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동구러문헌

서로박: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1)

필자 (匹子) 2022. 3. 6. 08:27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1821 - 1881)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1879/ 80년에 발표되었다. 마지막 해에 발표한 그의 작품, 「어느 작가의 일기」의 마지막에는 인류의 운명에 관한 깊은 성찰이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어떤 더 높은 이념 없이는 개별적 인간도 그리고 어떤 국가도 존재할 수 없다. 지구상에는 오로지 하나의 이념이 존재할 뿐이다. 그것은 인간 영혼이 결코 죽지 않는다는 이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의지할 수 있는 나머지의 모든 숭고한 이념들은 바로 거기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 불멸의 이념은 삶 자체이며, 살아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발언 속에는 단순한 무신론의 사고를 넘어서서, 인간이 신앙 없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고뇌 어린 숙고가 담겨 있다.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문학 세계의 총 결산이나 다름이 없다. 나아가 그것은 작가 자신의 고유한 내면적 체험들을 승화시킨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젊은 도스토예프스키는 포악한 아버지 밑에서 고통당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소설 완성에 영향을 끼친 자로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두 사람을 들 수 있다. 말년에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독교 철학의 전파자, 블라디미르 솔로비예프와 친구 관계를 맺었다. 이는 등장인물을 묘사하는 데 그리고 소설의 내적 주제를 강렬히 부각시키는 데 크게 작용하였다.

 

나아가 작가에게 영향을 준 서적으로서 우리는 니콜라이 도로프Nikolai Fjodorowitsch Fjodorow의 "공동 행위의 철학Philosophy of the Common Task"을 들 수 있다. 특히 후자는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공산주의적 이념을, 다른 한편으로는 클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상호 부조에 관한 이념이 은밀하게 용해되어 있다.

 

소설은 다른 작품과 마찬가지로 범죄 소설의 인상을 풍긴다. 왜냐하면 "죄와 벌"과는 달리, 진짜 범인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까지 독자에게 명료하게 의식되지 않기 때문이다. 카라마조프의 세 형제들은 모두 성인이 되어 부모님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버지, 표도르는 아둔하고 멍청한데,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여자를 유혹하여 바람피우는 일밖에 없다. 자식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것도 나름대로의 이유를 지닌다. 아버지가 세 아들을 몹시 증오하듯이, 아들들 역시 아버지를 경멸하고 있다. 다만 셋째 아들, 알료샤만은 아버지를 완강하게 증오하지는 않는다.

 

어느 날 표도르가 살해당한다. 사람들은 큰아들, 드미트리가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지목한다. 드미트리는 무척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처녀, 그루젠카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표도르는 아들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미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드미트리는 그루젠카를 건드리면 죽이겠다고 아버지에게 협박한 적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들 드미트리가 치정 살인극을 벌였다고 속단한다. 모든 정황은 드미트리에게 불리하게 전개된다. 결국 드미트리는 유죄를 선고받고, 시베리아에서 강제 노동의 중형을 선고받는다.

 

그러나 실제 살인자는 간질을 앓고 있는 배다른 동생, 스메르쟈코프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역시 간질의 증세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이반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게 허용되어 있어서 한 번 살인해 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스메르쟈코프는 존속 살해에 대한 죄의식이라고는 하나도 느끼지 않는다. 그는 “권태로 인하여, 삶에 대한 역겨움 때문에” 목을 매고 자살한다. 한마디로 세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처음부터 죄 지은 셈이다.

 

작품은 하나의 이념을 담고 있는 장편 소설이라는 점에서 카라마조프 가족 이야기의 차원을 넘어서, 인간적 상황을 시사해주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표도르 카라마조프 (생물학적 아버지, 출산과 죽음의 양극)는 스타레크 초시마 (정신적 아버지, 희생과 부활의 양극)에 대립되고 있다. 스타레크 초시마는 나중에 언급되지만, 도스토예프스키의 무신론 사상을 개진하는 데 중요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표도르의 세 아들은 인간 본성의 삼분법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반의 삶은 사고의 특성을 지니고, 드리트리의 삶은 열정의 특성을 간직하며, 알료샤의 태도에는 창조적인 의지가 엿보이고 있다. 세 명 모두 카라마조프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천상과 반대되는 요소를 지니며, 배다른 형제인 스메르자코프의 죄악과 유혹에 대항해서 자신을 주장한다. 세 형제들은 동일한 비극적 갈등 (아버지에 대한 증오)을 극복해야 하며, 스메르자코프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범죄 (아버지 살인)에 책임을 져야 한다.

 

세 형제에게는 제각기 여성들이 있다. 이들은 제각기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이반은 고집과 자만심을 지니고 있으나, 그의 연인, 카테리나는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수동적 여성이다. 드미트리는 색정적이지만, 그의 연인 그루젠카는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알료사와 리자는 치유의 기적이라는 공통성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소극적이지만 신앙심이 강하다. 등장인물 모두 제각기 자신의 세계에 침잠해 있다. 예컨대 이반은 이중인격을 드러내며 살아가며, 드미트리는 선술집과 골목을 배회하며 흥청망청 살아가며, 알료샤는 아이들에 파묻혀 사원에서 생활한다.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