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탈스파냐 51

서로박: 후안 룰포의 두 편의 소설 (1)

1. 후안 룰포의 문학: 친애하는 R, 당신의 편지를 읽고 나는 한동안 침울해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여 문인이 되려고 하나, 그럴 수 없어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는 당신의 소식이 나를 슬프게 했습니다. 1983년 뮌헨에서의 가난한 유학생활을 접고 귀국을 결심할 때의 나에게도 그러한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유학 생활을 계속했지만, 우리의 삶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것은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내가 지속적으로 문학 작품에 관해서 글을 쓰려는 것도 강의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신과 같은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서입니다. 멕시코의 작가, 후안 룰포 (Juan Rulfo, 1917 - 1986) 역시 가난 때문에 대학에서 편안하게 공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생계를 위한 일과 창작..

34 이탈스파냐 2021.09.20

서로박: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2)

양피지에 기록된 보카치오의 글 특히 놀라운 것은 서클의 참가자들이 첫 번째와 아홉 번째의 날에 아무런 특정한 주제 없이 자유분방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디오네오 Dioneo라는 거친 악동 한 명이 등장하여, 앞으로의 진행 과정에 관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오네오는 마치 모임에서의 사회를 맡듯이, 참석자들에게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알려줍니다. 그는 저자인 보카치오를 대변하는 인물인 셈이지요. 디오네오는 자신의 본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매일 서클의 분위기가 즐겁고 안온하게 자리하도록 노력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듯이, 보카치오는 비판적 리얼리스트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게 주어진 현실을 치밀하게 관찰하여, 모든 것을 묘사했다는 점에서 놀라운 재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작품은 중세 말기의 기사들..

34 이탈스파냐 2021.08.06

서로박: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1)

친애하는 B, 오늘은 조반니 보카치오 (1313 - 1375)의 『데카메론 Il Decamerone』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보카치오는 페트라르카의 제자로서 훌륭한 문학 작품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구어체를 수용하여 생동감 넘치는 서정시를 많이 집필하였습니다. 작가에 관해서는 별도로 말씀드리기로 하고 오늘은 작품집, 『데카메론 Il Decamerone』에 관해서 언급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보카치오의 중편 모음집으로서 1349년에서 1353년 사이에 집필된 것입니다. 중편 소설 모음집에는 총 100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것들은 우화, 경구적 이야기 그리고 실제 발생했던 사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집은 “부드러운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사랑의 열정에 대해 부끄러움과 수치심을 ..

34 이탈스파냐 2021.08.06

서로박: 캄파넬라의 철학시편 (4)

나: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를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의 시는 캄파넬라의 대표작인가요? 너: 네, 「나라를 지닌 자가 왕이 아니라, 다스릴 줄 아는 자가 왕이다. Non è re chi ha regno, ma chi sa reggere」를 대표작으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권력의 본질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붓과 물감을 가진 자가 괴발개발 그림 그려 벽과 먹지 더럽힌다면, 그는 화가가 아니리. 설령 먹, 펜, 필통이 없더라도, 그림 그릴 능력을 지니면 그가 참다운 화가이리라. 삭발한 머리, 성의가 성직자를 만들지 않듯이 거대한 왕국과 땅을 지닌 자는 왕이라 할 수 없지 예수와 같이 천한 노예 출신이라도 마치 혹성 팔라스와 화성처럼 그들은 차제에 반드시 왕이 되겠지. 현명함의 관을 쓰고 세상..

34 이탈스파냐 2021.06.30

서로박: 캄파넬라의 철학시편 (3)

나: 시집에 관해서 언급하기로 합시다. 그렇게 오랫동안 갇혀 있었는데, 어떻게 시집이 간행될 수 있었는지요? 제가 알기로는 1622년에 그의 시집이 프랑크푸르트에서 간행되었다고 하는데요. 이 시기에 그는 나폴리 감옥에 수감되어 있지 않았나요? 너: 네. 시집이 간행된 데에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1612년, 그러니까 캄파넬라가 나폴리 감옥에 수감된 지 12년 째 되는 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일의 인문학자이며 법률가인 토비아스 아다미 (Tobias Adami, 1581 – 1643)는 자신의 제자와 함께 여행 중이었습니다. 그는 작센의 귀족이며 나중에 군주가 되는 제자, 루돌프 폰 뷔르나우와 함께 그리스, 예루살렘 그리고 몰타를 여행한 뒤 나폴리에 잠시 체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때 그는 이..

34 이탈스파냐 2021.06.30

서로박: 캄파넬라의 철학시편 (2)

너: 일단 캄파넬라의 시 한 편을 인용하려고 합니다, 제목은 「침대를 불지르고 미쳐버린...Di se stesso, quando, ecc...」이라는 작품입니다. “카이사르를 피해, 그리스와 리비아로 자유를 찾아 떠났다, 독재자의 적 카토는. 도저히 달랠 수 없는 욕망으로 자청해서 죽음 속으로 뛰어들었다. 망각한 권력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는 걸 영리한 한니발이 알아차렸을 때, 그는 독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래 클레오파트라 역시 뱀을 움켜쥐었다. 경건한 마카비도 그렇게 행동했다, 브루투스와 솔론도 일순 광증에 사로잡혔고, 다윗 역시, 가트 지역의 왕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언자 요나가 어디론가 잠적한 뒤에 다시 돌아왔듯이, 나 또한 성스러운 마음으로 희생물을 바쳤다, 방화를 저지름으로써.“ (필..

34 이탈스파냐 2021.06.30

서로박: 캄파넬라의 철학시편 (1)

생존과 저항은 꿈을 위한 것이다. - 토마소 캄파넬라의 『옥중시편』을 중심으로 나: 반갑습니다. 오늘은 저항이라는 주제로 토마소 캄파넬라의 철학적 옥중시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하필이면 저항과 관련하여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인 캄파넬라의 시문학을 선택하였는지요? 너: 저항이라는 단어는 통상적으로 국가의 폭력에 대한 개인의 반항을 연상시킵니다. 외국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예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강정 마을 해군기지 반대 데모, 밀양의 송전탑 건설에 대항하는 데모를 생각해 보세요, 그렇지만 저항은 다양한 의미론적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습니다. 완강한 반항 대신에, 조심스러운 사보타주를 생각해 보세요. 자기 보존의 노력으로서의 생존 역시 저항의 한 가지 방식일 수 있지요..

34 이탈스파냐 2021.06.30

서로박: 단테의 신곡 (2)

연옥에는 카토 (Cato)가 연옥을 지키고 있습니다. 악마를 만난 뒤에 오랫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던 단테는 이때 깨어납니다. 주인공의 앞에는 일곱 단계의 테라스가 놓여져 있습니다. “교만, 질투, 노여움, 게으름, 탐욕, 식욕, 성욕” 등이 바로 소시민의 칠거지악이라고 씌어져 있습니다. 제 3곡에서 주인공은 이탈리아의 분열된 상황을 비난하며, 제 6곡에서 주어진 의무를 지키지 않는 독일 왕국을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주인공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으면서 테라스를 거쳐 정화의 산 위로 올라갑니다. 제 19곡에서 단테는 어느 가상적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꿈꾸면서 칠거지악의 공간을 하나씩 지나칩니다. 제 20곡에서 시인은 베르길리우스의 책을 통하여 기독교의 정신을 가장 옳은 가르침이라고 받아들입니다. 제 27..

34 이탈스파냐 2021.01.25

서로박: 단테의 신곡 (1)

친애하는 J, 오늘은 중세 이탈리아의 시성으로 알려진 단테 알리기리 (1265 - 1321)의 “신곡 (La divina commedia)” (1300 - 1321)에 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무려 21년이라는 기나긴 창작 과정을 지니고 있는데, 맨 처음 책으로 간행된 것은 1472년이었습니다. 오늘 어째서 이탈리아어로 씌어진 문학 작품이 다루어지는가? 하고 당신은 의아하게 생각하겠지요? 얼핏 보기에는 독일 문학과 무관한 것 같지만, 본질적으로는 기독교 정신을 그대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 문학의 두 개의 문화적 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그리고 기독교 문화) 가운데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단테 알리기리의 “신곡”은 사상적 배경 및 이후의 영향을 고려할 때 결코 서양 문학..

34 이탈스파냐 2021.01.25

서로박: 로시의 아나키즘 유토피아 (3)

12. 푸리에 사상의 모순점, 해결책은 없는가?: 설령 로시가 노동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노동에 대한 매력을 부추긴다고 하더라도, 자아의 원래 관심사는 그러 인해서 축소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자 공동체 속에서는 명령자 내지 수장이 존재하지 않으며, 동등한 친구들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각자 자신의 능력과 관심에 따라 일에 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은 공동체 내에서 잘 아는 사람에게 문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공동체의 사람들은 노동의 가치를 향상시키고 노동의 중요성을 부각시킴으로써 개개인의 자아실현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맨 처음에 로시는 푸리에의 공동체 운동에서 여러 모티프를 찾아내었습니다. 푸리에에 의하면 어떻게 해서든 노동의 즐거움을 찾아내어 이를 실천하는 게 관건이었습니다. ..

34 이탈스파냐 2020.10.18