많은 다른 사내를 선택해야 하는 바바라 도브로요브스카 사이의 이별은 참으로 애절한 것이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 ..

2 나의 잡글 2024.06.13

박설호: 견유 문학론 (3)

본문에서 "당신"은 필자 자신을 지칭한다. ...................... 보충 사항 1: 부디 명심하십시오,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라는 속뜻을. 똥개는 짖지만, 명견은 함부로 짖지 않습니다. 명견은 가만히 있다가 자신의 판단을 실행하는 개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명견과 똥개를 구별하게 할까요? 똥개는 남을 의식하는 개입니다. 행여나 남들이 자신의 약점을 알아 차릴까봐 전전긍긍하지요. 똥개의 모든 행위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제일인자가 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명견은 남을 의식하지 않는 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드러내고 마치 익은 벼처럼 고개를 숙이지요. 명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감춘 채 타인을 돕고, 감추어진 진리를 전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2 나의 잡글 2022.06.26

서로박: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2)

(앞에서 계속됩니다.) 주요 이야기는 형제들의 삶의 이야기에 의해서 시작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나드리프 (nadryv)”라는 비극적 갈등에 의해서 이어지는 것이다. “나드리프”는 “찢는다”라는 뜻을 지닌 러시아어의 동사 “나드리바트 (nadryvat)”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그것은 의도적으로 자신을 속이고, 스스로 자신을 파괴시키려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나드리프의 갈등은 고유한 개인에게 의도적으로 폭력을 가하고 운명을 짓밟으려는 잔악한 행위를 뜻한다. 이와 관련하여 알료샤는 어떤 황홀의 상태에서 가치가 전도된 세계에 관한 상을 바라본다. 드미트리는 어떤 불행한 아기에 관해 꿈을 꾸는데, 이는 자신의 열정이 동정심으로 치환되어 나타난 것이다. 언젠가 이반은 종교 재판관에 관한 전설을 집필한 적이 ..

31 동구러문헌 2022.03.06

서로박: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1)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1879/ 80년에 발표되었다. 마지막 해에 발표한 그의 작품, 「어느 작가의 일기」의 마지막에는 인류의 운명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어떤 더 높은 이념 없이는 개별적 인간도 그리고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지구상에는 오로지 하나의 이념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인간 영혼이 결코 죽지 않는다는 이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나머지의 모든 숭고한 이념들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 불멸의 이념은 삶 자체이며,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발언 속에는 단순한 무신론의 사고를 넘어서서, 인간이 신앙 없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고뇌 어..

31 동구러문헌 2022.03.06

서로박: 에밀 졸라의 "모레 목사의 죄" (2)

(8) 꽃봉오리, 그대는 아름답도다, 알비네: 놀라운 사건은 주인공이 철학자, 장베르나와 접촉하면서 발생합니다. 세르제는 외삼촌, 파스칼 루공의 소개로 장베르나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 철학자는 계몽주의적 사고를 견지하면서, 유물론에 대해 열광하는 기인이었습니다. 장베르나는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자로서 아르토의 고립된 지역에서 자신의 여 조카와 함께 칩거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은 “파라두”라고 불리는 등나무 등으로 거칠게 엉켜 있는 정원이었습니다. 여조카는 알비네라고 불리는 불과 16세 나이의 청순한 처녀였습니다. 금발 머리를 지닌 알비네에게는 문명의 티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세르제는 알비네와 마주치는 순간 어떤 커다란 혼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주인공은 장베르나에게 신앙의 중요성을 가르쳐주..

33 현대불문헌 2021.12.23

블로흐: 이 시대의 유산 (2)

유산에 관한 이러한 문제는 나의 책 『이 시대의 유산』에서 하나의 중요한 관건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책에서 나는 유산의 문제를 네 개의 작은 시기로 구분한 바 있습니다. 우선 제시되는 것은 분산의 경향입니다. 직장 고용인들의 산만한 의식이라고 할까요, 세상은 우스꽝스럽고 긴장감 넘치며 재미있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요. 이러한 문화는 특히 영화에서 주로 나타납니다. 어떤 붉은 감정의 덩어리가 출몰합니다. 혁명의 광채 내지 이른 광채가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침 여명, 혹은 저녁의 황혼이 도래했는지 정확히 모릅니다. 바로 이러한 분위기는 1920년대 베를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가 바로 분산의 시기에 해당합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과연 무엇이 문화적으..

30 bloch 대화 2021.09.13

서로박: (2) 프로이트의 '도스토옙스키와 아버지 살해'

7. 아버지에 대한 애증: 도스토옙스키의 발작은 죽은 자와 동일하게 되려는 무의식을 반영합니다. 소년은 내심 아버지가 죽기를 애타게 갈구했습니다. 히스테리라는 이름의 발작은 미워하는 아버지가 죽기를 갈망하는 데에서 비롯한 것입니다. 이는 프로이트에 의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관계됩니다. 아버지를 적대시하는 배후에는 아버지에 대한 애정 역시 담겨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를 찬미하나, 동시에 아버지를 증오합니다.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로부터 거세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거세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아이는 아버지를 제거하고 어머니를 소유하려는 욕구를 견지합니다. 이는 죄의식을 낳게 됩니다.  이로써 무의식 속에 가라앉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증오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합니다. 실제로 도스토옙스키에..

31 동구러문헌 2020.09.11

서로박: (1) 프로이트의 '도스토옙스키와 아버지 살해'

1. 갈등으로 가득 찬 작가, 도스토옙스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도스토옙스키를 최고의 작가로 꼽으며, 그의 작품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대해 자신의 정신분석학적인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원래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계기로 집필되었습니다. 어느 독일의 출판업자는 1925년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간행하려고 했는데, 프로이트에게 작품 분석을 의뢰하였던 것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와 아버지 살해」는 프로이트의 나이 69세 때 완성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글 속에는 프로이트의 말년의 정신분석학 이론이 용해되어 있습니다. 프로이트는 이 논문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죄의식 등을 새롭게 기술합니다. 가령 지금까지 인간의 자위행위에 관해서는 초기 저작물에서는 한 번도 거론되지 않았습니다. 2. 그는 경건한 무신..

31 동구러문헌 2020.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