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중세 문헌

서로박: (2) 단테 알리기리의 '신생'

필자 (匹子) 2024. 11. 20. 10:09

(앞에서 이어집니다.)

 

7.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은 제 20장에서 다음과 같은 소네트, 「사랑과 온유한 마음은 하나입니다Amore e ‘l cor gentil sono una cosa」에서 명징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랑과 온유한 마음은 하나입니다./ 현명한 사내가 암송할 때 표현한 바대로./ 그래서 이유없는 합리적 영혼으로서/ 타자 없이 감히 하나가 되려고 하지요. Amore e ‘l cor gentil sono una cosa,/ sì come il saggio in suo dittare pone,/ e così esser l’un senza l’altro osa/ com’alma razional sanza ragione.// 만약 그게 사랑스러울 때, 본성을 찾으세요,/ 주에 대한 사랑과 그분의 거처에 대한 마음을./ 그분은 그곳에서 잘 자면서 쉬고 있어요./ 때로는 짧고 때로는 긴 계절이지요. Falli natura quand’è amorosa,/ Amor per sire e ‘l cor per sua magione,/ dentro la qual dormendo si riposa/ tal volta poca e tal lunga stagione.// 그러면 찬란한 상이 현명한 여인에게 나타나,/ 마음속에 간직한 희열의 모습을 보여주고,/ 편안함에 대한 갈망을 솟구치게 합니다. Bieltate appare in saggia donna poi,/ che piace a li occhi sì, che dentro al core/ nasce un disio de la cosa piacente;// 가끔 이 남자에게도 그한 감정이 오래 머물기도 해요./ 그러면 사랑의 정신이 깨어나게 되고/ 사랑은 감히 하나 되려는 여성의 얼굴과 같지요. e tanto dura talora in costui,/ che fa svegliar lo spirito d’Amore/ E simil face in donna omo valente.”

 

 

8. 제19장에는 「사랑의 지성을 지닌 여성들 donne ch'avete intelletto d'amore」이라는 칸초네가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단테가 저술한 “찬양 시”의 첫 번째 표현입니다. 어느 날 베아트리체의 아버지가 목숨을 잃고, 시인 역시 9일 동안 심한 열병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건들은 베아트리체의 죽음을 은근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시인은 고열에 시달리면서, 환상에 사로잡힙니다. 그것은 어느 천사가 안타깝게도 사망한 베아트리체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상이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신의 현시visio beatifica” 속에서 찬란한 천국으로 입성하게 됩니다. 제28장에서 사람들은 그미의 죽음을 거론하면서, 천문학에 의하면 그미의 사망 일자가 1290년 6월 9일이라고 확정합니다.

 

이어지는 장에서 단테는 사랑의 성스러움을 노래하는 소네트가 기술되는데,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인한 쓰라린 고통을 담고 있습니다. 제35장에서 베아트리체는 어느 날 아침 9시에 찬란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순간 단테는 엄청난 두근거림의 유혹에 사로잡히지만, 순식간에 이러한 열정으로부터 해방됩니다. 이 순간부터 시인은 어떠한 다른 여성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지 않습니다. 마지막 장에서 단테는 언젠가 천국에서 그미와 황홀하게 만날 수 있으리라는 갈망을 예술적으로 표현합니다. 베아트리체는 훗날에 『신곡La divina comedia』 (1472)에서 다른 형체로 재구성됩니다.

 

10. 지금까지 우리는 단테가 서술한 『신생』의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단테는 사랑을 두 가지의 의미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는 궁궐에서 느낄 수 있는 세속적인 사랑을 가리키며, 다른 하나는 신비로운 종교적 의미를 담은 사랑을 지칭합니다. 그렇기에 베아트리체는 한편으로는 왕들의 거처에서 마주칠 수 있는 사랑하는 영혼을 연상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자의 모습, 삼위일체의 성스러운 상징 내지는 숫자 "9"의 중요성으로 각인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성은 시인의 개인적 체험을 반영한 것이지만, 사랑의 구상에 관한 예술적 작업을 통해서 발견해낸 것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단테의 친구, 귀도 카발칸티가 강조한 바 있는 시적 영향과 관련되지요.

 

다시 말해서 베아트리체에 대한 시인의 사랑은 주어진 현실에서는 성취될 수 없지만, 시적 상상의 공간에서는 천국의 장려한 배경 속에서 찬란히 만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단테는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의 사랑을 고결하고 숭고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성취되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성취에 대한 갈망 그 자체로만 이해되어야 할까요? 과연 현대인들 가운데 누가 사랑을 “신비적 합일unio mystica”로 이해하지 않고, 그저 이에 대한 기대감으로 파악할까요? 이와 관련하여 브레히트는 「제12번째 소네트」 베아트리체에게 보내는 단테의 시편에 관하여”에서 단테의 연애관을 비아냥거렸습니다.

 

11. “그미의 산책길에서 자주 터벅터벅 걸었지만/ 도저히 성교할 수 없었던 그미가 누워 있는/ 먼지 가득한 구덩이 위로 그미의 이름은 아직도/ 항상 우리의 마음을 공중에서 흔들고 있네.// 왜냐면 그는 그미에 관한 몇몇 시구를 쓰면서/ 그미를 생각하라고 우리에게 명하고 있으니까/ 우리로서는 그미를 달콤하게 찬양하는 그의 말에/ 정말로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가 엄청날 정도의 찬양으로 칭송한 것은/ 그가 다만 바라본 모습일 뿐, 실행한 건 아니었지!/ 아, 그는 얼마나 부도덕하게 행동하고 싶었을까?// 그가 다만 그미를 바라보고 찬양한 이후로 / 유효한 것은 도로를 건너는 예쁘게 생긴 여자이지,/ 열망할 가치 있는, 앞섶이 축축하게 된 여자가 아니야.

 

Noch immer über der verstaubten Gruft/ In der sie liegt, die er nicht vögeln durfte/ Sooft er auch um ihre Wege schlurfte/ Erschüttert doch ihr Name uns die Luft.// Denn er befahl uns, ihrer zu gedenken/ Indem er auf sie solche Verse schrieb/ Daß uns fürwahr nichts andres übrigblieb/ Als seinem schönen Lob Gehör zu schenken.// Ach, welche Unsitt bracht er da in Schwung/ Als er mit so gewaltigem Lobe lobte/ Was er nur angesehen, nicht erprobte!// Seit dieser schon beim bloßen Anblick sang/ Gilt, was hübsch aussieht und die Straße queret/ Und was nie naß wird, als begehrenswert.

 

12. 사랑이 오로지 종교적 영성의 의미로만 이해된다면, 그것은 브레히트에 의하면 허구 내지는 거짓에 불과합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단테의 연애관은 사랑의 부분적 특징만을 드러내고 있을 뿐입니다. 생명체가 누리는 지고의 행복은 사랑의 신비로운 감정 뿐 아니라, 짝짓기와 성적 접촉을 통한 쾌락으로 충족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아트리체는 브레히트에 의하면 육체 없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얼마든지 (성적인 흥분을 통해) 앞섶이 축축하게 된여성으로 단테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단테는 산책길에서 터벅터벅걸으며찬란한 꽃봉오리인 베아트리체와 성교하고 싶은 욕망을 그저 감추면서 제어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브레히트는 단테의 성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성으로부터 도피한 승화sublimation로 이해하며, 그의 예술관 역시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승화의 결과로 파악할 뿐입니다. 자고로 생명체의 사랑에는 사랑과 성 모두 중요합니다. 성이 무시되고 억압당한 이유는 당시의 사회가 종교 이데올로기에 의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지배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물주는 모든 생명체에게 숙명적 죽음에 대한 보상으로 어떤 성적 쾌락을 안겨주었습니다. 따라서 사랑과 성은 -적어도 억압과 부자유 그리고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는 정황이 주어진다면- 어떻게 해서든 충족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찬란한 꽃이면, ()은 생명체의 뿌리와 같습니다.

(박설호: 에로스와 서양문학, 울력 2017, 34쪽)

 

 

(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